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Korean)

예술은‘기본’과 ‘대중’으로회귀해야한다

- 글|리후이펑(李慧鹏)

주샤오항(朱曉航 ), 자는정현( 净贤), 저장(浙江) 성진화(金華 ) 출신,칭하이(靑海 ) 성저장상회사무장역임. 헌재 베이징 절회연합투자관리 유한공사 이사장, 칭하이성 중산문화예술원 이사, 베이징 한문성당서화원이사, 중국서화예술연구원연­구원

어려서부터 심취한 서예를 20년 넘게배우고 있는 주샤오항. 고풍스러우면서도힘이­있고두터우면서도균형­감있는 필체, 매끄러운 필치와 시원시원한 구도로대가의풍모를지­닌것으로평가받고있는­그를 소개한다.

안(內)에서밖(外)으로의예술

주샤오항은 조상 중에 한림원 학사가 두 명이나 있을 정도로 인재가 많은 학자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아버지는사범대학­교에서공부한후군인이­되었다가교편을 잡았고, 이후 수십 년 간 꾸준히 글을썼다. 의사였던어머니는어려­서부터조부의 엄격한 교육과 보살핌 속에서 자랐는데, 어머니는 어렸을 때틈만 나면 조부께서 종이와 먹을 준비해 놓고 서예를 연습시켰다는얘기를자­주해 주셨다.

이러한 가풍 속에서 주샤오항은 여섯살 때부터 10 년을 매일같이 안진경(顏真卿), 류공권(柳公權), 미불(米芾), 왕희지(王羲之) 등 대가의 글씨를 따라 썼고, 대전(大篆)체와 위비(魏碑) 등의 서체를 공부했다. 후에 교사가 되고 나서도, 이후공무원이된후에도­그는연습을게을리하지 않았고 결국 탄탄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주샤오항의 고향은 강남(江南)의 정취가물씬 풍기는 저장성 진화다. 이 지역은예로부터 많은 명인들을 배출했다. 그의말과행동에서강남­문인들의기질을발견할­수있는 이유다. 강남 문인들의 방식을고수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예술이 어떤틀에 얽매여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낭만과 수려함을 쫓는 강남 서풍 뿐 아니라더욱다양한예술­형식을추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수년 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던 그는 마침내 중국 서북지역인칭하이에서 영감을 얻었다. 자갈, 초원,사막 그리고 호방한 서북지역의 풍습, 여기에 대범하면서 자유롭고 외향적인 기질이있는그곳에서 바로 자신이 찾던영감을발견한 것이다.

우연히 맺은 사제의 인연

주샤오항은 칭하이에 머무르며 저장상회의사무장을 지냈는데, 그런와중에도 예술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10년동안 칭하이 곳곳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의 서체는 마음의변화에따라해서­체에서호방한느낌의행­서체로옮겨 갔다.

특히우연한기회에당대­곤륜파서예창시자이자 중국 서예가문 보씨서법(保氏書法) 3대 전수자인 바오궈안(保國安)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주샤오항의 수준은질적인발전을 이뤘다.

2012년, 그는 베이징에서 친구와 함께 바오궈안 선생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바오선생도칭하이출신­이고주샤오항자신도 칭하이에서 10년을 살았지만 그의명성만들었지직접­본적은없던 터였다.

당시 공교롭게도 바오 선생에게 갑작스레 일이 생겨 언제 작업실로 돌아올지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한참을 기다리다 지루해진 주샤오향은 작업실에 있던문방사우를 발견하고 붓을 들어 바로 몇 줄을써 내려갔다.

한참 후 돌아온 바오 선생이 글씨를보고“작업실에 누가 다녀갔는가? 마음을편안하게해주는 글씨로구나, 정말깊이가있다!”라고 직원에게 말했다. 직원은 주샤오항이 쓴 것이라고 대답했고, 바오 선생은 의아해하며“정말 당신이 썼습니까?”라고 물었다. 주샤오항이“그렇습니다”라고 답하자 바오 선생은“보통 내공이 아닙니다. 왜 서예를 계속 하지 않습니까?”라고다시 물었다.

주샤오항은 사실 서예에서 손을 놓지않고 꾸준히 연마해 왔지만 정식으로 스승을 모신 적이 없었다.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글씨를 연습하고 대가의서체를 따라 쓰면서 전통을 토대로 한 창조를 추구하다 보니 인기를 쫓아가는 식의‘일그러진 창조’나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창조’에는 콧방귀를 뀌었다.그리고아직자신만의스­타일을정하지못

하고계속해서예술에대­한고민을하고있는 중이었다.

이 때 주샤오항은 그냥 친구를 따라간 것일 뿐 자신의스승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주샤오항은자연스러우­면서 참신하고 대범한 필체, 전체적으로 기백이넘쳐 흐르지만 세밀한 곳까지 놓치지 않는 바오 선생의 예술을 존경해 왔다. 바오 선생의 필법, 자형, 묵의 색깔, 행(行)의 기운, 구도는모두조화를 이룬다. 카리스마있는붓터치와­운치가깃든글자에서부­터힘이있는 행(行), 안정감있는구도, 기운이넘치는 묵(墨)까지 그의서예는보는이로하­여금 마음을 트이게하면서 그 예술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바로 주샤오항이 찾아 헤매던 예술 스타일과 맞아 떨어졌다.

바오 선생의 물음에 주샤오항은 이때다 싶어“가르침을받을 스승을 만나지 못해서 입니다, 선생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를 서예 예술의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그 후 바오궈안과 주샤오항은 칭하이에서 정식으로 사사의예를올리고사제­의연을 맺었다.

예술은 탐미하는 것, 그러나 모두의 것

주샤오항은 수년간의 노력과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서예예술은 전통을 이어받아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러한 전통 속에서 개인의 개성을 담은 서예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진정한창조라는것­을알게 되었다.

그는 서예 예술을 탐미와 대중, 두 가지로 결론 지었다.수천 년을 이어내려 온 중국의 서예 역사는 풍성한 예술적자산을 후대에 물려주었다. 서예 명인의 작품을 보면 눈과마음이 즐거워지는 미감을 담고 있는 한편 예술가 개인의 재능과스타일이한껏 드러난다.

지금의 서예 예술은 어지럽거나 이상하게 쓰는 서체가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서예의 독특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있다. 단지‘대가’라고 불리는 소수만이 서로를 치켜세워 주거나 이를 스스로‘창조’라고 부르며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이러다가는시대의급류­에휩쓸려사라질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서예 작품은 높은 신분과 명성을 가진 자들에 의해 독점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가 흐르며 물질문명과 함께 정신문명도 끊임없이 발전하였다. 근현대 서화(書畵)시장에 과열 현상이 나타나긴 했지만 국가가 정책적 조정에 나섰고 이에따라 이성을 되찾고 있다. 또한 대중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서예 예술이 대중화되고 있다.“앞으로 서예 예술이 발전하려면 더 많은 사람의관심이 필요하고 그래야만 더욱 빛을 낼 수 있다”고 주샤오향은 말했다. (미서명 사진은인터뷰이본인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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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사진/천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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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샤오항 사진/천젠(陈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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