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Korean)

샤오취안,사진으로세상과소통하­다

- 글|양윈첸(楊雲倩)

‘중국 최고의 인물사진작가’라 불리는 샤오취안(肖全)을 인터뷰한 날은마침베이징 민성(民生)현대미술관에서열렸던­그의전시회가막을내리­던날이었다. 성큼성큼 걸어온 그는 인사를 나누며‘마지막 관람객’으로서 필자를 성대히 환영하더니, 자신과 함께 세계를 떠돌았던큼지막한 트렁크에 개인 소장품과 지인에게 받은 책 등을 하나하나 조심스레 집어 넣었다. <우리들 세대>는 그가 베이징에서개최한 세 개 전시회 중 하나다. 앞서 그는 금일미술관(今日美術館)에서 <금일·샤오취안 초상(今日·肖全肖像)>, 아트스페이스 <후이>(官舍·會空間)에서 <뷰티풀월드(美麗世界)> 전시회를 진행한 바 있다. 작품을 위해 이곳 저곳을 떠돌다 돌아온 그는 지난 2015년부터 집중적으로 전시회를 열며 관객들에게 자신의‘애장품’ 들을꺼내공개하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친구이자 가수 겸배우였던 이즈난(易知難)의 사진을통해그를알고있­다.하지만 1980년대 청두(成都)음악계를들썩였던사진­속그녀는이미사람들의­뇌리에서잊힌지오래다.이즈난의이름을검색해­보면그의사진과관련된­자료가많이나온다.아름다운외모에어딘가­슬퍼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는 그가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세월 속에서 영원히‘아름다운전설’로남았다.

샤오취안은 이에 대해“훌륭한 사진은기적과도 같다. 기적은 매일 일어나지 않고, 항상 당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세계적 사진작가 요세프 쿠델카의말에깊이동감­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1980, 90년대 가장 큰 명성을누린 문화예술계 인물들을 기록한 것이야말로 그에게는 하나의‘기적’일지 모른다.군복무시절아버지가준 180위안으로 생 애 최초의 카메라인‘시걸(Seagull) 205’를구입한때부터그는평­생을 사진이라는외길을 걸어왔다. 그러던그가 인물사진에집중하게된­계기는바로잡지에서우­연히발견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시인들의 시인’이라 불리는 미국의 시인 에즈라파운드가 중절모를쓰고지팡이를­짚은채온갖 세월의 풍파를 거친 결연한 눈빛으로 작은 석교(石橋) 앞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그 아래에는“너무 늦었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그토록 어렵고 헛된 일이었 다. 이제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겠다. 그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때의 사진 한 장과 한 마디 문구는샤오취안의 가슴 속에 깊이 박혔다. 그는이것을“지식인의 깊은 고독과 정신적 신앙”이라고 표현했다. 불현듯, 렌즈를 통해역사를기록하고후­대를위해사진을남겨야­겠다는생각이머리를 스쳤다.

무용수 양리핑(楊麗萍)의 춤사위, 천카이거(陳凱歌)·장이머우(張藝謀)·장원(姜文)의 영화, 구청(顧城)·궈루성(郭路生)·바이화(柏樺)·베이다오(北島)·수팅(舒婷)의 시, 더우웨이(竇唯)·허융(何勇)·장추(張楚)·추이젠(崔健)·주저친(朱哲琴)의 음악, 왕숴(王朔)·싼마오(三毛)·거페이(格非)·왕안이(王安憶)·류전윈(劉震雲)·스톄성(史鐵生)의 글…허름한곳에서도 재능만큼은 눈부시게 빛났던, 당대문화계를이끈선구­자들이 한꺼번에등장했던 그 시기는 예술창작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1984년 전역 후 청두로 돌아온그는 당시 흔치 않던 전문 사진작가로서1996­년까지 10년 남짓 활동하며 문화계를이끌어간대표­적인물들을렌즈에 담았다.

샤오취안에게 이들은 중국 문화예술의발전을 이룩한 주역이면서 각자의 주관이뚜렷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때는 이상주의가 만연하고 열정과 의욕이 하늘을 찌를듯하던시대였죠.건물옥상에서서도시의­불꽃이 사방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보던 느낌이랄까요.”따라서샤오취안이그들­을선택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시대가 샤오취안을‘낙점’했다는것이맞는표현일­것이다.

샤오취안은 2012년부터 렌즈를 일반인에게로맞추기 시작했다. 유엔(UN)에서펼치는‘우리가 바라는 미래(The Future We Want)’공익캠페인을 위해 중국 각지에서 일반인 32명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스스로 수줍음이 많다고 말하는 그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앞서 그는몇년에 걸쳐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주로 대자연과 풍경을 접했다. 하지만 일반

인들과 마주했을 때는 최대한 그들의‘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애썼다. 개개인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편히갖도록배려­하며점점자신을신뢰하­고동질감을느끼도록 했다. 그는소통을 위한 최고의 방법은 바로‘진심’을 전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어 일반인 피사체라는 주제로 탄생한 전시회가 바로 <금일·샤오취안 초상>이다. 전시 기간, 금일미술관 전시장에서는관객신청­자를대상으로현장촬영­이 진행됐고, 촬영된사진은곧바로새­로운 전시품으로서 13.5m 높이의커튼 월(curtain wall)에 투사되었다.

지금도 샤오취안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다.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배려도 그대로다. 하지만시간이흐르고경­력이쌓이면서여기에약­간의여유로움이 더해졌다.

그는 프랑스의 유명 사진작가 마크리부가중국에서작­품을찍던기간그의 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마크 리부는 이제이 세상에 없지만, 샤오취안에게 그는 영원한 정신적 멘토이자 넘을 수 없는 고지이며, 일생의목표이면서 든든한‘선배의 그늘’이기도 하다. 그에게 마크 리부가 끼친가장 큰 영향 중 하나는 바로‘주변의모든 사람들을 존중하고 아끼라’라는그의 철학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저는 늘‘사진쟁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습니다.제게가장익숙한방식으­로세상과대화하면서이­세계를표현하는 거죠.”

그는 사진 덕분에 많은 인연을맺었고, 풍부한 정신적 자양분도 얻었다. 누구나 하나쯤 간직한 소중한것들을 사진 속에 담아내고 사람들과교감하며 성장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을 통해 위로 받고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가장 큰 소망이다.

(미서명 사진은샤오취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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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년3월베이징,갓설립된‘햇빛쏟아지는제작사(陽光燦爛制作公司)’건물앞에서장원을대상­으로찍은사진.당시32세의장원은‘햇빛쏟아지던날들’을찍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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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샤오취안은일반인­들을렌즈에담는데열중­하고있다.그는이시대의가장평범­하고가장흥미로운사람­들을위해최고로감동적­인사진을남기고자한다.사진/친빈(秦斌)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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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昆明)과진촨(金川)에서찍은일반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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