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무섭나,쓰레기가무섭나
요즘코로나가다시기승을부리고 있다. 겨울이다가오면서공기는건조해지고사람들의밀집도는높아지고 있다. 추위때문에환기를 더욱 꺼리게되면코로나는 더욱 기세등등해질 것이다. 낮아진 체온으로면역력까지떨어지면코로나확산에는절호의환경이갖추어지는 셈이다. 코로나는 삶의고단함을가중시키고여기저기서절망의탄식을쏟아내게한다. 정말이고통이언제까지갈지앞길을 내다보기힘들다.
그런데코로나로인하여벌어지는 또다른 현상이 있다. 매주 주말 분리수거하는 날에는 어김없이플라스틱폐기물이산더미처럼쌓인다.대충눈대중으로보더라도코로나이전에비해2배이상은되는것 같다. 카페에가면코로나를핑계로일반컵보다는일회용플라스틱컵을 강권한다. 잠시동안의티타임을 위해또 하나의플라스틱쓰레기를 생산한다. 방역을 핑계로 식당에가기보다 도시락을주문한다.그리고그후음식물이뒤섞인또다른폐기물이산더미처럼복도에 나뒹군다. 그 결과로 우리는매주 주말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보게 된다. 마음한구석에불안감이몰려온다. “이렇게막버려도되나?”
전인류의생존을위협하는기후변화
코로나와 플라스틱쓰레기는 둘다 우리에게매우 힘든 적이다. 그런데생각해 보자. 어느 쪽이더센적일까? <총, 균, 쇠>의저자인재러드다이아몬드교수는 한 국제세미나 강연에서 말했다. 코로나는인류의일부를파괴하지만환경악화는인류전부를파괴할수있다고!이얼마나무서운말인가.눈앞의적을 상대하다가 더무서운 적이호시탐탐 노려보고있음을우리는잊고있었던것이아닌가. 플라스틱쓰레기는 그하나의예일 뿐이다. 우리의생존을위협할 수 있는 환경파괴는 오늘도 변함없이곳곳에서벌어지고있다.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궁극의환경파괴는 기후변화이다. 그런데우리는 여전히이문제에둔감하다. 마치 내가 버린 쓰레기를 누군가가 내 주변에서치워주기만 하면그 쓰레기가 없어진것으로 착각하듯, 시시각각 몰려오는 기온상승의물리적변화에애써눈을 감는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터질일이아니라면나와 상관없는일일 뿐이다. 경제학에서는이런현상을외부효과라고 말한다. 내행위가같은시대의다른공간에사는그누군가에게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그 행위를 저지하거나 장려할마땅한수단이없다. 현세대의행위가먼미래세대에게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그 행위를 저지혹은장려할수단이없는경우도 많다. 그리하여이세상은 뒤죽박죽이되어 돌아간다. 째깍째깍 시한폭탄의시곗바늘이돌아가는 줄도 모르면서!아니다. 알고 있으나 아직시간이많이남아 있다고 착각하면서!
우리나라국민성에그린뉴딜은호사
이런상황에서우리정부는그린뉴딜을들고나왔다.환영할만한일이다.그런데그린뉴딜을논하기 전에 우리의수준을 먼저돌아볼 필요가 있다.앞서언급한폐기물을한예로 들어보자.우리는자유롭게 버릴 권리에익숙해 있다. 나는 버릴수있고그것을치우는것은다른누군가의일이다. 누군가가 그 의무를 다하지않으면 그를 욕한다. 왜이더러운 쓰레기를 치우지않느냐고! 그 쓰레기가 어디로가서어떤영향을미치는지관심도 없다. 나는그저내가번돈으로소비하고버릴권리를가질뿐이다.
그 쓰레기의원천인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어떤가? 기업은 자기가 팔아치운 상품이소비되어쓰레기가되더라도그것을수거할의무가없다.기업은단지팔 수 있는 권리를 가질 뿐이다. 그 쓰레기를치우는데드는수고와비용을부담할의무가 없다.그러니쓰레기가 덜나오도록상품을만들필요도없다.그냥돈이되는상품을만들면그만이다.그러니우리국민의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15)은 연간133㎏이나 된다. 중국(58㎏)보다는 훨씬많고 심지어 유럽(67㎏)이나 미국(94㎏)보다도 더 많다. 이게우리의수준이다. 더정확히말하자. 후진국수준이다.그런나라에서그린뉴딜은호사일수있다.
환경파괴백신은쉽게얻어지지않아
얼마 전 우리나라 대통령께서도 국회연설을 통해탄소중립을 발표하였다. 탄소중립선언은요즘세계적으로 유행이되고 있다. 대체로 2050년까지탄소의순배출량을 제로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선언이다. 그렇게하지않으면 다가오는 기후 위기를막을 수없을 것이라는 조급함이여실히묻어나온다. 마치돈을갚으라는채권자의거친다그침에언제까지무슨수를 써서라도 갚겠다고 맹세하는 채무자와 같다. 그 채무자가 그때까지그 돈을 갚을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그곤란한상황을벗어나기위해거짓말을하고있는것일수도 있다. 하지만그채무자가어디에서어떤 방법으로 얼마를 조달할 것인지구체적인방책을 설명해보인다면얘기는 다르다. 그말에신뢰가묻어있기때문이다.
그런데우리는어떤가?아니우리나라말고도소위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조차도 2050년까지탄소 중립을 선언하면서도 그 구체적방책을 말하는 나라는 그리흔치 않다. 마치그때까지빚을 갚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채무자와 같은 모양새다. 우리는이제2050년까지빚을갚겠다는말을겨우입에서떼었을 뿐이다. 어떻게갚을지는여전히“생각중”인것같다.
코로나는백신의개발과 보급으로극복할수있다. 그때까지움츠리고인내하면 된다. 그러나 무자비한 환경파괴를 퇴치할 백신은 쉽게얻어지지않는다.그것은우리의삶의방식을바꿀것을요구한다. 기업의비즈니스방식을바꿀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정부의정책체계를 혁신할 것을 요구한다. 경제사회체제의근본적변화가 필요한 셈이다. 마치특효약이없어서운동과 체질개선으로 건강을 관리해나가야하는것처럼말이다. 이제개인은 버릴권리가아니라줄일의무를더우선하며, 기업은팔권리가 아니라 회수할 의무를 더우선하고, 정부는버려진것을 치울 의무가 아니라 규칙을 만들고이를 어긴 자를 단속할 권한과 의무를 더 우선해야한다.
그리고 승패는 코로나처럼 속전속결로 끝나지않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정부가 발표한 그린 뉴딜에는 이러한 것들이 체계적으로 구상되어있지않아 보인다. 그린이라는이름으로또다른돈벌이에급급한 것이아닌지우리들의민낯을잘 살펴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