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광주물줄기바꾼미체로키작전

이란의미대사관점거사태가광주에대한미정부오판불러한국야당과시위대반미아냐광주비롯된분열빨리극복하길

JoongAng Ilbo - - 오피니언 - 스테판해거드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대(UCSD)석좌교수

나는한반도문제를다루는대학원생강의를매년개설한다.광주가한주일분량이다.최근영화‘택시운전사’의흥행성공, 1980년광주에대한문재인대통령의열렬한관심, 5·18광주민주화운동특별조사위원회의출범에즈음해이사건에대한미국쪽시각을다시금살펴보게되었다.

박정희대통령서거다음달인 1979년11월,지미카터미대통령은한국상황을분석하기위해‘체로키 작전(Operation Cherokee)’이라는 그룹을결성했다.광주의비극은이란수도테헤란주재미대사관이점거된다음에일어났다.이란상황은한국상황에도긴그림자를드리웠다. 주한미대사관의보고서를포함해‘체로키작전’이만들어낸문헌의비밀이해제돼당시그런분위기를읽을수있다.나는 ‘체로키 작전’ 문건을수강생들에게읽힌뒤“미국은다르게대응해야했는가”하는간단한질문을던진다.흥미롭게도전두환의1979년 12월군부쿠데타에서부터80년 광주로이어지는상황에대해매년강의때마다학생들의견대립이심하다.

안개같은불확실성에휩싸인인물들을쉽사리비난하면안된다는점을강조하고싶다. 80년5월의미당국자들은무슨일이벌어지고있는지정보가부족했다.한국당국이나미대사관을통해얻는정보가왜곡되지않았다고장담할수없었다.

수강생일부는미국이광주상황을면밀히주시하기만하고전면에나서지않은것이옳았다고주장한다.제시하는근거는다양하다.이란및북한상황을포함하 는미국의전략적이해,타국내정불간섭원칙등이다.

하지만미국·한국인등을포함한수강생절반쯤은미국의‘소심함’에실망감을표한다. 이런학생들에게나는“미국에한국계엄군의광주투입을저지할법적권한이없었다”는기술적인사실을일깨워준다.미국이계엄군의광주투입을저지하지않았다고비판하는것은잘못됐다.미국이저지를시도해도전두환장군이이를무시했다면그다음에무슨일을할수있었을까.이런질문에대한명확한답은없다.

다만미국이직면한문제는기술적이라기보다정치적이었다.미국은어느시점에서미국의우려를한국군부에강력하게표명해야했을까.이문제에대해‘체로키작전’의내부토론은꽤서둘러결론을내렸다.미국이한국내법과질서확립의필요성에공감해야한다는것이었다.이런결론은이란상황을한국에잘못적용한때문이라고본다.

반미사회세력을이란에서처럼한국에서도대면하는건미국입장에선악몽이었다.하지만이란과한국상황을조금만 더면밀히비교했다면상황이전혀다르다는걸알수있었다.이란과달리한국의야당세력과학생시위는미국의이익을결코위협하지않았다. 80년한국에서벌어진민주화운동을훗날반미로치닫게만든건미국자신이었다.미국이한국에서이란처럼무질서를목격한건맞다.하지만이란주재미대사관점거와광주의차이점을인식하지못한건미국의큰실수였다.

미국의또다른우려는북한이한국상황을악용할가능성이었다.하지만당시북한군의의미있는움직임이있었다는근거는희박하다.최근드러난문건에따르면북한은광주에서벌어진일들을보고‘놀라움’을표했다.북한이광주의배후로작용하지않았다는근거일수있다.계엄령이전국으로확대된이후미국의대응은미온적이었다.주한미대사는중재에나서달라는한국측요청을거부했다.계엄군이광주에진주하자카터대통령은공식적으로“어떤때에는인권이안보에종속돼야한다”고 말했다. ‘체로키작전’그룹은전두환의집권을용인하고새로운권위주의정권에주변적인정도의영향력을미치는길을택했다.

미국은다르게대응할수있었을까.이문제에답하기위해서는1986~87년에벌어진일들을참조할필요가있다.보수파대통령인로널드레이건은전임자보다훨씬적극적인정책을구사했다.그는자유롭고공정한대통령직선을지지했다.어쨌든곤혹스러운역사로인해여태껏한국사회가분열됐다.한국이분열을극복하고화합하길희구한다.한국이80년에민주화됐을가능성을배제할수없다. 그때민주화됐다면한국은7년동안민주화운동과정의인명희생을피할수있었다.사실에기반한성찰은한국뿐아니라미국에도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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