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판자촌서어렵게자랐지만가난을‘무기’삼아정치하지않는다”
“동생하나있는것도건사 못해.”소년은늦은밤어머니한테호되게혼나고있었다. 낮에동네어귀에서데리고 놀던여동생이똥독에빠졌기때문이다. 그제야 시장에서장사를 끝내고 들어오신 어머니는 어린여동생이가엽기만 했다.소년과여동생은두살 터울이다.
소년은 깎아지른 듯한 민둥산 산등성이판자촌에살았다.동네는변변한변소한칸보기드물었다.그래서여기저기똥독이널부러지게박혀있었다.산등성저편에는똥이뿌려져있기도했다.
이런동네에전기가 들어올 리만무했고수도는커녕우물조차없어없는형편에도물은사마셔야 했다.
이때만 해도 ‘새마을 운동’ ‘조국 근대화’란 단어는 낯설었다. 아무튼 6·25전쟁과 5·16혁명의상흔에서벗어나지못한 채어렵게만 살던박정희군사혁명시절이었다.
끼니걱정에도공부만큼은늘 1등
어머니는 매일 시장에장사 나가시고, 아버지는월급도나오지않는건설회사에다니셨다. 말이회사지, 부도난회사나 다름없었다.월급한번가져오질못하시니말이다.그렇지만잘살아보겠다는일념하나만큼은 분명했고, 아이들교육열도어떤부모못지않으셨다.
이시절에는소년만그렇게어렵게산것이아니었지만, 소년이학교에갔다 돌아와 솥뚜껑을열어보면누룽지한조각없는빈솥단지였다.소년은배가 고팠다. 소년은허기를달래고자여동생을 데리고 놀다 변(便)을 당했다. 여동생이박혀있던똥독에빠져버린것이다.똥독에빠지면더러운 악취는 물론이요, 똥독(毒)에 걸리기 십상이다.이렇게되면큰 일이다. 더러운똥이야씻으면된다지만똥독에걸리면병원갈돈도없다.
충분히먹고자라지못한어린동생은면역성결핍으로그럴가능성이매우 크다. 그러니어머니의걱정은이만저만이아니었다.
사실어머니도 소년에게왜안 미안했겠는가.먹일거못 먹이고, 입힐거못 입히고···. 부모 마음이야 매한가지다. 어머니가 밤 늦게까지장사를 하셔도 하루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끼닛거리조차 못 벌 때도 허다했다. 이런 어린것들에게싸라기밥으로 연명시키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아니었다. 소년은이런어머니를보고 자랐다. 소년은 이때부터훌륭한 사람이되겠다고 다짐하고다짐했다.
소년은 또래보다 훤칠한 키에깡마른 체구였다. 게다가 약간 광대뼈가 솟은 데다 못 먹어서생겨나는 마른버짐까지 피어 있었다. 그렇지만총명한눈동자를갖고있었다.게다가오뚝한코하며입가에는늘미소를머금고 있었다. 소년은못먹어서근력이달렸다. 하지만공부만큼은반에서제일이었다.그래서반장을늘도맡아했다.
소년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2학년 때일이다.소년은미아리에있는삼양국민학교에다녔는데,담임이여자선생님이셨다.선생님은초급대학교를막졸업하시고이학교로첫발령을받으셨다. 참 예쁘셨다. 그때소년은 반장이었다. 선생님은 소년을 참예뻐해 주셨다. 그러나 3학년이되자소년은부산으로전학을 갔다.아버지가그곳으로발령받았기때문이다. 그월급도안나오는회사 말이다. 소년에게아버지회사는말이건설회사지조그만 ‘하꼬방’ 같아 보였다.그렇지만소년은두손불끈쥐고열심히공부했다.반에서1등은당연했다.소년은가난종식을위해이를더악물었다. 어린나이에도 말이다. 그러나 인간사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소년은 폐병을 앓게 됐다.어머니는매일학교로소년에게도시락배달을해주셨다.우여곡절끝에병에서회복됐다.
