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죽으면속히썩어야하니간소하게하라”
세조는“내가죽으면속히썩어야하니석실과석곽을만들지말고, 무덤에병풍석을두르지말라”고 일렀다. 석관대신에목관을쓰고그사이를석회석으로 메웠다. 백성의수고를덜어주는배려였지만정치적보복이두려워유골이빨리썩는매장방식을택했을것이라는해석도 있다.병풍석을생략하면서십이지신상은난간석의기둥돌에옮겨새겼다.
조선을건국한태조와형문종의왕릉이동구릉에있지만세조는죽은뒤그곳에가고싶지않았다.문종이벌떡일어나호통을칠것만같았다. “수양 이노옴, 내아들의임금자리를빼앗은것도모자라영월로보내죽여놓고서여기가어디라고 오느냐?” 세조는동구릉을피해남양주광릉으로갔지만거기서도기구한약연이따라왔다.단종비정순왕후가세조보다 53년을 더 살다가 사후(死後)에 광릉 가까이로 온 것이다. 사릉(思陵)은세조의능에서15㎞떨어진남양주시진건읍에있다.
정자각에서 보아 세조의 오른쪽 언덕에 묻혀 있는 정희왕후는 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