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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의‘보릿고개’에거는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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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량농가(絕糧農家)’.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가끔접할 수 있었던 표현이다. 생소할 수 있으나 말 그대로 양식이떨어진농가를 뜻한다. 아프리카빈곤국얘기를­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당시 우리 농촌에는 존재했다. ‘절량농가’의 현실이 반영된 표현이 ‘보릿고개’다. ‘보릿고개’는봄만 되면 찾아왔다. 양식은 동이 나고 보리 수확은멀어배고팠던시­기를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지금은 ‘절량농가’도, ‘보릿고개’도 없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로진입하면서기억에서­거의사라졌다. 한인기가수가부른유행­가에서명맥만유지하고 있다.

최근 ‘보릿고개’가 다시 미디어에 등장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주요계열사­들의3분기실적발표가­계기가 됐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달 말 3분기 경영실적을 발표했다. 현대차는 매출과 차량 판매 등에 큰 변동이 없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6%나 급감했다. 경상이익및 순이익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67.1%, 67.4%떨어졌다. ‘어닝쇼크’다.

기아차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차그룹의 위기 또는한국자동차 산업의 위기라는 다소 성급한 진단까지 등장한다. 미·중 간무역갈등고조, 글로벌교역 부진,선진국의긴축기조 영향에다최근 국내경제 상황도 빨간불이켜지면서경기­침체에대한우려감마저­높아진탓도작용한것으­로 여겨진다. 2010년 새로운 회계기준(IFRS)이 도입된이후 분기 실적으로는 가장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고, 주력판매시장인미국과­중국에서의판매부진과­내수판매저조마저겹쳐­위기라는진단이나올 만하다.

위기라기보다는 일시적 ‘보릿고개’인 것 같다. ‘보릿고개’는 식량 조달의 미스매치로 빚어진다. 6월 보리 수확철로접어들면 ‘절량농가’는 사라진다. 현대차그룹도그럴가능­성이 높다. 3분기 실적 발표 전부터 이를 감지하고 정의선총괄수석부회장­을중심으로대처에나선 상태다.

‘호모부가(毫毛斧柯)’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안 좋 은 수목은 어릴 때 베지 않으면 마침내는 도끼를 사용하는노력까지필요­하게된다는 뜻이다. 화근은기미가보일때예­방에 나서야 된다는 얘기다. 주(周)나라부터 통일 진(秦)나라에 이르기까지 전략가들의 변론과 책모를 엮은‘전국책(戰國策)’의 위책(魏策)편에서 유래한다. 합종연횡설로 유명한 소진(蘇秦)이 위(魏)나라 양왕(襄王)에게 위나라의국력이작지않­은데강국진나라와연합­하면속국 밖에 되지 않으니 주변 6국이 힘을 합치는 합종전략으로맞서자는­설득논리에서등장한다.

사마천 사기(史記)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편에서기록된 ‘견미지저(見微知著)’라는 고사도지금현대차그룹­은 새겨들을 만하다. ‘사소한 것을 보고 장차 드러날 것을알게된다’라는 의미다. 사전대비나예방의중요­성을일깨워준다.

현대차그룹도철저한대­비로일이그릇된뒤후회­한 ‘서제막급(噬臍莫及)’의 어리석음은범하지않겠­다는각오가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는 춘추전국시대 등(鄧)나라 왕 기후(祁侯)의 신하가 앞날을 예측하고 간언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엎질러진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후회전에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조카인 초나라 문왕의 손에 멸망한 등나라 왕 기후의 뒤늦은 후회 와어리석음을현대차그­룹이모를리 없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최근 그룹 2인자 자리에 올랐다.오히려 자신의 위기관리 리더십을 재계에 떨쳐보일 기회다. 예전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 회장이 됐을 때와 묘하게겹친다. 정몽구 회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어려운 시기에 취임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현대차그룹을 반석위에올려놓았다.

정 수석부회장은 불확실성이 높은 위기 국면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인 듯하다. 상품 경쟁력 및 판매역량 제고, 신기술개발등 ‘정공법’으로 활로를찾고있다. 현대차는 마진이 높은 SUV, 고급차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확장하고 상품 경쟁력을 끌어올리려 한다. 미국 시장에는신형싼타페와­투싼개조차를 투입하고, 중국에는성수기인 4분기 판매에 역량을 쏟을 계획이다. 가성비 높은 고급차종인 EQ900, G70 등 제네시스가 미국 등에 빠르게 투입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다르지 않다. 기아차는전략차종이달­라도대책은대동소이하­다.

현대차그룹 내에서는 3분기에 일시적 비용을 반영하면서 수익이 큰 폭으로 하락했으나 4분기부터는 수익이 반등할것으로기대하고 있다. 고부가가치차종판매확­대가제대로 이뤄지고 내년 스마트스트림, 3세대 플랫폼, 신규디자인 적용 신차 판매 등도 본격화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이익창출능력­이극대화될것이라는 판단이다. ‘위기가기회’라는말이새삼스럽다.

‘보릿고개’는 당시 ‘개떡’이라는 대표적인 구황식품을탄생시켰다. 유난히 맛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떡’자 앞에‘개’자를 붙였을까. ‘개’라는 접두사는 ‘제대로 안 된’, ‘사이비의’, ‘흉내 낸’, ‘문제있는’ 등부정적인의미가대부­분이었다. 그러나최근젊은층에서 ‘개’의 용례가확대돼 ‘지나치게’, ‘엄청나게’ 등 긍정적 의미를 강조하는 뜻으로도 많이쓰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겪는이른­바 ‘보릿고개’의 해피엔딩을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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