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Korean) - - 역사속 이야기 -

국산 인삼제품은 한국을 방문한 외 국인 관광객들이 잊지 않고 챙기는 기념품 중 하나다. 특히 인삼을 넣고 끓 인 한국음식 삼계탕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도 인기가 높다. 조선(한)반도 특산품인 인삼은고대중한무역에서도중요한위치 를 차지했다. 일찍이 신라는 인삼 등을당 (唐)나라의 비단제품과 교환하곤 했다. 이 후조선시대에이르러인삼은주요수출품 으로서 중국의 비단, 일본의 은과 함께고 대동아시아무역경제권을 구성했다. 조선시대 후기, 조선반도 곳곳에서 인삼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실제 조선으 로 파견된 청(淸)나라 사신은 당시 개성 성 밖의 인삼 재배지를 본 뒤‘채소밭처 럼 온통 인삼밭(荊圍如菜園,皆參田也)’이 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청나라와 조 선 간 인삼무역이 활기를 띠면서 양국 무 역에 종사했던 중인과 평민 등 중·하급 계층의 사람들이 막대한 부를 쌓기 시작 했다. 이러한 가운데 경상(京商, 한양상 인)·만상(灣商, 의주상인)·송상(松商, 개성상인)과 같은 거대 상단이 등장했 다. 이 중 만상을 이야기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거상 임상 옥이다. 임상옥은 1779년 중인인 역관 가 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터 중국어를 배 울 수 있었다. 그러나 부친이 일찍 세상 을 떠나 가세가 기울었고, 임상옥 본인은 과거에 여러 차례 낙방, 결국 전국을 떠 돌아다니는 행상 신분이 되어 생계를 이 어갈 수 밖에 없었다. 여러 해에 걸쳐 장 사에 몸 담으면서 임상옥은 한 가지를 깨 달았다.‘조선의 인삼을 청나라에 가져가 팔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중국어에 능통했던 임상옥은 예상대로 양 국간 무역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그는 베이징과 의주를 오가며 베이징상인 의 신임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의주상인 을 한양상인과 개성상인보다 앞선 조선 최고의 상인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 가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은 그의 고상한 인품 때문이었다. 조선의 백성들이 가난과 민란에 시달릴 때마다 임상옥은 주저 없이 사재를 나누어 주었 고 곡식 등을 사서 어려움을 겪는 백성들 을 도와주었다. 그의 이 같은 선행은 조 선의 국왕에게까지 전해졌다. 조선의 왕 (헌종)은 그의 공을 높이 평가하면서 종3 품의 관직까지 하사했다. 이는‘중농경상 (重農輕商)’사상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조 선사회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랄 만한 것은 그가 임종 직전 남긴 유언이다. 임상옥은 자신의 모 든 땅과 재산을 국가와 백성들에게 나누 어 주라는 뜻을 밝히며 자손들에게“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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