‘사람이태어나면 서울로, 말은 제주로’라고 했던가. 어머니는 소년을 위해서울로 또다시전학을 시켰다. 소년의가정이다시서울에정착하게된것이다.
6학년 때 서울 미동국민학교로 전학왔다. 그해 박정희의 독재가 극에달해 있었다. 10월 유신도그해단행됐다.박정권의장기집권을위한포석이었다. 한편으론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됐다. 모두가 ‘잘살아 보세’였다. 희망적이고역동적이기도 했다.
소년의집에도 조금씩볕이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남대문시장에서1평남짓한쪽방하나를얻어원단에삯바느질을 하게 됐다. 그렇더라도가난은 여전했다. 원단을사서삯바느질을해어느가게에납품을한뒤돈받으러가면그가게는감쪽같이사라지가일쑤였다.
그럴때어머니는 소년의손을 잡고 이모댁으로 돈을 꾸러가시곤 또다시그 돈을 갚으러가셨다. 돈을 갚으러온 어머니가 안쓰러운지이모는어머니손에택시비를쥐여주지만그돈을받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마지못해 이모는 소년의손에 그 돈을 쥐여 주시고 택시까지 잡아 태워주지만이모눈에서멀어지기가무섭게택시에서내려 걸어오기가 일쑤였다. 소년은 이렇게 성실하고신의가있는분들밑에서자랐다.
절친여동생과‘운명적 만남’
어느덧소년은중학교에입학했다.중학교에서도공부를 잘했다. 고생하시는부모님을보면그러지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소년은이미사춘기에도달해있었다. 국민학교때는반장을도맡았는데중학교에서는부잣집아이들이반장을하는게아닌가.빈정이상했다.숨기려해도숨길수없는게 가난이라지만···. 소년은가난이창피하지
않았다.잘살수있다는꿈이있었기때문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청소년이된 것이다. 어머니의고생덕분인지집안 형편이좀나아진듯했다. 고교생이 되자 이 학생은 한 소녀를 알게됐다.그러나이소녀가자신의운명일줄은그땐몰랐다.영화나드라마같지만계기는아주간단했다. 반에서친한 친구 한 명이생긴 것이다. 학생과그친구는곧바로‘절친’이돼버렸다.
그러나 절친은디스크를앓게됐고급기야 학교에 나올 수가 없게 됐다. 학생은 절친을 위해수업시간에받아 적은노트를빌려주며같이공부를하게됐다.미리말하지만이절친은학생보다 한 학년 선배였는데허리디스크 때문에1년휴학한 뒤 복학한 것이다. 그래서 학생과 절친은한학년한반이돼친하게지냈다.
절친에겐여동생이있었는데절친과는연년생이요, 학생과는 동갑내기였다. 꽤아름다운소녀였다. 학생과 절친, 절친여동생은 한 학년이됐다. 셋은 같이모여공부도 하고 그룹 과외를 같이하기도 했다. 학생과 소녀는 자연스레친하게됐지만얼마가지않아서먹한사이가돼버렸다.학생은 과외를 30분 더 시켜 달라였고, 소녀는30분 일찍끝내달라였다. 소녀와그래서그렇게됐다.학생은그룹과외를때려치웠다.
종로 학원가 단과반에다니기로 했다. 그런데이게 웬일인가. 소녀도이단과반에등록한 것이아닌가. 학생과소녀는또다시친해졌다. 둘은열심히공부해같은대학에입학원서를냈다.소녀는합격했으나학생은고배를 마셨다. 후기대학에갈수밖에없는처지가 됐다.
후기대학에입학하자금세청년이돼 버렸다.청년이된 그해 10·26이 터졌다. 전국 모든 대학에휴교령이 내려졌다. 청년은이휴교령을 틈타열심히공부해숙녀가 다니는 대학으로 편입하는 데 성공했다. 청년과 숙녀, 둘은 이제완연한연인사이가 됐다. 사법고시에합격한 청년은이예쁜숙녀와냅다결혼식을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