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역량이대학경쟁력…국가임용교수제어떤가
<’경쟁력 47위’ 한국 대학의자화상>최근일간지에실린칼럼의 제목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지난해한국의국가 경쟁력은 64개국 중 23위, 대학교육 경쟁력은 47위에 머물렀다. 얼마 전영국의글로벌대학 평가기관인QS가 발표한‘전공별세계대학순위’에서도 ‘톱10’에 든 국내대학 학과는 한 개도 없었다.” 한국 대학의 경쟁력에 대한 우려와 질타는 언론의 단골 메뉴다.대개세계대학평가에서상위권에드는대학이적고, 갈수록평가결과가좋지않다는요지를담고있다.
경쟁력하락의핵심원인은재정지원의부족이다. 대학이 명실상부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연구와 교육에매진하고, 그 결과물로 탁월한 연구 성과와 우수한 핵심인재를배출하기위한기본전제는안정적인재정지원이다. 교육 및연구 환경의 개선, 교수 1인당 학생수의합리적 조정, 우수교원의유치등교육의양적·질적향상을 위한 알파와 오메가는 곧 재정이다. 그런데 지난 10년 이상 우리의교육 당국은대학 재정지원에매우 소극적이었다. 국가의재정지원은 최소주의에머물렀고, 대학의등록금수입은 동결되었다. 최근본격적인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정원 미달 사태는 대학의존립마저위태롭게하고있다.
그러자 대선 국면에서 총장들은 대학에 대한 공적투자를 안정적으로 확대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국립대도 예외는 아니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대학생한 명에게투여되는 공교육비(1만1290파운드)는 OECD 회원국 평균치(1만7065파운드)의 60%를 조금상회하는수준에지나지않는다. 더나아가대학생1인당 공교육비가 초·중등학생의1인당 공교육비(초등 1만2535파운드, 중등1만4978파운드)보다 낮다. 초·중등 학생의 공교육비가OECD 회원국 평균치를 상회하는 사실을 고려하면 의무교육에는 선진국 못지않은 재원을 투자하지만 고등교육투자에는매우인색한우리사회의왜곡된합의가확인된다.
왜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해답을 찾으려면 고등교육의공공성이매우낮은특수한대한민국대학체제에대한이해가 필요하다. 대학생의85%가 사립대학에다니고, 그수는 전체대학생수의 78%를 차지(?)한다. 사립대학의교육비는 거의전적으로 등록금에 의존한다.유수한 미국 사립대학처럼연간 수만 달러에이르지는않지만소득과물가를반영하면사립대학등록금은우리국민에게커다란부담으로,이미오래전에공공의적이되었다.
단순히 액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 국민에게사립대학은 ‘비리’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포털사이트에서 사학을 치면 제일 먼저 연관 검색어로 뜨는 게사학 비리입니다. 사학비리는확실하게끄집어내서수술하고, 처벌할 건처벌해야 하지만···.” 최근 김도연울산대학교 이사장의 뼈아픈 지적이다. 우리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사립대학에 자녀를 보내곤 있지만, 한편으론 대학 교육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 사립대학에대한 공적 재원의 투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강한 저항에 부딪힌다. 사립대학의비중과 사립대학의비리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한국 대학의발전은 요원하다.
현행법상국가가사립대학에공적재원을투자할명분은 없다. 국가의직접적인투자는국공립대학의설립과 운영에 한정된다. 그런데국공립대학의절대다수가지방에위치하고 현실적으로 대학 서열이낮아서국공립대학에대한투자확대가전체대학과 사회에끼치는영향력은 미미하다. 따라서전체적으로 우리의고등교육을위한공적재원투자비율은낮을수밖에없다.
이에대한 해결책이재정지원 사업이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 수도권과지방을모두섞어획일적인잣대로줄을 세우고 재정을나누어주는 방식이다. 일견합리적인정책으로보이지만오히려대학을망쳐놓았다.처음부터수도권과 지방 간 기울어진지형에서경쟁을 시키면 지방 대학이고사한다는 지적과 경고가 있었다. 실제로지난 10여 년동안 정부는평가결과에따라정원을 감축하였는데,십중팔구는지방대학이직격탄을맞았다.
또한 비중 면에서나 지리적인 면에서취약한 국립대학이대학평가의유탄을맞아 휘청거리게되었다. 국립대학에투여되는 재정비중은 과거와 비교하면현저하게줄어들었다. 결국대학평가는국립대학의설립목적과 특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병을 고치려다가 되레몸을 망쳐놓은 형국으로, 지방 사립대와국립대가모두골병이드는신세가되었다.
그렇다면 재정 지원만 해결되면 대학의 경쟁력은향상되는가? 아니다. 경쟁력강화를 위한 선결 과제는연구와 교육 여건의 향상이며, 이는 재정 지원으로만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그 첫 번째 과제로 교수 1인당학생 수를 적정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현재 ‘대학설립·운영규정’은 계열별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인문·사회 25명, 자연과학·공학·예체능 20명, 의학 8명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기본통계’(2022년 1월 발표)에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 일반 대학의교수 1인당 학생수는 21.3명이다. 다른 교육부 통계는 2020년 교수 1인당학생수를국공립대학평균 25.6명, 사립대평균 27.5명으로 제시한다. 미국 대학은 이 수치가 절반 이하로떨어진다. 4년제일반 대학 평균치는 14명, 사립대학 평균치는 12명이다. 이 수치를 내리지 않고 대학 경쟁력을거론하는것은백년하청과 다름없다.이와관련하여2016년 국립대교수연합회가 주도한 ‘국립대학법안’이국립대교원확보 기준을 인문·사회 20명, 자연과학·공학·예술 15명, 의학5명으로조정하자는제안은매우획기적이었다.
