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에밀레종' 대역사 … 삼국유사까지뒤졌다

제작비40만~50만달러, 연인원1만명동원 음향좋은황금주조율 … 과학·예술의집약체 한차례실패 … 1976년 6월 29일공식타종식

The Korea Daily - - 기획-우정의종 - '우정의 종'어떻게 만들었나 koohyun@koreadaily.com

1976년 6월 13일 서울 말죽거리(현 재강남서초구양재동) 범종사.

초여름 한 낮 벌판 위로 '과앙'하 고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3분 여간 계속된 여음이 잦아들 무렵, 종소리 만큼이나 큰 환호성이 사라진 음의 빈공간을메웠다.

범종사의김철오(당시34세) 대표 를 비롯해 김동율(당시 42세) 종장 장, 김동골(당시 46세) 종장 등 60 여 명의 주종공들은 감격에 겨워 껑 충껑충뛰었다.

높이 3.63미터, 둘레 7.25미터, 무게 18톤의 대형 범종 '우정의 종' 시험 타종 현장이다. 영하의 칼바람 이 불던 전년 12월에 시작해 꼬박 6 개월만이었다.

또 하나의 에밀레종을 1200년만 에 만드는 역사적인 작업이다. 제작 비는40~50만 달러가들었고연인원 1만 명이 동원됐다. 선조의 지혜와 현대의 과학, 예술이 이 종 하나에 녹았다. 종장들은 한번 도 만들어본 적 없 는 종 제조법을 알기 위해 삼국유사 부터뒤져야했다. 깨지지않고음향 이좋은황금주조율을얻기위해서 울공대와 과학기술대의 기술 협조가 필요했다. 동괴 83%와 주석 15%, 금·은 등 기타 2%의 비율은 그렇게 탄생했다. 종 표면과 고리의 조각은 서울미대학장이새겨넣었다. 종은 한차례 실패했다. 5월에 종 틀을 다 만들고 깊이 6m 땅구덩이 를 파서 묻은 뒤에 쇳물을 부었지 만, 1차에 부은 것과 2차에 부은 것 이 접착이 되지 않아 종이 두 동강 났다. 쇳물을 틀에 주입하는 시간이 늦어진 탓이었다. 20톤에 달하는 무 게의 쇳물을 50~70분 안에 고루 부 어야했다.

실패는 초조했다. 약속한제작 완 료시점은 6월이었다. 지난 5개월의 준비를 한달 안에 마쳐야 했다. 철 야작업이 이어졌다. 그리고 6월 4일 암틀(내형)과 수틀(외형)을 대형 기 중기에 매달아 깊이 6m 땅밑 구덩 이에 넣은 뒤 쇳물을 붓기 시작했 다. 1500도의 쇳물이 흙속에서 저절 로식기를8일간기다렸다.

김철오 대표는 “종이 잘 만들어졌 는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어 밤잠을 설쳐야했다”고회상했다.

공식 타종식은 6월 29일 오전 10 시범종사에서열렸다. 종은부산항에서 1만 톤급화물선 몬타나호에 실려 8월 6일 LA에 도 착했다. 언론들에 따르면 LA에서 의 첫 타종식은 한국에서의 공식 타 종식이 있은 지 꼭 3개월 만인 9월 30일 샌피드로공원에서열렸다.

정구현기자

[미군신문스타앤스트라이프스제공]

1976년 6월 29일 우정의 종 제작공장인 서울 범종사에서 열린 공식 타종식에서 김성진 문공부 장관(종을 기준으로 왼쪽으 로), 리처드슈나이더주한미대사등한미양국관계자들이종을울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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