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옛부터‘천혜의요새’…직할시승격뒤‘고속성장’

사통팔달교통망덕물류허브도약유라시아진출교두보·일대일로중심현대차·SK하이닉스공장등진출도·

AJU China - - Focus - 배인선기자

충칭은 3000여년 전 상(商)·주(周) 시대 고대왕국 파국(巴国)의 도읍지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예로부터 창장(長江)과 자링강(嘉陵江)이 합류하며험준한산으로둘러싸여지어진요새라는뜻으로 ‘산수지성(山水之城)’이라 불렸다. 한나라때는강을끼고 있다고 하여 강주(江州)로도 불렸다.중국고전 ‘삼국지’에서 강주성은 촉나라의 관문이다. 난세 속에서도 외부의 침입을 허용치 않았던천혜의 요새다. 용맹을 떨친 장비조차 힘만으로는빼앗지못해계략을써서얻은게강주성이다.

항일전쟁당시일본군에패한국민당정부가충칭으로수도를옮긴 것도, 마지막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가 이곳에 있었던 것도 험한 산세를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60년대 냉전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이 미국소련의군사공격에대비해 ‘제3선 건설’을 추진하며 연해지역의 군수·화공·철강 등산업시설을충칭으로옮긴것도같은 맥락이다.

탄탄한중공업을바탕으로충칭은 70년대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쓰촨(四川)성의 한 도시로 편입돼 있던 충칭시 경제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충칭시가 벌어들인 세수의 대부분은 쓰촨성 성도인 청두(成都)에 집중됐다. 개혁개방 이후 상하이(上海) 등 동부 연해지역에 발전이 집중되면서 충칭시는 중국 고속 경제성장에서소외됐다.

노후 공업도시였던 충칭에 다시 봄날이 찾아온것은 1997년 중국정부가충칭과주변지역을묶어직할시로 승격시키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면서부터다. 여기에 1997년부터 싼샤(三峽)댐 개발로 수 심이깊어진창장이 ‘황금수로’로 변모하면서충칭경제도 고속 성장가도를 달렸다.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1만t급 선박 운항도 가능해지면서 충칭은 창장물류의핵심기지로부상했다.

충칭 수상교통로의 심장부인 차오톈먼(朝天門)부두에는 창장 물줄기를 따라 상하이~충칭을 오가는대형선박과컨테이너선으로하루종일붐비기 시작했다. 창장 뱃길이 상하이~충칭 간 철도 8개 노선과 맞먹는 물동량을 처리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를 기반으로 충칭시는 서부 내륙의 풍부힌 지하자원을 충칭에 모아 선적하고, 상하이등 동부 첨단 제품이 서부 내륙으로 들어오는 중국의 물류 허브로 자리잡았다. 지난 2011년엔 중국충칭과독일서부뒤스부르크를잇는총거리 1만1000㎞의 위신어우(渝新毆)화물열차도개통됐다. 이처럼오늘날충칭은유라시아 교두보 역할도하며일대일로의중심으로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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