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불러보라
죽음을앞둔예수의기도엔뭔가있다
류영모는 1943년 성서조선 폐간호에‘예수의 기도’를새로풀어서실었다.그는‘결별의기도’를 늘새기는 사람이었다. 헬라어로된기도문을스스로번역해자주암송하였는데,그제목을‘옛다시가온보입’이라 했다.있다시온(하늘에서본디의‘나’가 그대로온) 이후에, 옛다시가온(여기있던 ‘나’가 그대로돌아간)예수가하느님께보이는글이란의미다.
조선인의 민족얼과 신앙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기어이성서조선의말문까지막아버린 무렵에, 류영모는 왜저결연한 ‘죽음 앞의 기도문’을 실었을까.이세상의폭력과 모순과 부조리가 아무리기승을부려도, 그의신앙적입장은 단호함을 넘어오히려고요했다. 삶의목적을 신에게로 돌아가는데두었기에예수가 담담히그의임종을 대하듯 류영모는‘임박한 절필’ 앞에서 ‘천고(天告, 하느님께 드리는말)’를 올린것이다.
류영모가‘결별의기도’를 늘스스로의말처럼품었던것에대해이렇게말을한 적이있다. “원래기도는이러해야 합니다. 무슨감동을주기위해, 고개를 숙이게하고 강연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아닙니다. 판에박은 듯한 기도와, 예수가 한이기도를 자세히비교해보십시오. 요한복음 17장을 수없이읽어야 합니다. 거짓된 기도, 허식된기도를 하지말아야합니다.이세상이너무괴로우니빨리데려가달라는기도는하면안됩니다. 오직악에빠지지않게보전해달라고해야 합니다.”
1930년대 김교신은 서울 종로YMCA에서열리는류영모의요한복음 강좌에대한 광고를 신문에내기도 했다. 류영모는이렇게말했다. “요한복음 17장3절은예수가영생에대해정의를내리고있는구절입니다.기도할때이말을언제나외워야 합니다. 절대유일을알고거기에붙잡히는것이영생입니다.이에삶의참맛이있습니다. 예수믿는다는것은십자가를믿는다는말이아닙니다.영생한다고하는것은 피와 살과 뼈가 사는 게아니고 성령인 말씀이사는 것입니다”(다석어록).
‘결별의 기도’는 예수가 십자가에매달려죽기 전,마지막으로 하느님께올리는 기도문이다. 류영모가이기도에각별한 의미를 느꼈던 까닭은, 육신으로살았던‘성령의 인간’이, 육신을마침내버리는 상황에서죽음을어떻게인식하며맞이하는가를보여주는, 위대한 스승의전범(典範)을 대하는 심경이었기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죽었으며, 어떻게깨달음을완성하여영생속으로 들어갔는가. 그 키워드(KEY WORDS)가 그안에숨쉬고있다.
그죽음의고통을이입해본적있는가
예수의죽음은, 낱낱이공개되고 전시된가장참혹한 육체적 종말 중의 하나였다. 의학박사 트루먼 데이비스(Truman Davis)와 알렉산더 메드럴(Alexander Metherell)은 사형집행과정에서예수의육신에일어났던 고통에대해 의학적인 소견을밝혀놓고있다.
십자가에매달리기전예수는 태형을 당했다. 가죽채찍끝은 39개의가닥으로되어있으며가닥마다 쇠구슬과 뼛조각이들어있었다. 뼛조각은 살을찢었고 쇠구슬은 찢어진 근육조직을 크게 벌렸다.어깨와 등, 엉덩이와 정강이에 채찍이가해졌고 골격근육이찢어져피범벅이되었고살점은리본처럼매달려있었다. 정맥이밖으로드러났고 근육, 근골,창자의일부가노출되었다.
십자가의수직기둥은 땅에 고정되어박혀있었고, 가로들보(패티블룸(patibulum))는 땅에놓인채예수를 못 박았다. 약 18㎝의 못을손목에박은 뒤수직기둥에올려 고정했다. 못 박히는 고통은, 팔굽의척골신경을 펜치로 비틀어으깨는 정도의통증이라고 한다. 십자가에매달린뒤팔이6인치 정도늘어났고어깨는탈골되었다.
예수는 짧은 숨을 한번이라도 쉬어보려고 몸을위로 밀어올리는 사투를 한다. 격한 경련으로몸을밀어올려숨을 내뿜으면서산소를 한 모금 마시지만뇌와가슴에피가공급되지않아고통이극한에이른다.본능적으로예수는발에힘을줘피를몸의윗부분으로돌게한다.이런고통속에서죽음을맞았다.
고통을 묵묵히견디던 예수는 마지막에절규를내뱉는다. “나의하느님나의하느님어찌하여나를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5:46).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 신에게기도를 하면서몹시괴로워하는 장면이성서에등장한다.이고통을면하게해달라고간구한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할 수있으시니내게서이잔을거두어주십시오”(마가복음14:33~36).
예수가 하느님의 성령을 받은 독생자로 극한의육체적고통 앞에서, 결코담담하거나초연할수없었다는 점은 많은 생각을 하
게 한다. 인자(人子)조차도 육
신을 끊고 하느님과 접속하는
일은이리도 어려웠다. 그가고
통을못느끼는존재가아니라,
모든 고통을 느끼면서 마지막
에는언어도없는 단말마(斷末
魔)의 비명만을 남긴 채 임종
했다는것은육체의검질긴저
항이 어떠한 것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일대전환’. 예
수의 기도는 그 피와 뼈와 살
을이겨내는기도였다.
#예수그자신을위한기도
#제자들을위한기도
#모두(우리)를위한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