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남자

말과인연을맺은사연은다제각각이었다.하나,그들이말을통해느끼는감정은꽤나비슷했다. ‘경쟁’과가장가까이에서‘관계’ 역시놓칠수없는남자들만의세계.승마는그틈에서깊이감춰둔또다른아드레날린을일깨운다.가을과남자,그리고말.이들은왜만날수밖에없는가.

Neighbor - - Feature - Editor SEOL MI HYUN

말을잘탈수있는확률이높은사람은?과학적인근거는없지만,어쩌면어린아이혹은여자일가능성이높다.승마는단순히말을타는운동이 아니다. 소통하고 호흡하고, 교감하는 예술.그것이 바로 승마다. 소통에능한아이나여자가 태생적으로 승마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구조인 것이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상대방의상황과심리를 이해하는 것. 말과의 ‘관계 맺음’ 역시 마찬가지다. 600~700kg의 거구. 이어마어마한체구때문에보통사람들은말이초식동물이라는사실을잊고는한다.말은초식동물의특성상늘주변을경계하고의식한다.겁이많을수밖에 없다. 말의두뇌는인간으로치자면 5세 수준. 두뇌의크기역시 작다.하지만작은뇌에비해감정을담당하는대뇌변연계가상대적으로발달해사람의감정을잘읽을수 있다. 그러니기승자와환경의변화에민감할수밖에 없다. 공감과감정이입에능한말은,사실여성과많은점에서가깝다.상대적으로둔감한남자는말이어떤생각과감정을가지고있는지눈치채지못한다.말이자신에게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말의 언어를 이해하는것.그것은인간의언어를이해하는것과별반다르지않다.승마와리더십의철학이등장할수밖에없는이유다. 평보, 속보,구보등인생의속도와닮은승마의보법은또어떤가.

휴일의 승마 클럽. 아버지와 함께 승마장을 찾은 초등학교 저학년의남자아이가자신보다큰가방을어깨에메고울먹이며승마장을나선다.그와중에“안녕히계세요”라는인사말도잊지않는다.이아이에게말은 아직 넘지 못한, 두려움의 존재다. 토닥이듯 뒤이어 들리는 교관의 목소리, “울지 마, 극복해야지.” 남자들의감성이치솟는다는이가을,문득궁금해졌다.그리하여남자들에게말을탄다는것은?

당근과박차의리더십 이성락

“오늘은아침8시에기승을했어요.한달에세번정도승마장을찾고는하죠.”신한은행부행장,신한생명대표이사를거쳐잠시휴식을만끽중인이성락대표.그는승마를시작한지벌써15년째다. “말을타고2년후쯤일거예요.실제키를재보니, 2cm가 컸더라고요.”물론더정확하게는키가큰게아니라움츠러든자세가펴지면서숨어있던키가발견된것이리라. “아내와딸도함께시작했는데중간에포기했어요.저도처음에는말을타는게무서웠어요.말에서떨어진횟수만도20~30번은될거예요.혹여낙마를하더라도고삐만잘잡고떨어지면부상을입지는않아요.”신체의일부가땅에닿았을때고삐를놓아야낙마시부상을입지않으며,결코승용마는사람을밟지않으니두려워할필요가 없다고. 그는주로주말을이용해두 타임, 약2시간승마를 즐긴다. “2시간정도말을타면 10km를 달린것과비슷한운동효과를 내죠.” 보통크고무거운말은타기가힘든게사실.한데그는무겁고보폭이큰말을좋아한다.보폭이큰말은역동적이고,기승자역시운동량이많을수밖에없기때문이다. “말은컨트롤하기가 어려워요. 말안듣는말을강제로하면오히려더 반항하죠.말을들을까싶어채찍질을하면끝까지반항해요.그럴때는당근이최선이죠.저역시말을50분정도타면,많게는100번은칭찬을해줘요(웃음).”승마는신체단련은물론리더십을키우는데효과적이라는게그의 설명. 혹시 ‘박차를가하다’의 어원을알고 있는가? “승마 구두뒤꿈치에부착하는 U자형 도구가있는데, 그것의이름이 ‘박차’예요. 이박차를이용해말의옆구리를자극하면앞으로나아가는거죠.” 물론박차를자주,세게사용하면말이상처를입을수있고,상처가아물어굳은살이생기면또다시더세게박차를가해야한다는악순환이반복된다. “과거에는제왕,선비들이말을많이탔죠.나폴레옹역시자신의애마를타고아침2시간,오후2시간승마를즐겼다고해요.”적절한당근과박차, 배려,팀워크,그리고긴장감이공존하는또다른세계.승마는여전히과거와현재를넘어리더십을배우는훌륭한교과서다.

