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몽골유랑

20여년된미쓰비시파제로를타고몽골고원을달렸다

Motor Trend - - Critic - 글_이진우 사진_민성필(TEAMROAD STUDIO)

대지가 주는 압도감을 경험한적 있다. 3년 전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였다.끝없이펼쳐진대지의끝에서붉게물든하늘이이글이글타오르는걸보았을 땐, 나자신이너무나미미한존재라고 생각했다.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과장엄의시간이지나면아무것도보이지않는 짙은 어둠이 무겁게 짓누른다. 자연은그렇게짧은시간에압도감과공포감을선사하고는이내머리위로은하수를흩뿌리며미미한존재의마음을달랬다.

며칠 전, 몽골고원을 다녀오면서 희미하게잊힌나미비아의기억이떠올랐다.나미비아와몽골은수천킬로미터나떨어진대륙이지만두나라는꽤 닮았다. 넓은영토를가지고있지만대부분농작물을경작하기힘든척박한 땅이다. 농작물을 심을 수 있다고 해도 밤과 낮의 일교차가 심해 그걸버텨낼 농작물이 많지 않다. 몽골의 농경지 대부분은목초지이며,경작이가능한토지는전체농경면적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무도자라기힘든지민둥산이대부분이다.그저생명력질긴잡초들만이너른고원에붙어있을뿐이고,그풀을찾아유목민들이소, 말,양을끌고 넓은 땅을 유랑한다. 몽골은 지구상에남아있는몇안되는전통유목국가다.

몽골은남한면적의 15배나 되는큰땅을지녔지만인구는고작300만명밖에되지않는다. 그리고 그 인구의 절반이 수도 울란바토르에살고나머지반은유목민이다.인구가적으니당연히대중교통시설이부족할수밖에없다.그래서몽골에선자동차가필수적이다.

차를 하나 빌렸다. 1982년 처음 출시된미쓰비시 1세대 파제로다. 울란바토르에 있는게스트하우스에서빌렸는데주인이따로

있으나연식이언제인지도모른다.그저막연하게 25~30년 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배기량도 모른다. 후드를열고직렬 4기통이라는것만 확인했다. 연식에 비해 차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엔진소리에막힘이없고어디찌그러지거나부식된곳도찾지못했다.

수도울란바토르에서테를지국립공원까지거리는60킬로미터정도다.한국이라면1시간 이내에 충분히닿을 수 있는 거리지만몽골에선2시간이넘게걸린다.우선도로상태가좋지않다.왕복2차로아스팔트가깔리긴했지만여기저기갈라지고 패었다.또소, 말, 양들이 도로를 가로막기 일쑤다. 가이드에따르면 몽골에 7800만마리 정도의 양이 있다고한다.하지만이도정확한수가아닌추정일 뿐이다. 많은수의말과소, 야크도 울타리 없는 초원을 자유롭게거닐며 풀을 뜯는다. 모두 주인이 따로 있는게신기하다.

도로사정이좋다고해도빨리가진못했을 것이다.파제로를닦달해시속 100킬로미터까지올렸더니차체가너무흔들려‘이러다죽을수있겠구나’싶었다.사흘동안이차를 타면서 찾아낸 적정 최고속도는 시속 80킬로미터였다. 가끔 길게 쭉 뻗은 상태 좋은아스팔트를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에어컨이나오지 않아도, 차가너무흔들리고시끄러워도상관이없었다.오직‘저 지평선 끝에선 어떤 풍광이 날 기다리고있을지’를상상하며웃음을질질흘릴뿐이었으니까.

아스팔트가 끝나는 곳에선 당연히 오프로드가 시작된다.나미비아는비가내리지않아비포장길이라도노면에굴곡이없어시 속 140킬로미터까지 달리기도 했다. 반면몽골은비와눈이많이 온다. 길마다진창과물골이 생기고 그게 굳어져 노면 굴곡이 심하다. 차고가 높은 네바퀴굴림 SUV가 아니면달리기힘들다.다행히파제로는지상고가높은 파트타임 네바퀴굴림이다. 다니는 데 큰어려움이없었다.하지만충격흡수가잘되지않고차체가많이흔들렸다.

