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0년간수상자6명나온‘고에너지물리학’…한국은국립연구소조차없어
2020년 노벨상 시즌이 끝났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분야에서올해도한국은 패싱~.일본이올해는수상자를배출하지않아한국인의배가좀덜아팠을까?중국에서도나오지않았고. 하지만노벨상패싱의허전함은깊다.언제한국은수상자를배출하나?
알고보면이상한 게 있다. 한국은두레박도없이우물물을길으려는 측면이있다. 노벨과학상 3개분야 중 화학과 생리의학 분야에는후보로 거론되는 한국인이있다. 그런데노벨물리학상에서는 그런인물이없다는 점이다.물리학은기초학문중에서도 기초다. 그런물리학분야에서는 왜노벨상 후보자로 거론되는 사람이한국에없을까? 한국물리학에서는무슨일이일어나고있는것일까?
역대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고에너지물리학 분야에서절반이상이나왔다. 고에너지물리학은 핵, 입자, 천체물리에걸쳐있다. 입자가속기로 만든 입자를 갖고 하는 연구다. 노벨물리학상 후보에이름을올리는 한국인이없다는건고에너지물리학에서세계적인명성을 가진사람이없다는얘기다.
입자물리연구중심유럽…中,양대축도약야심
고에너지분야에서는 왜명성을 쌓은 한국인연구자가 없을까? 그이유는고에너지물리학분야에정부가 투자하지않고있기때문이다.고에너지물리학, 특히실험은개인차원에서할수있는게아니다. 정부가나서야 한다. 그런데한국에는고에너지물리분야의국립연구소가 없다.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중유일하게국립고에너지물리연구소가 없다. 고에너지물리실험에투자않는다는 건,노벨물리학상을받지않겠다는것이나다름없다.앞에서말한대로고에너지물리분야에서절반 넘게노벨물리학상을 가져가기 때문이다.노벨물리학상을 받는한국인학자가 나오길기다리는 국민의열망을생각하면,이런한국의현실은역설이아닐수없다.
노벨물리학상을받은고에너지분야의학자들을 보자. 최초의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X선을 발견한 뢴트겐이다. 그이후 120년간의 수상자를모두확인하기힘들었다.해서지난10년의자료만을찾아보았다. 2011년 이후 올해까지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중 고에너지물리분야는여섯번을 차지했다. 2011년(우주의 가속팽창 발견), 2013년(힉스입자 발견), 2015년(중성미자 진동 발견), 2017년(중력파 발견), 2019년(물리적우주론구축과외계행성발견), 그리고 2020년(블랙홀 이론연구와 발견)에 상을 받았다. 한국연구재단의보고서도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10월 작성된‘노벨과학상 종합분석보고서’는 “1980년 이후로 최근 40여년간 물리학은입자물리분야에서가장 많은 수상자가배출되었다”고적고있다.
선진국은 어떤 고에너지 물리연구소를 갖고 있는가? 미국은, 가속기를 갖고 있고 고에너지물리연구를 하는 국립 연구소(National Lab)를 지역마다 두고 있다. 동부의브룩헤이븐 국립가속기연구소(뉴욕주 롱아일랜드 소재), 중서부의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시카고 외곽), 서부의 SLAC 국립가속기연구소(실리콘밸리의스탠퍼드대학교)와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 샌프란시스코 오른쪽 버클리소재)가그일부다.
유럽국가들은공동으로거대한 고에너지물리연구소(CERN)를 운영하고 있다. CERN은 당대최고의입자가속기인 LHC(대형강입자충돌기)를갖고있으며, LHC에투자함으로써고에너지물리의세계중심으로우뚝 선바 있다. 독일은 CERN에 매년납부금으로 3000억원을내는 한편, 자국에고에너지물리연구소를두개나 별도로갖고 있다. DESY(함부르크 소재)와 GSI헬름홀츠 중이온연구소(다름슈타트 소재)가기초과학연구를하고있다.
시선을돌려한국주변을보자.일본은 KEK(일본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 쓰쿠바 소재), j-PARC(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 도카이소재)와같은고에너지물리연구소가 유명하다. KEK는 1971년에 설립됐다.그리고 그로부터30년이 지난 2008년 KEK의고바야시마코토 교수가노벨물리학상을받았다.
중국 베이징의한복판에는 중국과학원고등물리연구소(IHEP)가 있다.천안문앞큰길인장안대로를따라서쪽으로조금가면IHEP 건물이있다. IHEP는 거대한 지하 고에너지물리실험시설을추진하고있다. IHEP는 허베이성친황다오(秦皇島)시에세계최고의입자가속기를건설한다는야망을갖고 있다.입자가속기가들어갈공간은지하터널100㎞ 길이. 이입자가속기가 들어선다면,중국은유럽과함께세계고에너지물리의양대축으로순식간에도약할전망이다.
