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기자생활한국선수중최고는단연코차붐”

Ilgan Sports - - NEWS - 피주영의풋살프랑크푸르트(독일)=피주영기자

“최근유럽빅리그에서는많은아시아선수들이뛰고있습니다.하지만제가본최고를꼽으라면단연‘차붐’입니다.”

24일(한국시간) 독일 쾰른의 독일 축구전문지 키커(kicker) 서부지부에서 만난프랑크 루셈(57) 편집장은 진지한 표정으로말했다.

1980년부터 독일 분데스리가를 취재해온루셈편집장은키커가자랑하는베테랑기자이자독일을대표하는축구 전문가다.덕분에그는현재한국축구최고골잡이인손흥민(25·토트넘 홋스퍼)이 독일에서 성장한과정은물론이고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독일무대를밟은 차범근(64)의 축구인생도직접지켜봤다.루셈편집장은차범근이바이어레버쿠젠에서활약한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전담취재하며친분을쌓았다.

루셈 편집장은 “다른 시대에 활동한 선수들을 비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면서도“만약한국선수중최고의한명을꼽아야한다면주저없이차붐이라고답하겠다”고 말했다. 그가기억하는차범근은특별하다. “선수 시절차붐은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공격수였다. 그의 경기를 처음 본사람은예외없이환상적인플레이에빠져들수밖에없었다.”

실제로전성기시절차범근은탄탄한체구(키 183cm·체중 78kg)에 폭발적인스피드를앞세워상대수비수를쉽게제치는것으로 유명했다. 이런 그를 가리켜 독일 언론은‘갈색폭격기’라는별명을붙였고,분데스리가에는 ‘차붐(Chabum·골로 수비를폭격한다고해서생긴 애칭)’ 열풍이불었다. 차범근은분데스리가에서꼬박 10년을뛰며총 308경기에 출전해무려 98골을기록했다. 그는 1985~1986시즌 19골(정규 리그 17골·컵대회 2골)을 쏟아 냈는데, 이기록은 지난 시즌 손흥민(21골)에게 깨지기전까지무려 31년간 이어졌다. 무엇보다차범근이넣은골중에는페널티킥이단한골도 없었고 10년간 옐로카드는 딱 1장만받았다.

하지만루셈편집장이차범근을높게평가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강한 정신력과성실한 인품이다. 그는 “차범근은 제가 평생 겪어 본 선수들과 달랐다. 승부욕이 대표적”이라면서 “경기에서 패한 다음날그는아쉬워하는정도를넘어슬픔에잠겨 있었다. 공격수로서 골을 넣지 못해 팀을승리로이끌지못한책임감때문이었던것 같다”고 기억했다. 이어 “패배 후 분해하는차붐의모습은당시독일선수들의정서에는낯선 ‘한국식 투혼’이었다. 덕분에차붐의주변에는그의승부욕을닮아가는선수들이많았다”고떠올렸다.

차범근의특별함은필드밖에서드러났다. 루셈편집장은“차붐은선수로뛴기간내내 팀 내에서 간판선수 역할을 했다. 팬들은물론이고팀동료들에게도인정을받아야 가능한 일이기에 더 대단하다”고 평가했다.그는차붐이희생정신이투철한선 수라는점도 강조했다.공격수였지만수비수로 뛰는 것을 마다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차범근은 “현역 시절막판에는오른쪽 수비수로 뛴 적도 있다. 스타 골잡이가수비수포지션으로내려가는것은자존심문제일수도있는데차범근은팀을위해서라면무엇이든했다”고말했다.

이런차범근은 30대에 접어들면서자연스럽게 팀 내 ‘맏형’과 같은 역할을 했다.당시코칭스태프는젊은선수들을차범근과같은방에서생활하게 했다. 또이들역시 베테랑 차범근을 따랐고, 함께 지내며한국인특유의성실함을배우려 노력했다.루셈 편집장은 “솔직히 말해 아시아 출신선수가분데스리가팀의리더역할을맡는것은현재도쉽지않은일이다. 1980년대에는상상할수도없는일이었지만차붐은해냈다”면서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며 크게웃었다.

그러면서“레버쿠젠시절차붐에게종종식사 초대를 받고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그럴때마다늘웃으면서반겨줬는데,이렇게옛날이야기를풀어놓다보니그때차붐의그미소가떠오른다”며활짝웃었다.

키커사무실에서활짝웃고있는루셈편집장. 피주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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