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정부시대의‘무릎의전’
문재인 정부 출범직후인 2017년 6월, 경향신문은 ‘의전공화국’이란 특집기사를 실었다. 여기에 소개된 과잉의전사례는다양하고기발했다.가장흥미를끈건“호텔방에러닝머신을 설치해 봤나요”였다. 내용은이렇다.대기업부회장이2박3일일정으로프랑스파리에갔다. 본사 비서실에서는두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아침에눈을뜨면창밖으로에펠탑을가득채운호텔을예약할 것, 둘째, 호텔 방 안에 트레드밀(러닝머신)을설치해달라는것이었다.
현지 법인에는 비상이 걸렸다. 직원들은 며칠 동안찾아다닌 끝에힐튼호텔 스위트룸을 예약하는 데성공했다. 또파리북부에있는피트니스센터에서러닝머신을 분해해호텔로 가져와 조립했다. 호텔 직원들은한국인들에게“너희지금 뭐하냐”, “한국에서대통령이라도 오는 거냐”며어리둥절해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은 “이모든게아침에에펠탑을보면서1시간 동안러닝머신위를달려보고싶다는부회장개인의염원을위해한국 직원 10명이 달라붙어돈과 힘을 쏟은 결과”라면서새정부 출범과 함께의전문화를 돌아보자고제안했다.
그러면 과잉 의전 문화는 바뀌었을까. 공교롭게도문재인정부임기8개월을 남겨놓은시점에서터진법무부차관과잉의전논란은우리사회가아직도견고한 의전문화에갇혀있음을 상징한다. 지난 27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와 가족은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입소했다. 법무부 강성국차관은정문앞에서이들에대한지원방안을발표했다.브리핑은10여분 동안 진행됐고 현장에는 제법많은 비가 내렸다.문제가된건 한 직원이강 차관 뒤에서무릎을 꿇고우산을씌워주는모습이었다.
이장면을접한국민들은“지금이어느때냐”며격앙된반응을 보였다. 논란이확산되자강차관은세심하게챙기지못했다며 사과했다. 이날 브리핑은 애초 실내에서하기로돼있었는데취재진이몰리는바람에코로나19를 우려해실외로 바뀌었다. 강 차관은 우산을쓴채자료넘기는게어렵게됐고,직원이우산을씌워주다 사달이났다. 어쨌든이날 사진은당분간국민들머릿속에강하게남을수밖에없다. 한 가지덧붙이자면, 과잉의전이면에는 신문사와 방송사 카메라 취재관행도 한몫했다. 현장에가면 “다른 사람은 빠지라”고 윽박지르는 사진기자와 방송사 카메라 기자를 쉽게목격할수 있다. 이날과잉의전도이같은상황에서빚어진측면이없지않기에바뀌어야한다.
사실과잉의전은 당사자가 원해서라기보다 주변에서알아서하는경우가더많다. 계급과 권위주의문화에굴복한 잔재다.행정안전부에는국가의전서열편람이라는 게 있다. 1위 대통령, 2위 국회의장, 3위대법원장, 4위헌법재판소장, 5위국무총리, 6위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이다. 의전서열은실질적인권력크기와는관련없다.국무총리는권한과권력에서사실상국가2인자이지만의전서열은5위인점을봐도그렇다.
의전서열을정해놓은건괜한시비를막고자하는행정편의때문이다.실무자입장에서행사때마다누구를먼저예우해야하는지를따지는건 골칫거리다. 그런데의전서열대로했다고하면시비할일이없다. 국가의전서열2위인국회의장비서실에있을때과잉의전을숱하게목격했다.원하지않았고자제를당부했음에도우리사회에뿌리박힌과잉의전문화를확인하는건유쾌하지않은 경험이었다. 그런면에서과잉의전을멀리한정세균국회의장의현장행보는상당히인상적이었다.
위문품을 전달하고 전방부대를 시찰할 때였다. 별도식사장소를마련하겠다는제안을뒤로한채정의장은직접식판을들고 배식을받아 사병사이에서식사했다. 또 농촌진흥청과 광양제철방문 때도 직원들과함께줄을서서배식을 받았다.국무총리재임당시는이런일도있었다.회의자료와작은서류가방정도는 직접챙기는 게좋겠다고 건의했는데곧바로 다음날국무회의때부터실행에옮겼다.민주주의국가에서어쩌면이런모습은 당연하다. 그런데과잉의전이당연시되는우리사회에서이런행동은되레생경하게느껴지니아이러니다.
2017년 1월 반기문유엔사무총장은귀국과 함께국립현충원을방문했다.이날언론에는방명록사이에면장갑과 핫팩을
끼워놓은사진이화
제가 됐다. 현충원 관계
자는추운겨울임을감안한
조치였다고 했지만 과잉 의전
논란을 촉발했다. 또서울역에서열
린 반기문 총장 귀국환영행사를 앞두
고 대합실에있던노숙인들을 영하 날씨에밖으로쫓아냈다는보도도있었다.관료사회에만연한과잉의전은“너내가누군지알아?”라는 권위주의와맞닿아있다는점에서폐기되어야한다.
법무부차관과잉의전논란을우리사회가한단계성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상대를 공격하고, 흥밋거리로만소비해서는안된다.이번일을계기로우리사회전반에뿌리내린의전문화를돌아보는생산적논의로확장할필요가 있다. 앞서언급했듯과잉의전문화는 “너내가 누군지알아?”라는 ‘갑질문화’와 긴밀하게연결돼있기때문이다.의전이발달할수록개인은사라지고 전체주의적인위계질서만 남는다. 그래서잘못된의전문화를 바로잡는 건 중요하다. 과잉의전 문제를사회적의제로삼아권위주의를해체하는방향으로나아갈때우리사회는비로소민주공화국이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