한국은고에너지물리연구소설립계획이없을까? 없다. 그러다 보니, 벌어지는 난감한 일로는 이런 게 있다. 유럽을 대표하는 고에너지물리연구소 CERN이나 미국 페르미연구소가 국제협력을 위해자신들의파트너에해당하는 한국의고에너지물리연구소를 찾을 때가 있다. 그런데한국에는 그런곳이없는 것이다. 국제적인민망함을 느끼는순간이다.
가속기? 한국에도 몇개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생각한다면가속기가있는지역에살고있거나,물리학에약간이나마관심을갖고있는사람이다. 한국에도 포항공대안에두 개의가속기(전자가속기)가 있고, 울산(양성자가속기)에도 있다. 얼마전충북오송에도새로운가속기를짓기로 했다. 유감스럽게도이들가속기는고에너지물리연구를위한 시설이아니다. 물질물성을연구하는 물리학자나, 제약 등응용분야연구자가쓰는시설이다.오송에만들가속기에붙어있는이름이그걸 말한다. ‘다목적차세대방사광 가속기’. ‘다목적’은 유용한 말로들리나,노벨상은‘다목적’시설을갖고얻을수있는금메달이아니다.
불필요한정부출연연구소정리해야
내년말을 목표로 대전에짓고있는 중이온가속기(RAON)가 있다.중이온가속기는 한국정부가 순수과학을위해수천억원을 투자한최초의시설이라고얘기된다. 하지만,이역시‘고에너지물리학’시설로가고있지않다. 핵물리학과 ‘응용과학’을 위한 가속기다. 그러다보니고에너지물리학분야의큰축인입자물리학자들은RAON에아무런관심이없다.
한국은 고에너지물리연구소를 왜세우려고 하지않을까? 몇가지이유가 있다. 우선은, 한국은 ‘기초과학’에대한 생각이아직도없기때문이다. 한국에서기초과학은 기초과학(Basic Science)이 아니다. 사실상 응용과학이다.기초과학에가까운,응용과학을‘기초과학’이라고포장하고 있다. 기초과학은 그런게 아니다. 한국의경제발전과 상관없다. 인류의지식확대가 목적이다. 그런데한국의정책당국자는 경제발전과관련이약한기초과학에는투자할생각이없다.국민적공감대가 없어서그런가? 그럴수 있다. 그렇다면한국인은 노벨물리학상에대한기대는접어야 한다.노벨물리학상수상자의절반을차지하는고에너지물리학 분야에투자하지않으면서어떻게노벨물리학상을받길바랄 수 있을까? 하늘에서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할수있다.
정부가 고에너지물리연구소를 만들려하지않는 또 다른이유가있다. 기존의정부 출연연구소도 많다는 것이다. 국립연구소를 한번만들면없애기힘든 만큼, 새국립연구소는 만들지않겠다는 게과학기술부의생각이다.그럴듯하게들린다.하지만그렇지않다.
정부 출연연구소들은 수십개에 이르며, 이중에는 시대적사명을다한곳도적지않다. 그런곳은문을 닫거나, 새로운임무를부여하는쪽으로수술을해야 한다. 한데, 구성원의반발이예상되니, 그냥방치하고있는 게 현실이다. 정책당국자가 할일은 그런불필요한 조직을잘라내는것이다.그런일을하지않으면서시대가필요로하는새로운국립연구소를만들지못하겠다는건딱한일이다.
내년완공‘대전RAON’…연구소로활용모색
국립고에너지물리연구소를 만드는 방법이없는 것도 아니다. 중이온가속기를 운영할 가속기연구소를고에너지물리연구소로만드는방안이있다. 현재중이온가속기연구단은시설이완공되면조직을‘가속기연구소’로 바꾸고, 그곳에는가속기를돌리는인력만을둔다는구상을갖고 있다. 그러지않고, CERN이나 페르미연구소처럼, 사이언스가연구소의중심에서게하는방안이있다. 과학을하는인력이중심이되어중이온가속기를 갖고연구 하도록 하고, 가속기과학자와 공학도는이를뒷받침하는것이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중이온가속기연구소의넓은 땅에일단 건물한 동을 짓는 방안이있다. 그 건물에는 고에너지물리연구소 간판을다는 것이다. 중이온가속기라는 시설에 과학자(실험, 이론 모두)들은가깝게있어야하기때문이다.현재고에너지물리연구자들은각대학에흩어져있다. 이들을 네트워크로연결하는연구소를 설립할 수있다.프랑스의IN2P3(국립핵입자물리연구소),이탈리아의INFN(국립핵물리연구소)가 그런 느슨한 방식의고에너지물리연구소를 갖고 있다. 한 지역에사무국을 두고, 각대학의연구자들이그곳을 사무실이나회의공간으로쓰고있다.
한국이 OECD국가 중 고에너지물리학연구소가 없는 유일한 나라라는 건 불명예다. 하늘에서감 떨어지기를 마냥 기다릴일이아니다.멋진고에너지물리연구소가이땅에들어서는걸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