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대국된이웃나라’중국사용설명서 빈곤10억명이던90년대떠올리면中발전은경탄할만…한국으로선,공존할전략수립하는것이시급한과제
한·중수교가 내년이면30주년을 맞이한다. 한·중양국의외교당국은이를경축하기위한 행사 준비를올해부터시작하는것으로 보인다. 지난 24일한·중수교29주년을맞은 날,양국의외교수장은준비조직으로한중미래발전위원회의출범을알렸다.민간영역도분주하긴마찬가지다.이와유사한수많은자칭‘위원회’가 작년말부터창설되었다.이들모두에게서공통된염원을엿볼수있었다.다들내년이맘때면코로나사태가진정되어두나라의수도에서경축행사를갖길 희망한다. 필자역시이런희망이이뤄지길바란다.
필자에게도중국은특별한 의미가있기때문이다. 한·중 양국의수교가29년 전의일이지만필자가중국땅을밟은지는어언 31년이 되었다. 1990년 8월말, 북경유학길에 올랐으니, 나에게는 작년이중국입성 30주년의해였다. 그래서매년이맘때면나의중국에대한 기억과 추억이주마등처럼스쳐지나간다. 30년 전중국의모습과 북경유학 생활, 학창시절동안만났던 중국친구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 등등. 또한 몇 군데못갔지만당시여행하면서방문했던수도베이징이외지역과도시들.
이런회상에젖을때면참으로격세지감을느끼게된다. 30년 전에중국이이렇게빨리변할것을아무도상상하지못했기때문이다. 1990년 내가갔던중국은 개혁개방을 한 지10여년 밖에안 됐다. 당시중국의발전수준을두고어르신들은우리나라의60년대 말, 70년대초와비슷하다고했다. 내가 60년대 중후반 생이라 이들의이야기를 이해하기어려울 뻔했다.그러나 70년대초미국에서한국에들어갔던내게한국은강한인상과기억을남겼다.
나는중국도미국에서건너갔다. 나의70년대초의한국에대한 기억이소환됐다. 포장도로도 적었을 뿐 아니라 자동차는 그야말로 희귀품이었다. 사람이많다보니버스는두대를이어붙여만든것이대다수였다. 북경시내에우마차가 다녔다면아무도 믿지않을 것이다. 개혁개방 덕분에그래도수입이생긴북경인들은 자전거를탈수 있었다. 지방에만가도자전거역시드물었다.지방에서북경으로유학온학생들은자전거타는법을배워야 했다.
1990년 11월 나는학과에서마련한지방견학에참여할기회가 있었다.여정은열흘 동안에중국 복건성의경제특구도시복건시, 하문시, 정주시,선주시등을방문하는 것이었다. 복건성은중국이개혁개방정책을 1978년에채택하면서1980년을 전후로 제일먼저경제특구로 지정한 지역중하나였다. 우리는기차를타고갔는데복건성까지편도로만 2박 3일이걸렸다. 72시간 동안기차안에서먹고자야만 했다. 열끼를기차안에서먹었던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침대칸을 타고 갔으니망정이지일반 객실같았으면상상하기힘든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중국인들중에는입석승객도적지않았다.밤에이들은작은공간만있어도그곳을비집고들어가서잠을청했다. 바닥도 마다하지않았다. 복건성은 아니었지만 상해에서북경까지16시간 동안타고오는기차안에서나의발밑을헤집고들어오는중국인여행객에처음에는소스라치게놀랐던기억이아직도생생하다.
72시간을 기차를타고가면서본기차밖의풍경은 인상적이었다. 당시만해도중국은이미인공위성을쏘아올린나라였다. 그러나들판에서중국인들이탈곡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내가 자라면서사회시간에나 들어봤던원시시대의탈곡도구를 총동원하면서탈곡을하고있었다.
요즘중국의젊은 세대에게중국이30년 전만해도 삼태기, 도리깨(곡식의이삭이나껍질을말린후두드려서알곡을떨어내는탈곡연장)와 나무갈퀴등으로탈곡했다면믿을이가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당시중국에서밥을먹다보면돌을자주씹을수 있었다. 치아는많은손상을입을수밖에없었다. 나 같은 유학생에게가장큰 방학숙제는 귀국 후 치과에우선적으로가는것이었다.
북경의대학 시설은말도못하게낙후했었다. 냉난방은꿈도꾸지못했다.책걸상은교회에서흔히볼수있는일자형긴책걸상들이었다.다른점은 의자의폭이10여㎝에불과했고 등받이도 없었다. 책상 역시일자형이며일반공책을놓고필기를할수없을정도로폭이좁았다.
학교건물의창문틀은알루미늄이아닌나무였다. 나무창틀에끼울수있는 유리는그야말로아주얇은 유리였다. 창틀이나무였기때문에이빨이맞을리가 없었다.나무는기후와계절에따라변형하기때문이다.이빨이안 맞는 창틀을 바람이세게치고 가면유리는 창틀 간의부딪침으로산산조각이날수밖에없다.그래서건물의외풍도심했다.
