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아야예쁜도심골목을거닐다
더위가한풀꺾이고아침저녁으로 제법선선한바람이불어온다. 여행을떠나기딱좋은 날이다. 하지만올해는지속하는감염병공포로여행계획을 세우기조차 힘들어졌다. 작년이맘때훌쩍떠났던여행지의사진을들여다보며울적한마음을달래려다오히려여행에대한 ‘간절함’을 느낀후사진첩을 접는다. 멀리는못가도동네한바퀴라도천천히돌아보리라 마음먹는다. 선택지는 마포구 골목길. 소박한 것같지만 자세히들여다보면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무궁무진한 이곳이야말로주택가골목이품은매력이리라.
기생충촬영지로화제…‘아현동 고갯길’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하자, 영화 촬영지까지덩달아화제가 됐다. 기우(최우식분)가 동네슈퍼에서친구 민혁(박서준분)을 만나는 장면, 기정(박소담 분)이복숭아를사들고박 사장(이선균 분)네로 가던장면이바로이곳 아현동이다. 영화 속에서는 ‘우리슈퍼’로 나오지만, 실제상호는 ‘돼지쌀슈퍼’다. 박소담이걸어오르던계단은바로슈퍼바로옆골목에있다. 지금은 코로나19 확산세에발길이뜸해졌지만,이사실이알려졌을당시만해도국내외관광객은성지순례하듯이곳을 찾았다.서울관광재단이‘기생충 투어’라는이름으로촬영지곳곳을소개한덕도있다.
아현동골목은비단 기생충에만 등장한 곳이아니다. 조선시대대표 서민 거주지로, 문헌에도 등장했다. 현재는아현역일대뉴타운 개발을통해신축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는 등옛모습을 벗기시작했지만, 여전히아현역과애오개역사이의골목길은 재개발 전후의동네변천사를고스란히품고있다.
아현역근처손기정로와 환일길일대골목에서재개발 전의과도기적인풍경을 만날 수 있다. 고층 빌딩에둘러싸인 근대한옥, 마을버스가 다니는비좁은고갯길너머에자리한 대로(大路) 등 생경한 풍경이시선을 사로잡는다.아현동에는뉴트로콘셉트로공간재생을선택한곳도 있다. 1958년 지어진목욕탕행화탕이대표적이다.이곳은재개발로 철거가 확정된이후 몇년동안 방치됐다가 2016년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문화예술콘텐츠기획사 축제행성이‘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슬로건을내세우고전시프로젝트를진행중이다.행화탕안에목욕탕 콘셉트 카페인 행화커피도 문을 열었다. 목욕탕 관련음료와굿즈가인기다.
마포하면먹거리지! ‘마포나룻길’
조선시대한강을주름잡던마포나루와이일대에살았던당시인물들의자취를 더듬으며길을 걷는다? 마포나루길에선 가능하다. 옛마포나루터를 찾아보고, 흥선대원군과 토정이지함의이야기를 들으며시장통노포에서식도락을즐기는등다양한경험을할수있는길이다. 고고학자가 유적지를발굴하듯표지석만 남은옛터에서이야기를엮어가는재미가퍽쏠쏠하다.
첫목적지는 아소당터(아소정터)다. 흥선대원군의별장터인데, 흥선대원군은말년을보낼별장과자신의묘소를길지에조성했다고 한다.지금은 작은 공터로남아아소당터표지석이없다면잘눈에띄지않는다.
용강동고갯길에는 1920년대 지어진개량한옥이눈길을 끈다. 바로정구중 가옥이다. 용강동부농이었던이모씨가 자신의외동딸을위해장안 4대목수로소문난안영달에게부탁해지었다고 전해진다. 압록강 유역의홍송과 백송을뗏목으로 옮겨와 한강에2년 동안 넣어두었다가1년동안건조한뒤집을짓기시작했다고. 못을전혀사용하지않았다는얘기를듣고집을다시보니, 100년 된가옥이제모습그대로자리를지키고있다는사실에놀라울따름이다.
고갯길을 넘어마포 사거리에닿으니, 토정 이지함(1517~1578) 동상이보인다.조선중기학자토정은‘토정비결’의저자이자조선3대기인으로 알려졌다. 토정은 조선최초의양반 상인으로서상공업을 권장하는실학의선구자로살았다.
마포와 소금은 깊은연관이있다. 옛날 삼개포구로 불렸던마포나루는조선후기에들어해상무역의중심지가 됐다. 서해안에서생산된소금과 젓갈이주로마포 주변에서거래됐다. 마포나루터의번성했던상권은마포갈비골목을비롯한음식문화거리로이어졌다.옛날뱃사람과 상인들이고기를 숯불에구워먹던 것이마포갈비의유래가 됐다는 것이다. 족발 골목, 전골목으로유명한 공덕시장은 전성기시절점포수만 600여개에달했다고한다.
‘고기 천국’이라 불리는 마포 먹자골목에서연탄불에구워먹는양념돼지갈비를 서울에서처음 선보인최대포집을 비롯해국물에밥을토렴해주는사골곰탕집마포옥,바싹불고기의원조역전회관은먹자골목의필수방문코스다.
오롯이돌자동네한바퀴…‘성미산 동네길’
사람들의통행이잦은 서교동·연남동·상암동·망원동과 인접했지만,거리는 비교적한산한 성산동에는 숨은 명소가 꽤 있다. 골목 여행의묘미를알고싶은이들이라면성산동을걸어야하는이유다.
성산동에는산이성처럼둘렀다는뜻을지닌성미산이있는데, 성산동의지명이이곳 성미산에서유래했다. 성미산은 해발 66m에 불과해산이라고부르기도 민망하지만,주민들이즐겨찾는힐링명소다. 성미산 바로 아래에는 마포중앙도서관을 비롯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서울의3대빵집으로불리는리치몬드제과점이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위안부역사와현재에도발생하고있는세계분쟁과여성폭력에관한정보를전시하는곳이다.리치몬드제과점은 성북동나폴레옹과자점에서일하던명장이1979년 독립해차렸으며, 서울 빵지순례필수코스로 소문났다. 성산동에서서교동으로넘어가면최규하전대통령이2006년 서거할때까지30여년동안거주했던단독주택이있다.최규하전대통령의유품을보존하고거주당시의모습을재현해두어생활사박물관의역할을톡톡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