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스승도번뇌못풀어싯다르타홀로떠나다

생각도아니고,생각아닌것도아닌해탈이르렀다는웃다카라마푸타그의깨달음역시완전하지못해싯다르타,더이상스승찾지않기로

JoongAng Ilbo - - 현문우답 - 라즈기르(인도)=글사진 기자vangogh@joongang.co.kr

싯다르타가태어날때인도는16개국으로쪼개져있었다.히말라야산맥아래,인도북부의카필라왕국은부족국가수준의아주작은나라였다.싯다르타가출가했을때16개국중작은나라들은이미정복을당하고있었다.대신큰나라였던마가다·코살라·아완티·왐사등의4개국이서로패권을다투었다.붓다가주로활동했던인도북부는마가다국과코살라국이용호쌍벽을이루는지역이었다.나중에싯다르타의조국인카필라왕국도결국코살라국의침략으로멸망한다.

마가다국의수도는라즈기르였다.갠지스강의남쪽이다.나는버스를타고갠지스강을건너라즈기르로갔다.바이샬리에서도남쪽으로내려가야했다.버스차창밖으로펼쳐지는인도시골의오지풍경은놀라웠다.풀을얹은초가지붕은한국의초가와무척닮았다.게다가기와를얹은집도있었다.한옥보다기와의가로폭이더좁았다.어쩌면경주에있는한옥기와의연원도인도에닿아있을런지.고구려는중국을통해불교가전래됐다.백제와신라는달랐으리라.남쪽바다를통해인도에서곧장불교가전래되지않았을까.실제전남영광법성포에는최초의불교도래지가있다.인도의승려마라난타가배를타고백제땅에와불교를전했다고한다.나는인도중부의아잔타석굴에갔다가경주석굴암의양식과너무나비슷해깜짝놀라기도했다.아잔타석굴은더투박하고,더원시적이었지만인도불교가신라에얼마만큼영향을미쳤는지한눈에알수있었다.

인도의시골오지사람들은옛날방식으로살고있었다.소가자는움막과사람이자는움막이비슷해보였다.움막의벽마다피자처럼납작하고동그랗게만든소똥을붙여서말리고있었다.석유나가스대신불을땔때사용하는일종의천연연료였다.인도인가이드는“인도북부의비하르주와유피주에는오지가많다.사람들도가난하고,카스트제도의낮은계급에속하는이들이많이산다. 2600년전부처님이살았던당시의생활방식과지금이곳사람들의생활방식이크게다르지않다고보면된다”고말했다.붓다가주로활동했던곳도이들지역이었다.

나는한국의크리스천들로부터가끔이런이야기를들었다. “미국이나유럽이왜잘사는지아나?전쟁으로폐허가됐던한 국이그짧은시간에이토록발전한이유가뭔지아나?사람들이하나님을믿기시작했기때문이다.선진국들을봐라.거의대부분그리스도교국가다.그런데불교국가들을봐라.인도가얼마나가난한가?부탄이얼마나가난한가?또동남아의불교국가들이얼마나가난한가?그러니하나님을믿어야나라도은혜를받는다.그래야경제도발전한다.”실제한국의교회에서이렇게말하는목회자들이꽤있다.그런생각을공유하는신자들도적지않다.라즈기르에서만난인도인에게나는이물음을던졌다.이런식의사고에대해인도사람들은어떻게생각하는지궁금했다.답이놀라웠다. “아주옛날에는인도가엄청나게부유했다. 3000년 전에이미벽돌로만든대규모계획도시를건설할정도였다.지금은인도가못산다.가난하다.그런데또500년, 1000년뒤에는인도가잘살게될 거다. 그런건돌고 돈다.옛날에부유했다고지금부유한것도아니고,지금부유하다고영원히부유한것도아니다.참우스운질문이다.그런건물으나마나한물음이다.”그의대답에서시선의깊이가느껴졌다.인도는세계4대문명의발상지다.그래서일까.인도인들이사고하는폭과깊이는어딘가남달랐다.

이치를풀어고통벗어나는게해탈

라즈기르는싯다르타의자취가서린땅이다.싯다르타는알라라칼라마의곁을떠났다. 눈을감을때만피어나는 고요,눈을뜨면곧사라지는고요는그에게의미가없었다.싯다르타는바이샬리를떠나이곳라즈기르로왔다.그옛날,수행자들은걸어서다녔다. 3월초만돼도인도의햇볕은작렬한다.봄과여름에는섭씨40~50도를넘나든다.열기가살갗을후벼파는느낌이다.싯다르타가라즈기르로이동할때는무슨계절이었을까.만약겨울이아니었다면싯다르타는새벽에걷고,낮에는쉬고,저녁무렵에다시걸었을지 도모른다.불타는태양을피해서말이다.당시라즈기르에는웃다카라마푸타라는이름난수행자가있었다.싯다르타는그를찾아갔다.웃다카라마푸타가이끄는수행그룹의규모는알라라칼라마보다더컸다.따르는제자만무려700명이었다.알라라칼라마의제자가300명이었으니, 2배가넘는규모였다.

