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은한국생활의입구…한일관계개선의징검다리되길”
K-팝은 내인생을 어떻게 바꿨나?③서태지·듀스노래에반해한국온지20여년K-POP이日에끼치는영향에관한논문써콘텐츠번역으로여전히행복한‘덕후’생활日서상상하기어려운자유로운‘홈마’문화끈끈한‘팬덤’현상, K-POP확장에큰역할
“어쩌면 음악이나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입구였을 수도있어요.”
모든 것의시작은 어쩌면 심야의음악방송일 수도 있다. 1994년 당시후지텔레비전에서방영됐던 아시아N비트(アジアNビート)라는 심야의음악방송은당시고등학생이었던사사 히로코에게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시아 여러나라의음악을 소개하는 방송에서사사는 K-POP(케이팝)을 처음 만났다. 서태지와아이들이부르는‘발해를 꿈꾸며’와 듀스의음악은 기존의일본음악과는다른묘한끌림이 있었다. 음악의분위기도 달랐지만, 랩이나 춤은당시일본대중문화계에서볼수없었던신선함을던져주었다.
“아마도 그 방송을 보지않았다면 나는 지금 한국에있지않았을수도있겠네요”라며사사는 20년도 훨씬넘은당시의일을회상했다.
음악을 워낙 좋아했던청소년이었기에사사의관심은곧한국으로 향했다. 대학에입학한 해7월 학교가 마련한 한국 단기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선택한 배경에도 한국 대중음악에대한 호감과 호기심이 자리잡고 있었다.그리고 한국에서한 달을 지내며사사의인생은 서서히방향을틀기시작했다. 한국에서의1개월은 한번도 경험한적이없는 시간이었다. 만나는한국사람은모두친절했지만, 지나친 호기심으로 사사를 비롯한 일본 친구들을 대했다. 우선역사에대한이야기가 빠지지않았다. 사사는학교에서역사를배우기는 했지만,근현대사에속하는한국 식민지시대에대해자세히배우지는 않았다. 그러나그가한국에서만난대부분의사람들이역사와 한·일관계에대해물었다. ‘과거일본이한국을식민지로 삼았던것에대해어떻게생각하냐’는 것이다.곤혹스러웠기에제대로된대답은못했다.
그러나이렇게많은이들이자신에게예외없이똑같은질문을던지는것에대해적지않은충격을 받았다. ‘도대체무슨일이있었기에한국사람들은나를이렇게대할까’ 하는의문이사라지지않았다.한국이라는나라에대한관심이커지기시작했다.
이후 일본에돌아간 사사를 다시한국으로 돌려세운것은일본아사히신문에작게난광고였다.한일공동워크숍이라는프로그램이열린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으로휴가를갈 계획과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숭실대1개월 체류당시남았던의문이머리에서떠나지않았기에프로그램에신청을 했다.워크숍은일본강제징용문제등 한·일간의역사 갈등과 화해를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양국의젊은이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그 여름 이후 사사의인생은완전히바뀌었다.
“대학을졸업하고나서2000년대에찾은한국은좀달라져있었습니다.대놓고앞에서일본과한국의관계에대한질문을던지지않았죠. 뭐랄까, 1990년대후반일본문화개방이본격적으로시작된이후라서일까요?사람들은역사에대한이야기보다는한국의문화에대한이야기를더많이건넸어요.”
사사가 한국을 찾은 것은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 일단 그 음악의언어에관심을 가지게되는 것이 순서였다. 한국에와어학당을 다니고,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아마추어밴드를만들어활동하기도 했다.한국에서머무는시간은1년에서2년으로, 점차 늘었다.결국 20년이가까워지고있다. 심야의한프로그램속음악에이끌려한국으로들어선사사는이제사이버한국외대조교수를맡고있다.
