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지원인가,또다른‘2차가해’인가
“그 기사를 쓰신다면 내용과 관련없는 엉뚱한 논란에휩싸이지않을까요?”
얼마 전, 미디어전문지의고참기자 J씨로부터들은 충고다. 그 무렵필자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안타까운 사망사건과 관련된‘어떤 사실’을 취재했다. 박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바로 그 비서에대한이야기였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취재를 했고, 여러차례확인까지마쳤기때문에 사실관계는 명확했지만 그내용이상당히민감한것이어서고민스러웠다.사실이라면보도해야 하는 것이당연하지만 사회적동물인인간인만큼후폭풍이라는 것을 우려하지않을수없었다.
이런 경우의고민이라면 통상적으로 ‘이성을 따를 것이냐, 감성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있는 그대로드러낼 것이냐, 잠시숨을죽이며사태추이를관망할것이냐’인경우다.
당시필자의고민도 그랬다. 기사는다 써뒀는데이걸보도해도될지말지판단이서지않았다. 무엇보다 기사로 인해박 시장을 고소한 그 ‘피해자’가이른바 ‘2차 피해’를 입게되지않겠느냐는 우려를할수밖에없었다.
아무리사실이지만 고소사실과 직접관련이있는지모호할수도있는‘민감한 사안’이거론된다는것은최소한유쾌한일이아님은분명했다.
그리고 고민끝에전화를건것이앞서말한 J씨였다. 기사의내용과 취재경위를 조용히듣고 있던그는다른말은하지않았다. 오직“지금 그기사를쓴다면진위여부와상관없이2차가해라는비난을들을것”이라는한마디를예언처럼툭던졌다.
겨우한마디였지만필자는그말에수긍할수밖에없었다.이기적으로들릴지는모르겠지만‘피해자에게또다른2차피해를줄수있다’는말보다‘네가2차가해자가될수있다’는말이더가슴에와닿았다. 사실전화를걸기전어느 정도예상은 하고있었다. 다만, 예상을 빗나가 그가 내등을 토닥이듯‘걱정되기는 하지만사실이라면써야죠’라고 말해주지않겠느냐는약간의기대를했을뿐이었다.
하지만이런유의예상은빗나가는법이없다. 그리고나는정해져있는결말처럼다써둔기사를하드디스크폴더속깊은곳에다시조용히밀어넣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이기사를 만천하가 볼수있도록 꺼내놓으리라 마음 먹었지만 기약은 없었다.기약은고사하고어쩜영영다시빛을보지못할수도있다는생각마저들었다.
내가그기사를쓴다면영락없이‘2차 가해’라는비난을받게될것이라는데,누가봐도결과가뻔하다는데,섶을지고불속에뛰어들순없었다.
요즘 세상에‘2차 가해’라는 말보다 무서운말이또어디있겠는가?제아무리명성이자자하고존경받던대기자라도 ‘이 문제’를 잘못거론했다가는순식간에‘2차 가해자’로낙인찍혀새까만후배들에게조리돌림을 당하는 상황이다. 노조위원장을 몇년씩지내며언론자유를 위해맨앞에서투쟁했던백전노장의선임기자도 가차없이징계에넘겨버릴수있는것이바로‘2차 가해’라는 낙인이다.
심지어 사실관계를 확인해보자는 지극히 평범한주장도 ‘피해자 중심주의’에어긋난다고 지적받는상황인데,더말해무엇하겠는가?
그렇게취재를 접은지며칠이나 지났을까? 내가쓰고자 했으며, 고민과 두려움끝에쓰기를포기했던그 이야기는 ‘피해자’의 대리인이라는 김재련 변호사의입을통해세상에공개됐다.
‘피해자’인 박시장의전비서가지난 4월다른서울시공무원으로부터성폭행 피해를 당했으며그사건을김변호사와 상담하는과정에서박 시장에대한 이야기를 하게됐다는 것과 4월 사건의가해
자에대한구속영장이기각된것을전후해박시장관련건을본격적으로다루게됐다는내용이다.
보기에 따라, ‘4월 사건’을 유리하게이끌기위해박시장건을이른바‘별건’으로이용하려하지않았느냐는의심을할수밖에없는 대목이다. 더구나피해자가 “박 시장으로부터입은 피해를 피해라고인식하는 데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 바 있다는점을 감안하면, 의심은 더욱여러가지로 가지를치게된다.
하지만 이를 기사화해거론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는상당한부담이될수밖에없다. 말그대로 ‘2차 피해’가 우려되기도 한다. 모종의인과관계가 의심이되기는 하지만 전혀관련이없는 별개의사건으로볼수있는부분도있다.
결론부터말하자면, 필자는 ‘4월 사건’을 기사화하지않기로한것을옳은판단이라고생각한다.그런면에서김변호사가 ‘4월 사건’을 먼저공개한것은 잘못된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 측의대리인이라면더더욱해서는안되는행동이라고본다.
피해 당사자가 원했던 것이라고 하더라도 변호사라면말렸어야하지않을까싶기도하다.
나의언행이누군가에게‘2차 가해’가 될수있는사안이라면 다른 사람의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피해자 대리인이라도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면로맨스,남이하면불륜’이라는식이돼서는곤란하다.
김변호사가 피해자 지원활동을 하는 것이아니라 ‘자기 정치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이는것도그런이유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