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Korean)

중한 영화, 상호보완하며 발전해온 25 년

글|손장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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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중국과 한국은 수교 25주년을 맞이한다. 중한 경제교역의 규모가비약적으로발전­하면서이젠양국은서로­에게없어서는안될중요­한파트너가되었다. 그시간 속에 서로의 감성과 가슴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 교류도 급속도로많아졌다. 영화, 연예인, 드라마, 음악,패션 등은 이제 양국 국민들의 중요한 공통관심사가 되었다.

서로가몰랐던그들만의­영화

대륙에서 만들어진 중국영화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됐던 시기는 1980년대 후반이었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과천카이거(陳凱歌) 감독의 <붉은수수밭(紅高梁)>, <홍등(大紅燈籠高高挂)>, <귀주이야기(秋菊打官司)>, <패왕별희(覇王別姬)>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패왕별희> 같은작품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영화제와 관객의관심을받으며중­국영화를세계인의관심­속으로이끈 작품이었다. 그때까지만해도 한국의 영화 관객들은 홍콩 느와르영화를 중국영화로 알고 있었다. 반면 수교 당시 중국인들이 알고 있는 한국 영화는 거의 없었다.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만이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와 이두용 감독의 <뽕> 정도를 아는 것이 고작이었다.오히려 조선(북한)에서 만든 <꽃 파는 처녀>, <망향>, <피바다> 등의 영화를 더 많이알던 시기였다.

서로를알게해준‘한류’

1990년대 한국은 본격적으로 문화의상업화가가속화­되는시기를 맞는다. 서구를 통해 유입된 해외의 상업적 문화들이한국의 젊은이들을 자극시켰고 모든 대중문화는 소비자들을 찾아 적극적 대중화의길을 가기 시작한다. 수교 이후 한국유학 생들의 숫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국으로몰려드는한국­유학생들은자연스럽게 한국에서 활성화되는 한국의 상업문화를중국으로실­어나르는개미역할을하­며중국의청소년들과자­연스런공감대를형성하­게되고중국인들이한국­에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첨병 역할을하게 된다.

처음‘한류’의 물꼬를 튼 것은 한국의 대중음악이었다. 한국의대중음악을소개­하는 ’서울음악실’이라는 국제라디오방송국의 프로그램을 시발로 안재욱, HOT, NRG, 베이비복스, 이정현 등 한국 가수들의콘서트가중국­청소년을 열광시켰다.

또한 한국의 드라마는 중국중앙방송(CCTV)나 베이징방송(BTV) 등 중국 전역의 방송을 통해 소개되었다. 1993년CCTV가 한국 MBC로부터 수입된 첫번째한국 드라마 <질투>로부터 한국드라마는중국에서 24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그 기간중국각 TV방송을 통해 100여 편에달하는 한국드라마가 중국에서 방영됐고 시청률은 나쁘지 않았다. 그 중 <가을동화>, <대장금>이 가장 대표적이다. 반면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드라마도 있었다. 2002년중국드라마<황제의 딸>은한국에서큰인기를 누렸고 많은 한국인들은 <황제의 딸>로부터중국드라마를알­게됐다.

서로를알기위한시도와­노력

영화, 드라마, 음악, 패션 등 문화의여러 분야 중 영화에서의 교류는 다소 늦게 시작되었다. 중국과의 교류 협력을 모색하던 한국영화는 처음으로 중국을 영화 촬영의 로케이션으로 활용하려 한다.중국의 풍광과 스케일을 담기 위해 1999년 영화 <아나키스트>는‘협작(協拍)’이라는 협력 방식으로, 같은 해 영화 ’비천무’ 는‘합작(合拍)’과 중국용, 한국용 두가지버전을 만드는 협력 방식으로, 2000년 김성수 감독의 <무사>는 중국 스태프와 촬영지를활용하는방식­으로각각다양한교류방­식을 시도했다. 그 이후 많은 한국영화가중국의다양­한볼거리를활용하는형­태로 제작되어 진다. 하지만 양국의 영화가대중에게 소개되는 것은 외국영화의 쿼터제나 양국간 영화 소재의 제한 등으로 인해한계가 있었다.

중한수교 2년이 채안되어교류가본격화 되기 전, 1994년 강제규 감독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그는 중국 영화감독 장위안(張元)의 부인이자 시나리오 작가인닝따이(寧岱)에게 자신의 첫번째 작품 <은행나무침대>의 시나리오집필을 의뢰했고,장위안 감독의 <북경녀석들(北京雜種)>의한국 내 배급도 상의했다. 양국간의 언어적·문화적 차이, 대중의 선호도 차이 탓

에성공적교류가되지는­않았지만의미있는첫중­한영화 교류였다.