“80대 중반의어르신이말을타는걸보고깜짝놀랐어요.다리까지불편하신데도말이죠.저역시죽을때까지말을탈참인데,영화<로빈후드>에서처럼숲에서말을타보고싶어요.” 영국,벨기에등아름다운숲속에서의외승.냉철하고이성적인금융의세계에서몇십년간쉼없이달려온이성락대표,그가꿈꾸는로망은지극히도낭만적인풍경속에있었다.

가족이라는이름으로하동욱

“두아이를데리고승마장에갔는데,아들녀석이너무좋아하는거예요.저역시아이들이타는걸구경만하다실제로타보니재미있더라고요.”하동욱안과의원원장하동욱.사람과교감을나누는말이재활,심리치료에도큰도움이된다는것은널리알려진사실.아들정준이를위해시작한승마는이제가족모두의취미가됐다. “골프는가족이함께즐기기엔힘들어요.반면승마는가족운동으로좋은것 같아요.”어느덧말을탄지10년. “일요일마다말을타러오는데,그러다보니더욱규칙적이게돼요.승마가운동량이많으니아침밥을먹어야하고,일요일에도자연스럽게7시면일어나게되더라고요.”늦잠을자고싶어짜증을내는아이를깨워매주승마장을찾는일은결코쉽지않은일이다. “올때는힘들지만,막상타고나면몸과마음이홀가분해지고재충전이돼요.엉덩이나등과같이평소사용하지않는근육운동에도좋고,심리적으로도편안해져요.다른운동보다특히좋은효과를찾자면포용력을갖게해준다는사실이죠.말이나에게순종하고,그말로부터배려를받았기때문에나역시배려해야겠다는생각이들게되거든요.”굳이누군가가르치지않아도포용의미덕을자연스럽게배운다.물론그역시처음부터완벽했던건아니다. “승마를시작하고5년쯤에낙마를경험한적이있어요.그이후바뀐생각이하나있죠.”말을탄지5년.말에대한자신감과약간의자만이슬그머니찾아오던시기였다.그는당시만해도자신이말을컨트롤해야한다고굳게믿었다. “600kg에 이르는거대한말을사람이절대이길수없어요.말을복종시키고,지배하기보다말과부드럽게교감하며우아하게타는게가장잘타는거예요.” 보통사람들이보기에기승자는아무것도하지않은채가만히앉아있는것처럼보인다.하지만찬찬히둘러보면말의움직임부터가다르다는걸알수있다.말의앞다리가살짝들리고,뒷다리가깊이들어가는,부드럽고경쾌한걸음걸이.말과기승자가완벽하게교감했다는증거다.이제그는맹목적인자신감을내려놓고우아한말타기를꿈꾼다.그곁에는말을너무좋아하는아이들까지함께하니!분명승마는리더십의귀한덕목이지만,그에앞서남자에게가족을일깨운다.승마가우아한귀족의스포츠인이유,그답은바로거기에있을것이다.

김명진두려움뒤의그무엇

주말과 휴일, 골프약속이없는날이면그는어김없이집과가장 가까운 이후국제승마클럽을 찾는다. 케이와이엘 대표이사김명진. “승마를하는친구가있는데,어느날자마를샀다고구경을오라는거예요.직접보니흥미가생기더라고요.”이호기심에기름을부은데는사업도 한몫했다. “국제 물류업을하다보니 중앙아시아, 특히 몽골 쪽으로의 출장이 잦은 편이에요.그때마다사업파트너들과함께승마할기회가많은데,저는늘빠지고는 했죠.” 그러다가시작한승마가어느덧 3년째다. 3년이면초보단계지만그는교관도인정할만큼습득력이빠른편이다. 타고난운동신경과사업가특유의두려움없는도전정신도작용했을터.

