백범김구선생의피난처,자이칭(載青)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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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왕멍 ( 王萌), 톈진 ( 天津)사범대학교 외국어학원 한국어과 강사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시의 아름다운난베이후(南北湖) 호숫가에는 진뉴산(金牛山)을 등진 근대식 별장‘자이칭별장’이 자리하고 있다.‘자이칭’은 별장 주인인 주잔칭(朱贊卿)의 이름에서 따왔다. ‘푸르름을 가득 담고 있다’는 뜻답게 자연을 사랑하고 전원을 동경하는 주인의 소망을담고있다.

193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은 윤봉길 의사의‘훙커우(虹口)공원 도시락 폭탄 의거’를 기획했다는이유로 일본 침략자들로부터 은화 60만냥의현상금이걸린수배자가된다.그뒤신해혁명의 원로 중 하나인 추푸청(褚輔成)선생의 도움을 받아 자싱으로 피신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에 정보가 노출돼 상하이-항저우(滬杭) 노선을 중심으로그를 잡아들이려는 수사가 시작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그는 자이칭별장까지 쫓겨와 6개월을 머물었다. 김구 선생은 자서전 <백범일지>에서자신의일생중가장한적한 시기였던 이 시절을 3페이지에 걸쳐기술하며, 그를 도왔던 주자루이(朱佳蕊, 1904-1955) 여사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낸다. 주 여사는 추푸청 선생의 아들 추펑장(褚鳳章·주봉장)의부인이다.

<백범일지>에는 피신과정을 기술한 내용이 있다.“자싱기차역에 사람을 보내 사정을 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일본 사복경찰이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추펑장 선생 부인의 친정집에 잠시 피신해 있기로 했다. 하이옌(海鹽·저장성 자싱시 소속 현)의 피서용 별장인 주씨산장(朱氏山莊)은 현 남서쪽으로약 4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추펑장 선생의 계실(繼室)인 주씨는막첫째를출산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추 선생은 부인주씨를홀로보내종일 기선(汽船)을타고 나를 하이옌현의 친정집까지 데려다주도록했다.”

“주씨댁에서하룻밤을지낸뒤다음날 추 부인과 함께 기선을 타고 육리언(六里堰)으로 들어와 거기서부터 남서쪽으로5~6리 되는산길을 올랐다. 부인은하이힐을신고7, 8월의찌는듯한여름날씨에연신손수건으로땀을훔치며산과고개를넘었다. 부인의 친정댁 여종이 먹을 것과 생필품을 챙겨 들고 우리를 따라왔다. 나는이 광경을 영상으로 기록해 자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딱히방법이 없었다.”“우리나라가 독립을 한다면, 나의 자손과 동포들 가운데 부인의 이런성의와친절에감사하지않을자가있겠는가? 비록 영상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문자로는 전할 수 있으니, 이러한 이야기를글로적어기록하고자한다.”

여기서 추 부인으로 불린 주자루이는하이옌현 주사오이(朱少虞) 종갓집의 손녀로, 어릴때부터좋은교육을받고 자랐다.이후하이옌현에서소학교교사를하며‘여성도 교편을 잡는’신시대를 열어갔으며,남녀평등을 부르짖었다. 주 씨는 온순하고얌전한‘대감집 규수’에만 그치지 않고 용 감하고 굳센 의협심과 기개를 보여주었다.김구 선생이 주 씨의 집으로 피신했을 때추푸청과그의아들추펑장은추부인이홀로 김구 선생을 난베이후에 있는 자이칭별장으로모셔다드리기로결정한다.

주자루이가 아직 첫돌도 지나지 않은아이를품에안고있던젊은새댁시절,이와같은 호송임무를 맡는다는 것은 위험천만했을 뿐 아니라,‘남녀유별’이라는 유교적논리 하나만으로도 거절할 이유가 충분했다. 하지만 주자루이는 결정적인 순간에개인의 생사와 사회풍습을 아랑곳 않고 김구선생을위해높은산과고개를넘고,군경과 비밀 단속을 피해 난베이후의 자이칭별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 덕분에 김구선생은 자이칭별장에서‘가장 위험한 6개월’의고비를넘길수있었다.

현재의 자이칭별장은 저장성 정부가1995년에 복원한 건물이다. 별장의 대청안에는 김구 선생이 직접 쓴‘양심건국(良心建國)’과‘독립정신(獨立精神)’이라는 글귀와 함께 김구 선생의 동상이 있다. 진열실에는 김구 선생의 일생과 피난 과정 등이담긴 사진자료와 각종 서적이 전시되어있다. 중한 수교가 이뤄진 후 김구 선생의아들이자 공군참모총장과 교통부 장관을역임한 김신 장군은 자싱을 수차례 방문해아버지의 고우(故友)를 수소문했다. 그 뒤김신 장군은 난베이후 풍경구관리위원회가 주 부인의 발자취가 담긴 유물을 자이칭별장에 전시하자마자 난베이후에서 추모제를 지내고‘한중우의, 음수사원(韓中友誼, 水思源)’이라는 제사(題辭)를 썼다. 한국 정부는 독립운동에 기여한 추푸청 선생의 공을 기려 1996년 8월 추푸청 선생을 한국건국훈장인‘독립장’에 추서(追敍)했다.

앞줄오른쪽첫번째가주자루이, 뒷줄오른쪽첫번째가추펑장,세번째가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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