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임시정부→대한민국근대국가정신이어졌다”

이태진서울대명예교수인터뷰고종,자력에의한근대국가열망전기·전차도입등도시개조박차중립국가로국제사회진출구상도대한제국멸망론은식민사학관점

JoongAng Ilbo - - 오늘대한제국선포 120주년 - 글=백성호기자,사진=박종근기자vangogh@joongang.co.kr

120년전오늘이었다.고종황제는근대국가의시발점인대한제국을선포했다.그는‘국가(國家)’라는말보다‘민국(民國)’이란용어를더즐겨쓰던군주였다.조선왕조실록에도고종이나라를지칭하며‘국가’대신‘민국’이라부른예가70%나된다.당시고종을직접인터뷰했던선교사들이남긴글에는‘고종황제는나라에서지식이가장높은인물이다.신하들이잘모르는게있으면군주를찾아가물어볼정도였다.고종황제는그자리에서즉답을하거나무슨책을찾아보라고일러주었다’고돼있다.

우리가알던고종과다르다.흔히대한제국과고종황제는그저‘무기력한나라,무능한군주’로만알고있다.역사시간에도그렇게배웠다. 25년째대한제국역사를연구중인이태진(74)서울대명예교수는“그건철저히일제식민사학의관점이다.우리도모르게거기에젖어있었다”고지적한다. ‘대한제국선포 120주년’ 기념일을하루앞둔 11일 서울강남구역삼동의연구실에서이명예교수와마주앉았다.그에게‘대한제국의의미와일제의왜곡’에대해물었다.

-대한제국은어떤나라였나.

“대한제국은자주적근대화를위해치열하게노력했던나라다. 1899년 이미서울에전차가달리고있었다.당시일본도쿄에는전차가없었다. 1902년에야일본에전차가생겼다. 1900년대 초러일전쟁을위해서울에온일본군이서울시내를달리는전차를보고신기해하는자료사진까지있다.고종황제는차관도입을추진하고,열강의틈바구니에서자력으로근대국가의모습을갖추고국제사회로진출하고자했던인물이다.광산개발과철도부설,지폐발행을위한중앙은행설립,전기와전신사업등에도엄청애를썼다.”

-대한제국을일제는왜무능한나라로왜곡했나.

“식민통치의합리화를위해서였다.일 제에나라를빼앗기기전에대한제국의근대화는자력으로이미진행중이었다.일제는그걸부인해야했다.조선이괜찮은나라였다면식민지배가정당화될수없다.그래서‘망국책임론’이란프레임을씌웠다.크게두가지다.첫째는고종정부의무능함,둘째는유교사상때문에조선이망했다는것이다. 구시대사상인유교에의해다스려지는나라는야만에서벗어날수없다는주장이다.그게식민주의역사학의가장큰굴레다.자신도모르게우리는대한제국의존재를애써외면하거나무시해오지않았나.”

-고종황제가평소‘국가(國家)’대신‘민국(民國)’이라지칭한건어떤의미인가.

“조선의르네상스를이끌었던정조가‘국가’대신‘민국’이란용어를먼저썼다.국가의‘가(家)’는집안을뜻한다.고대국가가패밀리에의해세워졌기때문이다.왕조시대의패밀리가누군가.귀족가문,다시말해사대부다.정조가 ‘국가’ 대신 ‘민국’이라 부른건나라의중심이‘왕과사대부’가아니라‘왕과백성’이란뜻이다.정조는만민의왕이되고싶어했다.그런정조의정신을고종도공유하고있었다.고종은‘적민(積民)이국(國)이다(백성이쌓이면나라다)’는말도했다.서구의근대국가개념과도통하는정신이다.”

-당시는열강의각축장이었다.그걸뚫고나가는고종의전략은무엇이었나.

“조선의근대화,그리고중립국승인이었다.당시는일본과청,러시아와영국등열강의각축장이었다.그걸뚫고가려면덴마크나벨기에,스위스처럼국제사회에서중립국승인을받아야했다.우선근대국가로서위상을갖추어야했다. 1880년대처음에전기는경복궁에만들어왔다.고종은도시개조사업을통해서울시내에도전깃불이들어오게했다.전차를시설할때는내탕금20만원을선뜻내놓았다.근대화한자주독립국가로국제사회에데뷔하고자했다.실제고종의중립국승인 외교는비밀리에강하고치밀하게펼쳐졌고,뒤늦게이를안일제의방해공작이집요하게이어졌다. ‘대한제국’이란국호도고종황제가직접지었다.”

-왜‘대한제국’이라지었나.

“고종은이렇게말했다. ‘조선이란나라이름은뜻이아름답고오랫동안썼다.그렇지만국호를지을때태조대왕께서중국에사신을보내조선과화령이란두이름을제시했다.명나라태조가그걸보고조선을골랐다.이런역사를가진국호를가지고자주국으로국제사회에나설수는없다. 조선만큼고대로부터우리를가리키는용어로한(韓)이라는 글자가있다.그앞에 대(大)자를 붙이자.그래서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하자.’그러자신하들이모두박수를쳤다고한다.”

-그래도대한제국은망하지않았나.

“아니다.그역시식민사학의관점이다.을사보호조약이나병합은군사강점이었다.대한제국의국가원수는끝까지그걸인정하지않았다. 1919년고종이독살되자장례식이틀전에3·1독립만세운동이일어났다.그정신이상해임시정부로이어졌고,국호를‘대한민국’으로정하면서대한제국을승계했다. 1945년 일제압제에서벗어나 48년에정부수립을다시한것이다.대한제국바로알기는우리만의문제가아니라동아시아의문제이자세계사전체의문제다.”

이태진명예교수는12일오전 9시30분서울국립고궁박물관에서열리는대한제국선포120주년기념학술심포지엄에서대한제국의외교전략을분석해발표한다. 이태진교수=서울대사학과졸업,서울대와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석·박사,서울대국사학과교수역임,국사편찬위원장역임,대한민국학술원회원.저서로일본의한국병합강제연구 끝나지않은 역사 동경대생에게 들려준한국사등.

이태진서울대명예교수는“대한제국과고종황제를무기력한나라,무능한군주로알고있는것은일제식민사관의영향”이라고지적했다. 박종근기자

조선 제26대 왕이자대한제국 제1대 황제(재위1863∼1907)인고종의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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