“영국속담에이런말이있대요. ‘하루가즐거우려면이발을하고, 일주일이즐거우려면 ‘승마’를 하라, 그리고평생이즐거우려면 정직하라.’”정확히는일주일이즐거우려면‘여행’을 하라가맞지만,승마는여행만큼큰즐거움을주며일주일간의활력을책임진다는의미를담고있을것이다. “주말기승후에는몸이무척가벼워져요.하체근육강화에도도움이 되고요.” 스트레스해소와함께성취감또한대단하다고그는 덧붙인다. “저는골프보다승마가훨씬재미있어요.사실골프는라운딩을하는멤버와코트장에따라영향을 받지만, 승마는오직말과일대일로교감할수있으니까요.”말과 나, 둘사이의 ‘밀당’. 그는이스릴넘치는호흡을매주기분좋게 즐긴다. 얼마전에는드디어몽골초원에서말을타고왔단다. “풍경도잠시,첫낙마를거기서 경험했어요. 움푹 파인 웅덩이에 말의 발이 걸렸고 제몸이붕떠서초원위에 떨어졌어요. 당연히바로다시올라탔죠. 낙마에대한두려움을떨치려면낙마후바로다시타야해요.” 두려움앞에겁을내기보다기꺼이도전하는스타일인그에게 낙마는 오히려 특별한 경험이었다. “제주에 사는 친구가있는데그는말을타고출근해요.얼마전그친구와함께제주숲속으로외승을다녀온적이있어요.”체감속도30~40km의짜릿한속도감과자연이선사하는아름다움이공존하는 시간.온전히말과함께한3일간의외승을그는아직도잊을수없다고. “살아 있는동물을컨트롤한다는것은어렵지만그만큼매력이있어요.일단말에오르면아무생각을할수가없어요.말그대로‘혼마일체’가되는거죠.”가슴조이는경쟁에서잠시벗어나,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뜨겁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휴일오후,그는‘제니퍼’와함께달리고,또달린다.

평생을말과함께한남자박소운

40년, 그의인생은승마를떼어놓고는말할수가없다.스티븐승마클럽의박소운원장.우리나라승마1세대중막내축에속하는그는승마라는분야자체가낯설던 1980년대,국가대표로명성을떨쳤다. “원래축구선수를하다가중학교1학년때승마를시작했어요.운동을했고,겁이없는성격이다보니늦게승마를시작했지만1년만에시합에나가게됐고요.”그당시그의이름뒤에는‘신동’이라는말이따라다녔다.최소10년은타야말을탔다는명함을내밀수있는승마계에서그는3년만에국가대표로발탁됐으니까.아시안게임은메달,승마올림픽단체4위등불모지인한국에서일궈낸빛나는영광뒤에숨은고단하고지난했던이야기는이제추억처럼기억한편을채우고있다. “가장기억에남는건당연히올림픽종합마술경기예요. 3일동안마장마술,장애물,크로스컨트리경기를진행한후토털포인트로승부를내는경기죠.특히32km의코스를주행해야하는크로스컨트리후의희열감은아직도잊을수가없어요.”이제그는‘역사이래처음’이라는화려한수식어를내려놓고말을조련하는트레이너이자전체를총괄하는작전사령관으로서있다.

“말의몸은600~700kg이지만,두뇌는3세영아수준이에요.당연히파워에서는사람이밀릴수밖에없죠.그러니머리로지배를해야 해요.예부터말이리더들의필수덕목이었던이유죠. 그당시에는능력없는리더에게는말을주지않았다고 해요.” 승마는단순히말에오르는운동이아니다.배려심,정신력,인내,그리고책임감.말에오르기위해서는필요한덕목이의외로많다. “얘네들의마음을뺏어야해요.그런다음서로합심해서목적에다다르는거죠.” 그가강조했듯,말을타는과정은사람의마음을사는것과같다.한마리말의마음조차사로잡지못한다면,누군가의마음을어떻게사로잡을수있을것인가. “말의뇌속으로들어가오늘은 5%, 내일은 7%, 꾸준히점령해가는거죠.말의뇌를점령하면모든게예측가능해요.그래서승마는머리싸움이에요.”그는이치열한인생의축소판틈에서마음껏즐겼고뜨겁게사랑했다.혹시말의체온이사람보다1℃높다는사실을아는가.그들의순수하고뜨거운심장의언어를이해하고교감하는일.승마는거기에서부터시작된다.우아해보이지만치열한두뇌싸움이공존하는승마의세계.가을은말타기에도좋은계절이지만,숨겨진남자의DNA를자극하기에도더없이좋은계절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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