그 후로도 다각도로 영화 부문의 교류 협력이 시도되었으나 딱히 속시원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을 즈음 펑샤오강(馮小剛) 감독이 영화 <집결호(集結號)>의 촬영 때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술 스태프들을 소개해주기를 강제규 감독에게 부탁을한다. 이에 <집결호>는 양국 촬영 스태프들 간 인적교류까지 이뤄진 첫 영화가 됐다. 2007년 <집결호>는 중국대중영화의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 치우는 역사를 세우게 된다. 이후 <집결호> 촬영에 참여한 한국 스태프들이 <집결호>에 이어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적벽>까지 참여함에따라새로운 방식의 중한 영화 교류영역이 본격적으로열리게된다.

<집결호>의 성공은 중국에서도 영화를통한상업적영역­의개척이가능하다는믿­음을 중국 영화인들에게 고취시키며 중국영화를 산업적 측면에서 바라보게 만드는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기술 스태프들은한국영화시­장규모의한계로인해다­양한장르와스케일의작­품을만날기회가제한적­이었던아쉬움을중국이­란큰규모의시장에서 극복하기를 희망했다. 이런 중한양국 영화시장의 각기 다른 수요가 그 이후로 <당산대지진(唐山大地震)>, <용문비갑(龍門飛甲)>, <1942>, <적인걸(狄仁杰)>등의작품을통해중국의­컨텐츠에한국의기술력­이 결합하는 형태로 수많은 성공사례들을 만들었다.

최근몇년간영화 외에 중한 양국은예능면에서도 다양한 협력을 시도해왔다. <나는 가수다>, <아빠 어디가>, <런닝맨> 등중국판이 연이어 중국에서 방영됐고 대박을 터뜨렸다. 심지어 한국 유명 PD가 중국 진출에 나서기도 했다. 중한 예능면의협력도 갈수록 심화됐다. 과거 한국에서판권을들여오­는것으로부터 공동제작, 나아가 한국으로부터 우수예능인재를 영입하기도 한다. 중한 예능 면의 협력이 시작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발전 속도는놀라울정도로 빠르다.

서로에게도움주는길이­열리다

불과몇년전중국영화시­장의산업규모는한국의­절반수준이었다.하지만지금은 미국 헐리우드 영화시장을 초월해 전세계 1, 2위를 다투는 규모가 되었다. 2013년 저우싱츠(周星馳) <서유강마편(西遊降魔篇)>의 시장 내 성공은 중국형 블록버스터의 신호탄이 되었고 중국 영화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되며 중국 박스오피스 급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기술 스태프의 중국 영화 참여에 머물던 한국의 영화인들도 기술뿐 만이 아닌 기획과 극작, 연출 인력분야에서 중국 영화인들 과의 전방위적 협력을하기에이른다.마침인터넷을통해한국­의드라마와 영화가 중국에 다양하게 소개되며 한국 영상시장의 상업적 기획력에 대한중국 영화인의 기대가 점점 높아지는 계기도마련되었으며,단시간내에급속도로커­진 중국 영상시장은 다양한 콘텐츠와 이야깃거리가필요한상­황이되었다.양국영화 시장의 만남은 상호보완적 관계를 통해 지금도다양한협력과결­합을시도하고있다.다만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고 양국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춰 갈수 있는 합리적 협력방법의모색은좀더­지켜봐야할듯하다.

중한 수교 25년 동안 양국은 세계 그어떤 국가들도 해내지 못한 비약적 규모의 성장을 이뤄냈다. 문화의 기초는 언어이다. 희망적인 것은 중국과 한국의 청소년들 중 양국의 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는 인력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인력들이 중국과한국의 영화협력 현장에서 점점더많아지고 있다. 아시아에서만들어진영­화가전세계에서 세계인을 상대로 공감을 얻어내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 이것이 바로중한영화인들의꿈­일 것이다.

(필자 손장현은 20여 년동안양국영화산업을­모두경험했고중국메이­저영화사와 영화계의거장들과도 긴밀한 관계를맺고있는 인물이다. 현재베이징박중미래문­화미디어유한공사의 대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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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배우 장쯔이(章子怡) 와 위룽광(于榮光) 이참여한 중한합작영화 <무사 >(2001) 는 당시 한국에서투자액이가장­많았던합작영화인동시­에한국영화에서 처음으로 중국배우를 주연배우로 캐스팅한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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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마이웨이>촬영현장에서중국배우­판빙빙(范冰冰)에게영화내용을설명하­고있는손장현사진/손장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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