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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팔이’시리즈원조…주인공왕우,무협의전설로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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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의 딸 제패(齊佩)가 칼을 휘두르자 방강(方剛)의 오른팔이 수북이 쌓인 흰 눈 위로 나뒹군다.빠른 리듬의 음악이 스크린을 채우고, 피범벅이 된손으로어쩔줄모르고­돌아서는방강과, 멍하니그를바라보는제­패의얼굴이클로즈업된­다.

1960년대 후반,홍콩영화의한획을그었­다고평가받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獨臂刀, 1967)’의 명장면이다.

방강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제여풍(齊如風)을스승으로 모신다. 제여풍은 그의 아버지가 목숨을버리면서 구해낸 인물이다. 은인의 아들을 애제자 로삼아무술을연마케하­는제여풍과철없는그의­딸, 그리고 방강을 시기하는 사형들 사이에서 사건은 벌어진다.

사형들은 방강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다. 제패는 내심 방강을 좋아하면서도 사형들과 짝이 되어그를 못살게 구는 일에 앞장선다. 더 이상 함께 살수 없다고 생각한 방강은 길을 떠나려 하고, 그를막아선제패는순전­히실수로그의팔을 내리친다.

방강에게는 아버지가 남긴 부러진 칼한자루뿐이다. 부러진 칼과 잘린 팔은 힘을 잃은 남성의 상징이다. 무사에게없어서는안될­칼과팔의부재는핵심적­인 결핍을 상징한다. 이런 식의 결핍은 무협장르에서자주나타­난다.

이영화가김용의소설 ‘신조협려(神雕俠侶)’에서모티프를 따왔다고 생각하는 건 그런 유사성 때문이다. 칼로써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야 할 무사에게남겨진 부러진 칼, 그 칼을 휘둘러야 할 팔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할 무사에게서 잘려나간 오른팔. 다시 말하건대, 잘려나간 건 왼팔이 아니라오른팔이다.

직전에 선보인 호금전(胡錦銓)의 영화 ‘대취협(大醉俠: 한국 개봉 제목은 방랑의 결투)’은 남장여협금연자(金燕子)의이야기를다뤘다.

남성의세계안으로들어­오고자했던여성의서사­가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에 이르러서는 여성이남성을 거세해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절연할 수밖에없는상황을연출­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감독 장철(張徹)은 세계를 구성하는 관계들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했다. 물론 쓰러진 방강을 구출하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는 여인 소만(小蠻)의 등장은 그런 권력 관계의전복이 영구히 허락되지 않는 시대적 상황을 보여준다.

호금전의 느릿한 연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쇼브러더스는 대신 장철을 내세워 빠른 리듬의대중적 무협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는 제작사의 요청에 잘부응하는영화였다. 영화를 빨리 찍는 데 중점을 뒀던 장철은 평생 90편이 훨씬 넘는 필모그래피를 완성했다. 호금전의 연출 목록이 20편도 안 되는 걸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한 숫자다. 그런데도 장철은 평생이 영화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영화는그만큼거듭되는­절찬가운데놓여 있었다.

방강은 소만의 도움으로 새로운 무술을 익힌다.소만의 아버지가 남겨준 왼팔 신공을 완벽하게 연마해낸다. 결핍의 보완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재확 인하는 방강은 옛일을 생각지 않고 위험에 처한 사부와제패를 구해준다. 비록자신은제패때문에­팔을 잃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이들을 구하는 결정을선택하는 그의 태도 때문에 ‘의리의 사나이’라는우리말제목이붙었­을 것이다.

‘의리’란 무릇법치와인치를모두­넘어서서개인적 은원 관계를 지켜가는 태도를 뜻하기 때문이다.그런면에서영화는결국­남성적관점으로귀결된­다.

남성의 신체를 훼손한 여성은 목숨을 내놓아야할지도모르는­위험에처하게 되지만, 자신이 ‘권력’을잘라버린그남성의도­움으로구출될수밖에없­다. 그러므로 영화는 도발적인 도입부, 그러나 역시상투적인결말부가­맞닿아 있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여성, 즉 제패에 대한원망의마음과또다­른한 여성, 즉소만에대한애틋한마­음을이입하게 된다. 그리고두여성사이에서­그야말로 ‘남자답게’ 위험에처한여성을구해­준다. 하지만결국자신을아껴­준여성과손을잡고길을 떠나는 모습에 동조함으로써 그 남성성을 정당화한다.

물론영화가남성대여성­의대립구도만보여주는 건 아니다. 무협 영화로서 남성 집단 간의 투쟁과 결투는 요즘 영화의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

부러진칼·잘린팔‘거세당한남성’상징홍콩첫박스오피스…후속작기대못미쳐

족이지만, 그래도 흥미롭다. 당시 홍콩영화가 보여주는 양식적 특성으로서중국 전통극의 무대와 복장, 분장 등이 스크린 위에서 재현하는 스타일 또한 흥미롭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는 홍콩에서역사상처음으­로 당시 100만 홍콩달러가 넘는 박스오피스를기록했다. 국내에도 1968년에 개봉돼큰반향을불러일­으켰다고한다.

방강 역을 맡은 주인공 왕우(王羽)는 대스타가됐고, 지금까지도 옛 무협을 그리는 팬덤은 열렬하다. 영화의 성공 이후 ‘외팔이’라는 제목을 단 영화가우후죽순처럼쏟­아져나왔다.

장철 자신도 돌아온 외팔이(獨臂刀王, 1967), 신외팔이(新獨臂刀, 1971) 등을 잇달아 만들었지만,평가는앞선영화에훨씬­못 미친다.

<한국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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