테를지는 제주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국립공원이다.어디를보든초록지평선이보이고,지평선이아니면거대한돌산이나민둥산뿐이다. 그리고 그 위엔 눈이 시릴 만큼 (진짜 시리다)파란하늘이있다.작열하는태양 빛을 오롯이 받아낸 초록과 파랑을 보고있는것만으로도눈이밝아짐을느낀다.몽골인들의시력이좋은이유를알것 같다. 가이드에따르면몽골에선안경잡이를보기힘들단다. 88세의 할머니도 돋보기를 쓰지 않는다고한다.

고원을더멀리보기위해게르(유목민텐트) 캠프 뒤에 있는 바위산에 오르기로 했다.그런데경사가급한것도,아주높은것도아닌데 쉽게 지치고 힘들다. 결코 내가 늙어서가아니라산소가약간부족하기때문일것이다. 테를지는 해발 1600~2000미터에 있다. 한라산 백록담(1947미터)에 준하는 높이다.그래서‘고원’이라부른다.

다시파제로에올라 4L 모드로당겼다.테를지국립공원의산엔나무가거의없어경사만 가파르지 않으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있다. 슬립이일어못오른다면그냥뒤로후진하면 된다. 테를지는 어디든 대충 셔터만누르면먼훗날까지고이고이간직하고픈인생샷이나온다.낡은파제로도몽골고원에선멋진 피사체다. 하긴이차는이런곳을수도없이 올랐을 것이다. 시간이 없어 가지 못한 고비사막에도다녀왔을지모른다. 그러고보니나미비아에도지구에서가장오래된나미브사막이있었다.두나라는닮은곳이많다.

산 위에서 한참 동안 있었는데 아직도해가 중천이다. 한여름 몽골은 해가 오후 10시에 떨어지고 새벽 4시 30분에 동이 튼다.하루가굉장히길지만단한순간도지루하지않았던 건 늙은 파제로 덕분이다. 풍광이 아무리좋다해도하루종일볼수는없지않은가. 파제로가 없었다면 그 풍광으로 들어갈수없었고나는또다른풍광에넋을잃을일도없었을것이다.

몽골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차를빌려다니길권한다.이전까지는몽골에서운전하려면한국에있는몽골대사관에서국제운전면허공증을받아몽골경찰서에서확인을 해줘야 합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다. 그런데법이바뀌어한국면허증과여권만있으면운전할수 있다. 문제는길 찾기인데, 몽골은울란바토르를벗어나면인터넷이잘안된다.따라서 인터넷 연결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지도 앱(맵스미)을 깔아야 한다. 몽골은도로가 많지않고 일직선으로 뻗어있어길찾는게그다지어렵지않다.

해가떨어지기시작하면그무시무시하던한낮의열기도마법처럼사라지고눈이닿는모든것을붉게물들이는기적처럼아름다운노을이펼쳐진다.이윽고달빛을품은냉기가 고원을 감싸면 불빛 하나 없는 고요의어둠이밀려오는데이어둠이또다른신비의시간을만든다.초원에누워밤하늘에촘촘히박힌별을보고있는것만으로도밤하늘을유영하는착각에빠진다.달이없는그믐이면은하수까지볼수있으니어쩌면별을세면서밤을하얗게지새울지도 모른다. 몽골의여름밤은아주짧으니까말이다.

에어컨은있지만냉매가없어뜨거운바람이나온다.오디오도있지만소리는나지않는다.그래도1세대파제로는별탈없이거친길을잘달렸다.다행이다.

Newspapers in Korean

Newspapers from Korea, Republic

© PressReade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