얼마전에는 한국 케이팝이일본 커뮤니티언어에어떤영향을미치는지에대해소논문을발표했다.한국어는일본의케이팝팬들의언어에자연스럽게녹아들어가또다른언어체계를형성하고있었다.
예를 들면일본에서는 특정스타의팬을 지칭하는 환(ファン)을 대신해팬(ペン)이라는 말을 쓴다.한국어에서F를발음할때‘ㅍ’으로 발음하는점을그대로사용한것이다. 그밖에도한국아이돌팬문화에서사용하는 단어들,예를들면아이돌의사생활을집요하게따라다니는팬을일컫는줄임말인 사생(サセン)이나, 직접공연장에서영상을찍는 직캠(チッケム), 팬미팅을뜻하는 팬미(ペンミ)등이번역없이그대로사용되면서문화접촉의영향을반영하고있다.
사사는 케이팝 팬들의증가가 한·일관계 개선에영향을미칠수있을 것인가에대해서는 ‘모르겠다’는 솔직한답을 내놓았다.한국음악을좋아하지만, 한·일관계나역사에는관심이없는이들이대부분이기때문이다. 케이팝젊은 층에서인기를 얻고는 있지만, 그렇다고이들이 한·일과거사에이전보다 관심이더많아진것은아닌것같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도 한류열풍은 있었지만, 한·일 관계에대한 대중의여론에는 크게영향을 미치지 못했다.한편에서는 혐한을추종하는일본 극우세력들은 케이팝팬들에대해심한반감을표하기도한다.
사사는 지금도 열렬한 케이팝 팬이다. 물론 서태지와아이들에서대상은 바뀌었지만,한국음악은여전히매력적이라고 본다. 케이팝이사사를 사로잡는 또 다른이유중하나는끈끈한팬덤이다.
그는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이내가 좋아하는연예인을좋아하면약간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러나 한국은 달라요. 서로를 격려하고 정보를 나누면서팬덤을키우기위해서열정적으로 노력하죠.이런모습들은트위터에서도나타나면서같은 케이팝 팬들끼리는끈끈한연대를가지고있습니다”라고말했다.
케이팝 팬이되면서사사의팔로어도 많이 늘었다. 일본인들이접하기힘든콘텐츠를번역해서올리기도 하고,방송일정등을공유하기도 한다. 대가없이다른팬덤의구성원과마찬가지로우리‘애들’을 키우기위한과정이다.
이른바 덕질을 하고 나서사사는 많이행복해졌다고한다. 케이팝 아티스트들의가장 큰 특징은 팬들과의소통이많다는 것이다. 물론일부상업적인것도 있지만, 팬들과의 접점을 여러곳에서 생산해낸다. 팬들이팬들을대상으로 하는영리행위를 엄격하게막지않는 것도 케이팝확장에큰역할을했다고사사는생각한다.
“일본은 아이돌 소속사에서사진이나 영상들을 철저하게관리하고 있어요. 팬들이사진을 찍어굿즈들을 만들어서판매하는다시파는이른바 ‘홈마’ 문화도일본에서는 상상하기힘든 것입니다”라고 사사는 말했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 배포되는 다양한 영상 등은 팬들의창조적인음악과아티스트소비를가능하게했다고사사는짚었다.
그는 “한국 아티스트들은이미인터넷을 통해문화가퍼지는 전 세계적인네트워트에준비돼있던사람들처럼느껴졌어요”라고 지적했다. 음악적인매력도 있지만, 팬덤과의긴밀한 소통을 통한 자유로운 콘텐츠의유통등이케이팝의매력을더욱끌어당겼다는 것이다. 사사는내년쯤 친구들과 일본에서책을 출판할 계획이다. 한국에서20년가까이살아온경험을바탕으로‘한국 제대로 보기’를주제로하는책을만든다.
“음악은 인기가 있지만, 여전히일본은 한국을 제대로보지못하고있다고 생각해요. 꼬여가고있는양국의관계개선에조금이라도 도움이되길 바랍니다”라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