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살리기’국립대가중핵이돼야한다
기온이 오르고 만물이생장한다. 꽃이피어향기가 온세상으로퍼져나간다.마침내코로나19의긴터널을빠져나오는시점이다가온 듯하다. 그러나 5월의생장 기운도, 코로나종식의기대감도지역대학에생기를불어넣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금 지역 대학은 다이어트 중이다. 얼마나 다이어트를 하고, 어떻게체질을개선해야 할지보고서에담아교육부에제출하는과제로몸살을앓고있다.
교육부의요구는 ‘적정 규모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결국교육부는정원조정정책을유일하게실효적인대책으로판단하고,대학에과제를부여한 셈이다.다만예전처럼교육부가 목표를 정하여강제적으로 감축하는방식이아니라파산직전인대학이구성원의동의를거쳐자율적으로감축규모를정하는방식으로진행되는 점이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정원감축으로 지역대학은생존을확보할수 있을까? 과연이런식으로언제까지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연명한 대학은 대학으로서설립목적을달성하고역할을수행할수있을까?
2021년 입시 결과는 지역 대학을 충격에 빠뜨렸다.정원을채우지못한대학들이속출했고, 국립대마저적잖은규모의미충원이발생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청년의수도권유출현상이극적인효과를발휘한미충원사태는 한 세대전부터예상했던, 이른바 ‘벚꽃엔딩’의현실을연출하는듯했다.총장이사퇴하는사립대학이 나왔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자발적인 학생정원감축과구조조정을서두르는국립대학도있었다.
이제실제로지역대학이파산선고를받을위기에이르자 비로소 정치권이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치인주도로 다양한 토론회와 공청회가 열렸고, 국가교육회의와국가균형발전위원회등 대통령직속 교육 관련기구들이 연합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대책을 모색하는차원에서‘고등교육 개혁을 위한 토론회’가 마련되었다.연일언론은교육당국에묘책을주문하는기사를쏟아냈고, 한편으로 지역대학 총장들은 현재의위기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부에특단의대책을 요구했다. 서로위기의책임을지지않겠다는자세가분명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필자가 주목한 사안은2021년 11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발의한 ‘국립대학법’ 제정이었다. 의정기간 내내교육위에서활동한유기홍의원은지역대학의문제에많은관심을가졌고,특히대학 간 균형발전이갖는 의미를 간파하고 다양한 대책을 내놓는 행보를 보였다. 그래서유 의원은 국립대학법제정과 함께 ‘대학균형발전특별회계법’과 ‘조세특례제한법’을 제안하며,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대학을살리고자했다.
국립대학법은 간단히말해서지역에소재한 국립대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국립법인대학 서울대에 버금가는 학생1인당 교육비를 지원하자는 내용이다. 현재국립대학생1인당 평균 교육비(1670만원)는 서울대학생교육비(4860만원) 대비3분의 1 수준에불과하다. 교육비는교육환경에투자한비용으로서대학의우열을가리는 결정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말하는대학의서열은이교육비규모와거의일치한다. 연세대가 3000만원대를 넘고, 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등 서울의주요사립대가 2000만원대를 유지하는반면에하위권대학과 지역의사립대학은 1500만원에 미치지못하는 실정이다. 이런현실을고려할때국립대학법제정을통한국립대정상화는바람직한방향이었다.
그러나국립대학법은발의된지6개월이되었지만해당소위의문턱도 넘지 못했다. 발의자와 더불어민주당의법안 통과 의지가 의심된다. 국민의힘은 상대적으로소극적인태도를취하며관망하고있다.지역대학을살리는묘책을왜수수방관하고있을까?국립대구성원들대학 서열은 학생 1인당 지원하는 교육비 규모와거의일치.국립대학법제정을통한지방국립대지원비확대는바람직법안자체의미흡한내용과부족한철학등의이유로국회문턱못 넘어. 서열화에익숙한국민은대학혁신에관심없어이또한성장주의이념에사로잡힌전략으로,근본대책이아님을지적
조차이법안의통과를위하여적극적인요구와행동을취하지않는이유는무엇일까?
필자의판단에따르면이법은 두 가지한계를 안고있다. 먼저, 법안 자체의미흡한 내용을 지적하지않을수 없다. 일단 국립대의지위향상과 발전전략에관한철학이부족하다. ‘자율성을보장하고공공성과사회적책임성을 높여, 학문을발전시키고인재를 양성하며, 국가균형발전에기여함’이라고 법안제정의목적을밝히지만 국립대의명확한 상(像)을 정립하지않고 또 숭고한목적들을실현하려는 의지와 방안도 보여주지못한다. 무엇보다도국립대학을 ‘국가기관으로 규정하며, 대학운영에관한독립된권리와권한을행사하고의무를부담하는 공법인’으로 규정함으로써교육부통제가아닌자치적운영원리를구현하려는요구가반영되지못했다. 나아가 국립대학법은 총장독임제의폐해를 막을장치도 없고 민주적 대학 운영을 위한 제도와 규정도없다.구체적으로 ‘대학평의(원)회’의의결기구화,교육부가 파견하는 사무국장 제도의 변경, 국립대교원 확보기준의 정립(인문사회 20명, 자연과학·공학·예술 15명,의학 5명), 한국국립대학교육협의회의 설치또는 사립대가 할수없는 기초·보호학문 분야 수호와 대규모예산 소요 분야를 이끌어가는 역할 등 다양한 요소들이빠짐으로써국립대본연의목적과역할을 구현할 토대가제시되어있지않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나라 대학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전략의부재다.앞서연재기사에서지적한것처럼우리나라 대학생중약 80%가 사립대에 다닌다. 즉 ‘사립대비중 80%’라는 고등교육 체제의왜곡을극복하면서국립대학법을 제정하려는 뚝심과 슬기의부재가 아쉽게다가온다.우리국민은왜곡된교육체제에적응하였다. 당장 우리아이가 좋은 대학에진학하기를 바라는마음이우선이기에지방 국립대육성보다는 지역을가리지 않고, 또 대학 서열화도 아랑곳하지않고 그저‘좋은 대학’이 많이있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보낼 뿐이다. 이법안이여론의관심을 받지못하고 국립대학 구성원의문제와 희망으로머무는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런사정을고려하여사립대와공통분모에해당하는부분들을반영하면서국립대발전을도모하는법안을제시할 때비로소 이법안에 대한 여론의 관심과 국민의지지가생기리라믿는다.
