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혁명가에‘혼족’은없다
그레이스 호퍼(1906~1992)는 미 해군 최초의 여성 제독으로도 유명한데, “학생들을가르칠때숙제를빽빽이첨삭해서돌려주면영어가아니라 수학을 배우러왔다며 항의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수학을알아봤자설명하는 법을모르면 소용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설명할수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며, 자신의 지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명료하게말하고쓸줄알아야한다고한 것이다.
아이작슨이 <이노베이터>에서 이런 천재와 반항적인 사람들의 재미나고독특한일화만알려주고말았다면이책의가치는그리높진않았을 것이다. 아이작슨은 이들의 교류와 협업, 열린 마음이 ‘디지털 혁명’을가능하게했다며그사례들을제시하고 있다.
“폰 노이만이 위대한 건 자신의 천재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사람들에게바로바로질문을던지고경청하고부드럽게대안을제시하고 의견을 수집하면서 창의적인 협업 과정의 감독 역할을 수행할줄아는재능이었다”는것같은 거다.
아이작슨은또 “새로운 아이디어는 갑자기, 어떻게 보면 직관적인 방식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직관은 이전의 지적 경험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전하면서 타인의 지식,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이노베이터>는 “여러 사람 여러 조직이 열린 마음으로 협력한곳에서개혁과발전이더 쉬웠고, 아무리좋은아이디어라도혼자움켜쥐고있던 사람, 그이득을혼자챙기려던사람은절대성공에이르지<홀로 활동하는 사람>
못했다”는널리알려진주장이틀리지않음을확인해주고 있다. 이와함께 “본인이 원했건원하지않았건외딴곳에서협조자도경쟁상대도없이홀로 연구하고 천착해야했던사람도 실패자의반열에 올랐다”는 사례도 제시된다.
협업이발전에더도움이된다는걸아는조직은조직원들이더쉽게협업할 수 있도록 궁리를 하기도 하는데, 아이작슨은 전자공학과 컴퓨터분야의세계적연구소인미국의 벨연구소(Bell laboratories)를 예로든다.
“1930년대에 접어들어 벨연구소는 공간이 부족해지자 신사옥을 짓기로 했다. 운영진은 신사옥을 연구분야에따른개별 건물로 구분하지않고대학캠퍼스분위기가나게지으려고 했다. 우연한만남을통해연구자들의창의성이배가된다고믿었기 때문이다.”
아이작슨에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70년 후애플의새본사를설계할때 벨연구소의 전략을 따랐다. 그 자신이 천재일 잡스도 개방적 분위기가만들어내는‘우연한 만남’의생산성에크게주목했다는것이다.
<이노베이터>를 읽으면서 ‘합스부르크 기형’이 떠올랐다. 1273년부터1918년 1차 대전의결과로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제국이해체될때까지 750년 가까이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 국가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정치 안정, 왕권 세습, 세력 증강, 혈통 유지를위해 근친결혼으로 얼기설기 얽혔다. 그 결과 후대로 내려오면서 기형으로태어난왕자와공주들이 많다. 턱이길고뾰족하며아래입술은비정상적으로 두껍다. 정신과 신체 발육도 늦어 스페인의 마지막 합스부르크왕인카를2세는네살에 말을, 여덟살에걸음을시작했다.
지금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진영논리는 정신적 근친결혼의 다른 말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논리에 빠지면 자기들끼리만 교류하고 생각한다. 합스부르크의 왕자나 공주들처럼 기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형을 지나 괴물이 튀어나올 단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로 옆에한국적진영논리가탄생시킨괴물이있을수도있겠다는생각도 든다.
아이작슨은 2014년 <이노베이터>를 쓰기 3년 전에는 스티브 잡스의전기를, 그 전에는 아인슈타인과 벤자민 프랭클린, 헨리 키신저 전기를썼으며 <이노베이터>를 낸 3년 뒤인 2017년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전기를 냈다.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좋아하는사람이 많다.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