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맞추며총을겨누는,중국과동남아친구들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는 2020년 1월 동남아 각국 전문가들의인식조사결과를 펴냈다. 여기에서동남아에가장 큰 경제적영향을주는 국가가 중국이라고 답한 비율은79.2%였다. 2019년 73.3%에서 증가한 것이다. 정치및 전략상으로 동남아에가장 큰 영향을 주는 국가가 중국이라는 응답은 2019년 45.2%에서 2020년 52.2%로 증가했다.베트남인들은어떻게생각할까? 동남아에경제적으로 가장 큰영향을주는국가가 중국이라고 한 베트남인비율은 2019년 68%에서 2020년 76.3%로 급증했다. 정치및전략상동남아에가장큰영향을주는국가가중국이라고답한비율은 2019년 52.1%에서 2020년 56.6%로 증가했다. 중국의경제적영향력증대가 자국에끼치는영향에대해우려한다는 답은 동남아 전체로 72%였는데, 베트남인들은 80%가그렇다고 했다. 중국의안보 및전략상 영향력 증대에 대해 우려하는 응답자는 동남아 전체85.4%보다 베트남인이95.3%로훨씬 많았다. 동남아에서중국의영향력증대에가장 높은우려를 나타내고있는이들은 바로 베트남인이다. 베트남의중국에대한 경계의근원을 어디에서찾을수있을까?
아주경제는베트남개혁·개방을연구하는최고전문가인서강대이한우교수의칼럼을연재한다. ‘이한우의베트남포커스’는베트남의개혁과정을톺아보고분석하며날로확대되고있는한·베트남관계에대한현황을살피고전망을내놓을 것이다. 이한우교수는서강대에서베트남개혁정책을주제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서강대 동아연구소및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로 있다. 베트남 국민경제대학 객원연구원으로도 있었다. 그는베트남 정치경제 개혁과정을 주로연구하고있으며개혁으로인한 사회문화 변화에도 관심을갖고연구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개혁의 정치경제>, <한국베트남관계 20년> 등의책과베트남개혁에관한연구논문을여러편 냈다.
있던‘어우락’을 복속시킨이후기원전111년 한나라에복속됐다.이로써베트남은 938년까지천년간이나중국의직접지배를받게된다. 중국은 939년 베트남이독립국가가 된이후에도일곱 번이나 베트남을 침공했고, 15세기 초에는 20년간이나 지배하기도 했다. 베트남의중국에대한경계의근원을중국의침략과 지배의역사에서찾는 것도 무리한일은아니다.베트남이역사적으로 중국의지배하에있었던것이경계의근원이긴 하나, 현대에는 더현실적이해가 있다. 현대에와서양국관계는 협력과 갈등의이중주였다.
1945년 8월일본이패하고강대국들은16도선을경계로 베트남을 두 지역으로 나눠일본의항복을접수하게 했다. 북부에는 국민당 중국군이들어오년 10월 10일 건국후 1950년 1월 18일 베트남민주공화국을가장먼저합법적정부로 승인했다. 베트남은 프랑스에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1954년 제네바협정으로 분단됐다. 1964년부터 열전으로 확대된베트남전쟁에서중국은소련과함께북베트남에대한 최대 지원국이었다. 중국은 1950년 베트남민주공화국과 수교후약 30년간 200억 달러상당액이상의원조와 연인원 2만 명의고문단 및 30만명의군인을파견하여북베트남을지원했다.
그러나 베트남이 1978년 12월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1979년 2월중국이침공해와 전쟁을 치른후베트남-중국관계는단절됐다.권위있는동남아연구자베네딕트앤더슨이<상상된공동체>를내며민족주의를 새로 정의하게된계기도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세사회주의국가간에전쟁이왜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으로부터출발한다. 이시기베트남은<중국 백서>를 발간해중국이1954년 제네바회
부터소원해졌을까? 갈등의소지는 베트남전쟁중에이미배태돼있었다. 북베트남은 급속한 통일을추구했지만, 중국은 점진적통일을 선호했기에, 양국간 전략상이견이있었다. 또한코살 패스(Kosal Path)에 따르면, 중국은 1970년대 전반북베트남에대규모 지원을 약속했지만 실제지원을 줄였다. 이는중국이국내경제회복에더중요성을두었기때문만이아니라 1972년 2월 미-중 데탕트이후중국의안보전략상북베트남의중요성이적어졌기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은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의크메르루즈에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었다. 이에베트남은 중국에대한 의혹을 키우게 됐다. 이후 두 나라는 남중국해에서 1974년과 1988년에 크게격돌했고, 중국이파라셀군도의서남부를 점령하고스프래틀리군도의섬을여러개점령했다.
베트남과 중국 관계는 1979년 단절된후 1991년11월에 가서야 다시 정상화됐다. 양국의관계정상화 협상과정에서베트남은 세계적인사회주의쇠퇴시기에중국이사회주의권의종주국역할을해주기를원했다고한다.하지만중국은이에응하지않았다.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뜻이었을것이다. 어려운 시기에이념보다는국가이익이우선되기마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