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Korean)

<22(二十二)>끝나지않은아픔,그러나‘담담함의힘’

- 글|양윈첸(楊雲倩)

이영화는 무거운 소재를 다뤘지만 시종일관 절제한다. 작위적인 유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역사를 서술한다. <22>는중국다큐멘터리사상­최초로박스오피스 1억 위안(약 172억원)을 돌파해 중국국산 다큐멘터리 중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가장많이주는 것은‘사색’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 밥 먹고 벽에 기대햇볕을쬐고가끔진­한사투리로이야기하지­만 더 많은 시간은‘침묵’이다. 해가 지면 그녀들은 의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밥 먹고 잠을 잔다……. 영화에서 고령의할머니 22명의 일상생활은 이처럼 비슷비슷하고우리주변­의평범한할머니들과다­를것이 없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22>의 주인공들은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상처가 너무 커서 평생직시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이렇게 평범한날들은그들이최­선을다해억누르고자제­하면서살아냈기때문에­얻어진 결과다.

카메라 앞에서 어떤 할머니는 아이처럼 웃었고, 어떤 할머니는 가족이 너그럽게 감싸주고 이해해준 것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으며, 또어떤 할머니는 카메라 앞에 나서길 거부해 방 한쪽 구석만 찍었다……. 궈커(郭柯) 감독은“할머니한분한 분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선을 지키며 촬영했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최소 20만명의 중국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인간성이말살당­하는학대를 경험했다. 90년대에 100여 명의 피해자가 나서서 일본정부에소송을제기­하고사과와배상을요구­했다. 그러나 30여 년이 흘렀지만 아 무결과가 없다.

궈커 감독의 이전 작품은 2012년 12월 촬영한 <32(三十二)>로 역시‘위안부’를 소재로 했다. 당시 중국 전체에서 신분을 공개한 위안부 가운데 건재한 분은 32명이었다. 2014년 <32>에 기록된 할머니32명 가운데 10명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궈커 감독은 <22> 촬영을서둘러시작했고­국내극장에서상영을추­진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은사람이할머니들의­현재생활을알고역사를­이해하며전쟁이여성에­게가져다준상처를생각­해보길바란다고 밝혔다.

<22>는 8월 14일‘세계 위안부 기림일’을 선택해 개봉했다. 22명의 이름중에14명의 이름에 검은 테두리가 둘러졌다. <22> 개봉 이틀 전 영화 속 주인공 중 한명인 황유량(黃有良)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일본 정부에 소송을 제기한위안부생존자중­한 명이었다.

<22>에는 직접 경험한 사람뿐아니라역사를 잊지 않고 동분서주하는 사람들도많이 등장한다.

농촌 교사인 장솽빙(張雙兵)의 또 다른 신분은 중국 최초의 위안부 민간조사원이다. 그는 1982년부터 생존자 127명을방문해 피해자의 구술을 정리하고 기록문학 작품을 출판했다. 일본인 유학생 요네다 마이(米田麻衣)는 중국 하이난(海南)에살고 있는 피해자를 5년 동안이나 방문했다. 쑤즈량(蘇智良) 상하이사범대학교 교수는 1993년부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기시작했고피해­자들의 소송, 위안부유적지찾기, 구술사정리등을 도왔다.

어떤 학자는 이 다큐멘터리가 문헌적의미는 부족하지만 존중할 만하다고 말했 다. 일본의 중국 침략 전쟁의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지막 나날을 영상으로기록하고 구술과 영상 기록을 통해 사라져가는역사를 남겼다는것이 <22>가 가진가치다.

촬영후원및크라우드펀­딩에의한상영에서부터 국산 다큐멘터리 박스오피스최고 기록에 이르기까지, 궈커 감독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 모든 스태프, 자발적으로 출자해준 연예인,많은도움을준학자와자­원봉사자는물론영화엔­딩크레디트에장장 3분 동안나오는 3만여 명의크라우드펀딩참여­자한분한분께감사를전­하고싶다고 말했다.

역사와 현재는 단절된 적이 없다. 과거를어떻게살펴볼것­인가는우리모두가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피해 할머니가 한 말이 자막으로 올라왔다.‘중일 양국이 영원히 우호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전쟁은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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