이런 여건이 갖추어질 때 각 전공 분야에서 경쟁력있는 학생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진다.예전에필자의 ‘역사학개론’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이떠올랐다. 내성적인성향인그학생은수업시간에자기의견을표현하는데어려움을 보였다. 서술형으로답안을작성해야 하는기말고사에서그학생은문장이아닌 8컷만화로답안을제출했다.개인적으로학생의답답하고애처로운심정을헤아리는한편그에게글쓰기를지도할수없었던환경을아쉬워했던기억이있다. 학생의실력을탓하기전에학생들의글쓰기능력을키워줄수있는교육시스템구축이절실하다고보기때문이다.
인문학 교수로서글쓰기능력은 대학생이졸업전에갖추어야하는기본능력이라고 생각한다.이미여러대학에서 글쓰기 능력 향상을 위한 기구나 프로그램을운영하는것으로알고 있다. 나역시한때‘글쓰기클리닉’ 운영을 주도했지만 아직보편적인단계는 아니라고본다. 객원교수로 컬럼비아대학에체류할 때가장인상적으로 다가왔던대학의기관은 철학과 건물 1층에있던‘글쓰기 센터(Writing Centre)’였다. 철학과가독자적으로건물하나를모두사용하는것도놀라웠고그입구에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출입객을 마중하는 모습도 이채로웠지만, 다양한 전공의학생들이이센터를이용하여자신의글을다듬는과정은무척인상적이었다.컬럼비아대학의교수1인당학생수는 6명이다.그 중심에는 교수가 있기에교수에게파격적인 변신을요구하는것이다.
대학교수의여건이예전보다 팍팍해진 것도 분명하다. 그래도여전히외부의시선은매우 냉정하고 심지어적대적이다. 이는 인사청문회를 통해서드러나는 교수의심각한 도덕적타락에기인하기도 한다. “오로지 더높은 학벌과 특권을 누릴 목적으로 공부하고 전문성을 기르는 이사회의적나라한 현실이거기에 있다. 공공선, 도덕,신뢰를고민하는지식인과전문가는‘멸종위기종’이 되어버렸다. 사회적책임을 내던지고 가장 먼저배를탈출할티켓으로 전문가의권위와 특권이사용된다면, 그건사회의총체적실패다.” 청년연구자최성용의지적은참으로신랄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수는 젊을 때는 연구해서가르치고, 50대에는 아는 만큼 가르치고, 60대에는 생각나는 대로 가르친다.” 강의에관한 대학가의오래된농담은 나의현실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었고, 학생들의반응을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내게가르침의정도를 보여준 독일교수들의모습이떠올랐다. 수강생누구나이해할때까지성실하게반복하여설명하고, 언제든 자기의견을 기탄없이얘기하도록 분위기를 끌어가는노력에매우감동하며수업을들었던경험이있다.
대학은사회진화의거울이다. 사회를이끌어가는인재를 배출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다음과 같은 질문에늘 답해야 한다. 대학은 산업구조의변동과 사회발전을 주도하는 고급 인력양성의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가? 인문학자로서 교수는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산업화·민주화·정보화를 넘어 사회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 새로움의실체는 아직명확하지 않지만, 그 사회속에서인문학교수로서또는생명과학교수로서자기역할을늘자각하고있어야하지않겠는가?
지인이얼마 전 내게전한 사연이다. “서울대 학부를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에서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10년 넘게어느 사립대교양학부에서연봉 3500만원을 받고 근무하는 분을 만났어요.” 우리의고등교육인력시장의심각한 왜곡 현상, 비정규직교수의열악한사정은우리미래를우울하게한다.그러나뒤집어보면지금은세대교체의적기다. 1980년대졸업정원제도입으로 엄청나게늘어난 교원들이퇴장하는 마지막 시기다. 장강의뒷물을 막을 수 없듯이,새로운 세계를이끌어갈 참신한인재가 필요하다. 국가는 40년 전에대학 교육의보편화(대중화)를 위하여과감한 정책을 펼쳤듯이,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아 새로운 의제를 제시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할 인재를 대학에공급하는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않으면대학은도태된다.지금대한민국대학이바로그런운명을맞고있다. 새로운인재를영입하지않으면대학의미래는없다. 학과 구조로짜인대학의특성상 새로운 전공이생겨나기는참으로쉽지않다. 또한필요하지만희귀한분야의연구자양성은더욱 어렵다. 대학구성원의이해관계를 조정하기어려운 분야에서국가의개입으로 대학의변모를강제할필요가 있다. 차제에‘국가임용교수제’라는아이디어를 제안한다. 대학에활력을불어넣고경쟁력제고에크게이바지할것으로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