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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gAng Ilbo - - ᛜᲩ - 국제전문기자ciimccp@joongang.co.kr

“전체주의정권에대한굴복과물질제공으로평화를지킬수있다고기대하는것이…새로운국제질서인가” -윈스턴처칠.

오는 30일로 뮌헨협정(Munich Agreement)이체결된지79주년이된다. 1938년9월30일독일뮌헨에서영국의네빌체임벌린총리와프랑스의에두아르달라디에총리가독일의아돌프히틀러총통및이탈리아의베니토무솔리니총리와합의해서명한협정이다.서명은4개국이했지만내용은협상장에초대받지못한신생국체코슬로바키아의운명에관한것이었다. 1919년베르사유조약으로탄생한신생국가체코슬로바키아의영토인주데텐란트(독일계다수거주지역)를나치독일에넘기는굴욕적인내용을담았다.

자정을넘긴30일새벽협정문에서명한체임벌린총리는해가밝자항공편으로귀국길에올랐다.런던서부헤스턴공항에도착한체임벌린은환영객에게협정문을흔들어보인다음자랑스럽게읽었다.체임벌린이이날다우닝가10번지총리관저로돌아와“독일에서명예로운평화를들고돌아왔다”며“이것이우리시대의평화라고믿는다”고말하는장면은BBC방송을통해영국전역에중계됐다.불과20년전에끝난제1차세계대전의상처를기억하고있던체임벌린은어떤대가를치르고서라도평화를지키고싶어했다.굴욕적인양보와신생약소국희생,그리고동맹배신이란딱지도아랑곳하지않았다.역사가들은이를‘유화정책(appeasement)’이라부른다.사실당시영국여론도이를지지했다.체임벌린이재임중기사작위를받는첫총리가되거나다음노벨평화상을받게될것이라는전망이줄을이었다.하지만이는히틀러의속셈을제대로파악하지못한오판이었다. 33년집권한히틀러는제1차세계대전이후형성된신국제질서인‘베르사유체제’를무너뜨리고싶어했다. 36년3월독일서부라인란트가첫목표였다.철과석탄이풍부한공업지대인라인란트는베르사유조약이후독일군진입이허용되지않은비무장지대로서프랑스군이관리하고있었다.독일군은병력이10만이하로제한됐으며대형군함·항공기·전차보유도금지됐다.라인란트점령에영 국과프랑스를비롯한국제사회는아무런행동도하지않았다. ‘그만한일’로다시전쟁을하고싶지않다는게솔직한심정이었다.국제사회의무기력을확인한히틀러는쾌재를부르며본격적인전쟁준비에들어갔다.히틀러는이어서38년오스트리아를병합했다.이역시베르사유체제가금지한것이지만거리낌없었다.영국과프랑스는별다른대응을하지않았다.베르사유조약은휴지가됐으며힘과행동을수반하지않은국제사회의항의는무의미했다.히틀러는본격적으로야욕을드러냈다.독일계주민이다수살고있다는이유로체코슬로바키아의주데텐란트를내놓으라고요구했다.히틀러는영국의체임벌린총리등과여러차례대화를한끝에뮌헨에서“최후의영토적요구”라고압박해이를얻어냈다.주권국가체코슬로바키아는협상장에초청받지도못한채영토를잃어야했다. ‘체코슬로바키아패싱’이자강대국들의‘뮌헨 배신’이었다.체코슬로바키아는프랑스의동맹국이었지만국익앞에선아무런소용이없었다.프랑스의어떤정치인도자국젊은이들에게동맹국을위해피를흘려야한다고말할수없었다.영국은베르사유체제를만들고체코슬로바키아를탄생시킨당사국으로도덕적인책무가있었다.하지만동맹이나도덕은‘무정부상태’인국제사회에서아무런역할을하지 못했다.체코슬로바키아의에두아르트베네스대통령이항의하자체임벌린은“영국은주데텐란트건으로전쟁을하고싶지않다”고잘라말했다.베 네스는영국에서망명정부를세웠다.

영국과프랑스는다시는제1차세계대전같은참화를겪고싶지않다는이유에서아무런행동도하지않고나치앞에유화정책으로일관했다.말만할뿐행동이따르지않는(only talk, no action)유화정책은영국과프랑스의무력개입을두려워하며조마조마하던히틀러의간만키워놓았다.히틀러의침략야욕을잠재우기는커녕오히려자극했다.유화정책을바탕으로한체임벌린의‘우리시대의평화’는유효기간은짧았고대가는엄청났다.독일이39년9월폴란드를침공해제2차세계대전의도화선이됐기때문이다.나치독일은서방세계가절대손잡을수없다고믿었던공산국가소련과불가침조약을맺고폴란드를함께침공해영토를나눴다.체임벌린은전시내각을구성하려했지만야당인노동당과자유당이체임벌린이주도하는전시내각에는참여할수없다며이를거부했다.유화정책으로전쟁을막을역사적인의무를다하지못했다는이유에서였다.체임벌린과같은보수당소속인리오애머리의원은하원에서체임벌린의리더십한계를지적하는따끔한연설을했다. “전시상황이됐으므로이제과거의평화체제를더이상지속할수는없다.토론재능,상황파악능력,정책의인기를내다보는통찰력,타협능력,심사숙고는평화시기지도자에겐더할나위없이훌륭한품성이다.하지만이는전시에는치명적이다.승리의핵심은비전·대담함·신속함,그리고결정의지속성이다.전시에는이런덕 목을갖춘지도자가필요하다.”체임벌린은그연설후총리에서물러나야했다.체임벌린에게“전체주의정권에대한굴복과물질제공으로평화를지킬수있다고기대하는것이총리가지향하는새로운국제질서인가”라고쏘아붙였던윈스턴처칠이후임을맡아전시거국내각을꾸렸다.처칠은초지일관독일에대한강경대응을주장하는바람에의회에서뒷전으로밀렸으나전쟁이발발하자가장먼저부름을받았다.그나마합리적이고비판적인인물이있었기에영국은신속하게전시거국내각을꾸려전쟁을승리로이끌수있었다.냉전시기서방세계는뮌헨의교훈을금과옥조로삼았다.평화는평화의지가아닌전쟁의지로지킬수있다는교훈이다.싸울태세가된상대에겐누구도쉽게달려들지못한다.이런상대에겐협상장에서도함부로하지못한다. 48년소련이체코슬로바키아를점령하자서방진영은신속하게공동방어기구인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결성해집단으로대응했다.소련에양보하거나도발을방관해‘제2의체임벌린’으로비난받고싶어하는서방정치인은어디에도없었다.적대국가에둘러싸인이스라엘도이교훈을되새긴다.적에게유약하게보이는순간안보를보장할수없다며언제나긴장의끈을놓지않는다.체임벌린의리더십실패는‘뮌헨의교훈(Lesson of Munich)’으로남았다.북핵도발로얼룩진2017년 9월절실하게되새겨야할역사적교훈이다.

말뿐인유화정책펴던영국총리‘최후의영토요구’히틀러말믿고체코슬로바키아땅떼준굴욕협정 1년후나치독일,되레폴란드침공후임처칠은강경대응해전쟁승리“싸울각오가평화지킨다”교훈남겨

체결뒤함께선체임벌린영국총리,달라디에프랑스총리,히틀러독일총통,무솔리니이탈리아총리,키아노이탈리아외무장관(왼쪽부터). 총리가군중에게협정문을보이고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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