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쓴‘팝의황제’한국땅을밟다

AJU Business Daily - - 지방종합 - 백준무기자jm100@

1996년 10월 11일.

요란한불꽃소리와함께 마이클 잭슨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이순식간에 관중의 환호 소리로 채워졌다. ‘팝의 황제’가 첫번째내한공연을시작한순간이다.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초대형 콘서트였다. 폭 70m, 길이 25m의 거대한 무대에 미국에서 공수된 스피커 144개가 설치됐다. 장비 설치에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20세기 최고의 이벤트’라는 극찬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틀간 두차례의공연에서잭슨은 ‘빌리 진’, ‘스릴러’등 24개의히트곡을소화했다.

돌발 상황도 있었다. 둘째 날 공연 도중 한 관객이 무대 위로 뛰어든 것이다. 잭슨이 유압 리프트에 오르는 순간 대학생 김모씨가 함께 올라탔다. 리프트가 지상10m 높이로솟구치는와중에도잭슨은노래를멈추지 않고김씨의 허리를끌어안았다. 공연후잭슨은 “우리가 도저히생각해낼 수 없었던 기막힌 쇼”라며 오히려 감사를 표했다.

공연은 뜨거웠지만 객석은 썰렁했다. 6만여개의 전체 좌석 중 70%만 간신히 채워지는정도였다.전날에는예매실적이저조해공연이취소될수도있다는소리까지나돌았다. 공연당일암표상들은10만원짜리S석을8만원에팔다가경찰에적발되기도 했다. 주최 측은 25억원 가까운 적자를봤다고주장했다.

의외의 흥행 저조에는 이유가 있었다.국내시민단체들이아동성추행의혹을들어 내한에 반대했던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잭슨은 1993년 13세였던 조디 챈들러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한 바있다. 그가 2300만 달러(약 260억원)에 피해자 가족과 합의했다는 소식은 심증을확증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잭슨은 “대규모 투어를 앞두고 있어서변호사의권고로 합의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아무도귀기울여주지않았다.

잭슨을 따라다녔던 추문은 그가 죽은뒤에야 비로소 그의 곁을 떠났다. 2009년7월조디챈들러가“마이클잭슨은나에게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돈에눈이 먼 아버지가 꾸민 일”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잭슨을 고소했던 아버지 에반 챈들러는아들의실토4개월뒤스스로목숨을끊었다.

[사진=마이클 잭슨내한공연실황중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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