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레버쿠젠시절이 f차붐g 황금기였지i

차범근,독일진출40년기획③

Ilgan Sports - - 스포츠 - 프랑크푸르트(독일)=피주영기자

1988년 5월 18일 독일 레버쿠젠의울리히 하버란트 슈타디온(현 레버쿠젠 홈구장 바이아레나)에서열린바이어레버쿠젠과에스파뇰의 1987~198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컵결승2차전후반36분.

원정 1차전에서 0-3으로 완패한레버쿠젠은 합계 2-3으로 패색이짙었다.벼랑끝에몰린레버쿠젠을구한것은차범근이었다.그는그림같은헤딩동점골을터뜨리며승부를원점으로돌렸다.레버쿠젠은승부차기까지간끝에우승컵을거머쥐었다. 25일(한국시간) 영광의장소를다시찾은 차범근(64)은 당시기억에잠겨한참동안그라운드를바라보다말했다.

“레버쿠젠에서 뛴 시간은 내 인생의황금기였어.”

차범근은 레버쿠젠에서 ‘차붐(Chabum·골로수비를폭격한다고해서생긴 애칭) 전설’을 완성했다.차붐은 1983년 프랑크푸르트에서레버쿠젠으로옮겼다. 당시레버쿠젠은 1부와 2부리그를 오가는 ‘만년 하위권 팀’이었다. 그랬던 레버쿠젠에 차범근이 합류하면서 유럽정상을차지하는강팀으로변모한것이다. 분데스리가인생 10년 중 6년을레버쿠젠과함께한그는 1989년은퇴까지185경기에출전해52골(리그 통산 308경기 98골)을 기록했다.

이날UEFA공식TV와인터뷰를위해바이아레나를찾은차범근은자신의축구인생에서‘정점’과‘마지막’을장식한경기장구석구석을돌아봤다.

그는 “이곳에서 생애 두 번째UEFA컵을 들어올린기억이가장강렬하게남아있다.여기만오면그감격이 살아난다”고 말했다. 이어“레버쿠젠에서 뛰며 우승을 경험한것은물론이고좋은친구를만나 고좋은축구를 했다. 올때마다감회가새로운고향과같은곳”이라고덧붙였다.

경기장동쪽외벽에그려진자신의벽화앞에선그는“허벅지를더두껍게 그렸어야지. 원래대로라면이렇게두꺼웠는데”라고농담을던지고는두손을동그랗게모아당시허벅지두께를만들어보이기도했다.

UEFA컵 결승 2차전에서 차범근의골을어시스트했던안제분콜(58) 레버쿠젠 13세 이하(U-13) 팀감독은일간스포츠와인터뷰를통해 “‘부미(Bumi·분콜이 부르는차범근의 애칭)’는 평소영리한플레이를 하면서도 결정적인 상황에서는번개처럼빠른친구였다.현역시절에함께뛰어본공격수중 최고”라고 극찬했다. 또분콜은“내가 어시스트했으니 부미의 골에 지분이있는셈”이라며크게웃었다.분콜에이어인터뷰에응한레버쿠젠구단의홍보를책임지고있는뤼디거 폴보른(54)은 “차범근이나서는경기는패할것같은생각이들지 않았다. 내가 실점을 해도 그가동점과역전을만들어줄것이란믿음이있었다”며엄지를치켜세웠다. UEFA컵결승2차전에서골키퍼로출전한폴보른은신들린선방을선보이며승부차기승리를이끌었다.

이 얘기를 듣던 차범근은 “1988년당시레버쿠젠이 UEFA컵 우승은커녕결승에오를것으로예상하는사람은없었다. 4강상대가바르셀로나였기 때문”이라면서도 “우리가바르셀로나를이긴것도,내가후반36분에동점골을넣은것도모두각본없는드라마였다.우리에겐좋은 동료들과 승운이 있었다”고회상했다.

차범근은현역시절막판에는팀의‘맏형’역할을하며후배선수들에게많은영감을줬다.언제나솔선수범하고어떤역할이주어져도최 선을다한 덕분이다. 폴보른은 “차붐은시합전날에는컨디션관리를위해무슨일이있어도충분한휴식을취했다.밤늦게까지깨어있는습관이있던나는차붐의자기관리를배웠다”고털어놨다.

차범근이은퇴하기한시즌전인1987~1988시즌 신인 골키퍼로 입단한안드레아스 나겔(56)은 “차범근의철저한자기관리와그라운드 안에서의열정은나를포함한모든후배들이우러러봤다”고기억했다.당시레버쿠젠을전담취재했던프랑크 루셈(57) 키커기자는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지금도 어렵지만과거에는외국인선수가팀의리더를하는것은상상할수도없었다”며‘레버쿠젠의리더’차범근을떠올렸다.

차범근이25일레버쿠젠홈구장바이아레나경기장동쪽외벽에그려진자신의벽화를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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