겨울아침수업은 곤혹스러웠다. 1교시수업은아침8시에 시작했다. 나는대학원에다녔기때문에수업은 3시간 연속강의또는 세미나였다. 3시간을난방이없고깨진창문사이로는매서운칼바람이들어오는것을수업내내느껴야만 했다. 손이시리다 못해어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수업시작한지한 30분이지나면곳곳에서학생들은손을후후불기시작했다.비록 선풍기조차도교실에없었지만 덥고습했던베이징의여름이수업하기에는오히려더적합한기후였다.
90년대초중국의경제사정은상당히어려웠다. 가장긴박한문제는 13억의중국인이먹고사는문제를해결하는 것이었다.이때중국이21세기를향해첫 번째세운 국정목표도 ‘온포사회(溫飽社會·등 따시고 배부른 사회)’를 이룩하는데초점이맞춰졌다.여기에서나는중국의먹고사는문제가얼마나 심각한지를 간접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그래서인지매년수확철만되면당시중국언론의가장큰헤드라인으로어느곡물이자급자족의수준에도달했는지를장식할정도였다.
이랬던중국이불가사의와 같은 기적적인경제성과를일궈내며오늘날세계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이것이가능했던것은 예상치못한 결정적인변수의출현 때문이었다. 그것은인터넷이었고 정보통신기술이다. 인터넷과정보통신기술이소개되면서중국은그야말로집약적이고초단계적인발전을 할수 있었다. 90년대에중국이비디오와 카세트 시대를 건너뛰고CD시대로바로뛰어넘어간것보다더큰경제적효과를제공한것이었다.
광활한 영토, 세계최대의인구를가진중국이제조업과 무역에만 의존하는 전형적인경제발전모델로 두 번째국정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하세월같아 보였다. 90년대 말중국이세운두번째목표는 ‘샤오캉사회(小康社會,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사회)’의 구현이었다. 당시중국공산당은 창당100주년에 즈음하는 2021년에 이를 달성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불가능해만 보였던이국정목표는그러나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의출현으로가능해졌다.
중국은우리와여느개발도상국이통관의례로거쳐야만했던발전단계몇개를한순간에뛰어 넘었다. 과거의이른바 ‘개도국’들에게 발전의정설은 1차 산업(농수산업, 경공업), 2차 산업(중공업)과 3차 산업(서비스업)을순차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탄탄한 경제기반을 이룰 수있어사상누각을피할수있다는논리가 강하게존재했기때문이다. 그런데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이중국에유입되면서세개의산업이동시에발전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개혁개방 30년 만인 2010년에 중국은일본을제치고세계2대경제로올라섰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올 2월에중국은 두 번째국정목표 달성을 선언했다. 지난 2월 25일 베이징인민대회당에서열린전국탈빈곤표창대회에서‘샤오캉사회’의기준이알려졌다.이는중국사회가빈곤에서벗어나는것에있었다.그리고이는다음과같은두가지맥락에서설명됐다. 1990년에 중국의빈곤층 수가 9억8700만명에 달했던것이 2015년 4700만명으로 감소했고, 중국의빈곤발생률은 2012년의 10.2%에서 2018년의1.7%로 감소했다. 즉, 최빈곤층의수가 5000만명이하수준에이르렀고빈곤 재발률이1%대에유지된다는 것이기준인 셈이다. 이런결과를 시진핑은 공산당의과업으로 칭송하면서“역사에 길이남을 완전한 승리”라고선전했다.
이제중국은세번째국정목표를향해열심히달리고있다.이는 2049년중화인민공화국건국 100주년을 맞이해설정된목표는 ‘대동(大同)’사회의구현이다. 2017년 19차 전국공산당대표대회에서중국공산당은이를 ‘부강하고민주주의적인문명과조화롭고수려한사회주의현대화 강국(富强民主文明和谐美丽的社会主义现代化强国)’의 구현으로 재포장했다. 그리고이를두단계로나눠달성할 결의를 밝혔다. 하나는 2035년까지‘사회주의의현대화’를 완성시키고, 하나는 2050년까지‘사회주의현대화 강국’을 이룬다는것이다.
중국공산당의치적은가히찬사를보낼만하다.가령상상을해보자. 14억의중국인이아직도빈곤에허덕이는우리의이웃으로살아가고있을세상을 말이다. 14억의 빈곤 규모는 오늘날의아프리카 이상이다. 이들이가난과굶주림을피하고자제일인접국이자더여유로운우리나라로탈출했으면우리의삶은 어떠했을까. 이것이상상에지나지않고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역사적으로도이미입증되었다. 1950년대 말 중국의‘대약진’시기, 1960-70년대의 문화대혁명시기극심한 기아 때문에수많은중국인들이북한을넘나들었기때문이다. 중국이북한주민의불법월경(越境)행위를대부분은눈감아주는이유가여기에있다.
오늘날중국의경제력을보면격세지감을느낄수밖에없다. 한·중 수교당시만 해도오늘날의중국발전상은 상상하기어려웠다. 이제중국은조만간미국을추월하는 세계최대의경제국으로오를것으로 전망된다. 이런경제대국을이웃국가로 둔 것이우리에게는어쩌면행운일수 있다. 이런행운을 우리는앞으로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복을 우리스스로가 차버리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과 공존할 수있는 책략을우리스스로가만들어야할 것이다.이것이한·중수교 30주년을앞둔우리가당면한가장시급하고운명적인과제라고할수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