싯다르타당시수행자들의궁극적지향은‘해탈(解脫)’이었다.해탈이뭔가.이치를풀어(解)고통에서벗어나는(脫)일이다.그것이바로‘해탈’이다.가령새끼줄을뱀으로착각한채로한방에서평생을산다면어찌될까.죽을때까지두려움과걱정에서벗어날수가없다.자다가도수시로눈을뜨지않을까.행여뱀이이쪽으로올까봐,행여나를물까봐말이다.그런데뱀의정체가단순한지푸라기임을알면어찌될까.그즉시두려움과고통에서해방된다.그것이바로‘해탈’이다.뱀의정체에대한올바른이해가우리를자유롭게한다.

우리가두려워하는뱀도마찬가지다.늙음과병듦과죽음.이모두를사람들은뱀으로본다.맹독을품은채우리를노려보는독사로본다.싯다르타도그랬다.그는독사로만보이는생로병사의정체를뚫고자했다.생로병사가뭔가.인간의삶이다.그러니싯다르타는인간의삶에대한정확한이해를통해고통에서벗어나고자했다.그래서웃다카라마푸타를찾아갔다.

사람들은웃다카라마푸타가“해탈의경지에있다”고말했다.그러니싯다르타는큰기대를걸지않았을까.나는궁금했다.웃다카라마푸타가말하는경지란어떤걸까.불교경전에는‘생각도아니고,생각아닌것도아닌경지(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표현돼있다.웃다카라마푸타는그것을‘해탈’이라고불렀다.

그럼왜‘생각이냐,생각이아니냐,혹은생각아닌것도아니냐’하는게중요할까.그건단순한말장난일까,아니면뭔가깊은뜻이있는걸까.인간은‘나(에고)’가있어서고통을받는다.고통에서벗어나려면어떡해야할까. ‘나’가없어져야한다.그런데‘나’가없으면생각도없어야하지않을까.인간이몸뚱아리를가지고사는동안생각은자꾸만올라온다.물론잠깐동안‘아무생각없는상태’를체험할수는있다.그래봤자잠시다.생각은다시또올라온다.

프랑스의철학자데카르트(1596~1650)는이렇게말했다. “나는생각한다.고로나 는존재한다.”나가있으면생각이있고,생각이있으면나가있다.그러니‘해탈=무아(無我)’라고여기던인도인들에게‘생각’이란놈은굉장한골칫덩어리였다.고대인도인들은생각이있는한‘나’가있다고여겼다.고통에서벗어나려면‘무아’가돼야하는데자꾸만생각이올라오니난감해했다.웃다카라마푸타가“생각도아니고,생각아닌것도아니다”라고말한것은이문제를풀기위한나름의해법이었다.

“자네가먼저해탈하면부디다시와달라”

어쨌든싯다르타는그를스승으로모셨다.그리고수행에몰두했다.얼마나세월이흘렀을까.싯다르타는결국스승의경지까지도달했다.그런데뭔가이상했다.그자리가‘해탈의경지’는아니었다.싯다르타는짚어보고,짚어보고,또짚어봤을터이다.아무리봐도해탈의상태는아니었다.큼직큼직한고뇌의덩어리들은사그라들었지만,생활속에서부딪히는자잘한번뇌의싹은계속올라왔다.마치화단의풀을뽑았는데또올라오고,뽑았는데또올라오듯이말이다.싯다르타는아직‘번뇌의정체’ ‘생각의정체’ ‘나의정체’를꿰뚫지못했다.

싯다르타는스승에게가차없이물었다. “생각도아니고,생각아닌것도아닌자리에서는‘나’가있습니까,아니면없습니까?스승께서는착각하고있습니다.이것은해탈이아닙니다.스승님은번뇌를다해결하지못했습니다.”

싯다르타의지적은단호했다.웃다카라마푸타는아무런대답도못했다.결국싯다르타는그를떠났다.세번째스승이자마지막스승이었다.떠나는싯다르타에게웃다카라마푸타는이렇게말했다. “만약자네가먼저해탈을이루게된다면,부디여기로와서우리를해탈케해달라.” 알라라칼라마나웃다카라마푸타는당대에내로라하는수행자들이었다.그럼에도그들의깨달음은불완전했다.

나는궁금했다.떠나는싯다르타의뒷모습은어땠을까.세명의스승을만났지만,그가찾던 ‘열쇠’는 없었다.그렇다고그간의수행이무의미하진않았으리라.더깊어지고,더단단해졌을싯다르타는이제더이상스승을찾지않기로했다. ‘나홀로승부’를걸참이었다.그럴만한수행장소를찾아서길을떠났다. 백성호

인도라즈기르의그리타쿠타산(영축산)을오르다가순례객이만든조그만돌탑을만났다.하나씩,하나씩쌓아올리는간절함이깨달음을좇아무려세명의스승을찾아다니던싯다르타의절박함과통한다.

인도아잔타석굴은경주석굴암과건축양식이흡사했다.오른쪽은델리박물관에있는붓다조각상.

라즈기르에서15㎞떨어진곳에나란다대학의유적이있다. 5세기초굽타왕조때지어진나란다대학은세계최초의대학이다.당시세계각지에서승려들이와불교와학문을공부했다.이곳은붓다의제자였던사리불의고향이기도하다.사리불의사리탑도나란다대학안에있다.아래사진은대학내에있었던사원의원래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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