과연 국립대학법 제정은 이대로 무산되고 말 것인가? 그렇다면국립대학은 어떤운명을 맞이할까? 과격한결론으로보일지모르지만,나는국립대는망한다고본다. 국립대지원을 위한 확고한 근거가 없는 한 국립대는 회생할 가능성이사실상 없다. 일자리가 없고 정주인프라가빈약한도시에서어느 청년이일생을보내려고 하겠는가? 인구 소멸 도시에 대학이존재한다는자체가난센스아닌가?그래서발상을전환하지않으면백약이 무효다. ‘대학이 도시를 살리는 중핵이 되어야한다.’ 대학의부흥을 통해도시가 생기를 찾고 지역사회의활성화를도모하는 방식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대학 존립의확고한 초석으로서국립대학법이반드시제정되어야 한다.
1편관리의위기에서언급했듯이,지금까지지역대학에관한여러가지대책이 시행되었다. ‘대학설립준칙주의’라는 해괴한명칭의대학경쟁체제가 도입되거나, 넘쳐나는대학에재정지원을빌미로 선택과 집중의원리를 적용해대학 간 경쟁을 유도하기도 했고, 정부의행정적·재정적 권한으로 강제적인 통폐합을 실시하는 등다양한실험과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러나 지역대학은‘좋은 대학’으로거듭나지못했고,오히려지역의쇠락과함께지역대학은끝을모르고추락중이다.
모든 조직의생존은 두 가지요소로 진행된다. 생존의 명분과 조직 구성원의 열정. 우리는 이렇게 물음을던져볼 수 있다. 국립대학이왜존재해야 하는가? 혹은지역에 왜그렇게 많은 대학이존재해야 하는가? 그리고 국립대학의존재를 위하여구성원들은 최선의노력을 다했는가? 교수는 탁월한연구 성과를 내고 학생의교육과지도에열정을 기울였는가? 사회의변화와기술발전에조응하여교육 과정과 교육 환경을 개선하거나개혁하는작업에충실했는가?
먼저, 국립대학이왜존재해야하는가에대하여살펴보자.산업사회로전환하는과정에서국가는국민을노동력으로보는경향이강하다.국가는양질의노동력을양성하는 중요한 책무를 이행하고, 그 비용을 부담한다. 그래서모든 국민에게의무교육을이수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고등교육을 받을수있는여건을 제공한다. 대학교육의비용까지국가가부담하는나라도많다.그런맥락에서고등교육의공공성은선진국의지표이기도하다.
우리의경우 국립대학이여기에 해당한다. 경제성장을 거치면서우리정부는 국토의균형발전을 위한 전략이자 해당 지역주민에게경제성장의결실을 분배하는 차원에서국립대학을 설치했다. 지역의국립대는 해당 지역의인재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대학 생태계에서상위를 차지하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비록 국립대가 전체고등교육에서차지하는비중은 작았지만, 국가고등교육 체계에서나 지역사회와 지역경제에서나 국립대의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울 일극화 현상이지속적으로 강화되면서국립대의위상과 비중은추락하기시작했고, 시장주의와 경쟁체제속에서국립대는 존재조차 희미해졌다. 국립대의위축과 소멸은 해당 지역사회의소멸로직결하고그것은국가균형발전에치명적인영향을미치리라고본다.
최근 수도권에상응하는 메가시티발전전략이나 특정지역에서울대와유사한대학만들기프로젝트가제시되고 있다. 어느 것이든 규모의경쟁만이살길이라는성장주의이념에사로잡힌전략들로 보인다. 이지점에서필자는독일모델에주목한다.독일에서는대학이도시를 이끄는 핵심 기관의역할을 맡는다. 대학이 도시에서가장많은일자리를 제공하는기관으로서시민의자부심이되고 ‘대학도시’를 간판으로 내건다.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전대미문의경제성장을 거치는 동안 독일전역에는수많은신생대학이생겨났다. 학생수 4만명이넘는대규모대학부터1만명정도인소규모대학까지전국 중소 도시에대학이퍼져 있다. 필자가 연구년을보냈던밤베르크사례를 살펴보면, 인구 7만명이조금 넘는 세계유산 도시밤베르크와 재학생 1만2000명이다니는밤베르크대학은이상적인 조합이다. 고풍스러운 중세도시답게대학에는 인문학부, 사회과학부, 교육학부와 정보과학부가 설치되어 있다. 도시에적합한특성화 학과로 편제되어있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도이와 같은 모델이가능하려면반드시국립대학법이필요하다.
두번째 질문, ‘대학 구성원은 혁신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솔직히말해서의문이든다. 그러나현재상황에서 혁신이 없다면 그냥 자멸의 길을 선택했다고 봐야할 지경이다.이제혁신은선택이아니라 의무다.목마른자가 우물을 파듯이 지역 대학의 모든 구성원은 사회변화에적응하고변할각오를하지않으면안 된다.
그동안 제시된무수히많은정책과 프로젝트는강제성이 없었다. 그것이지역대학이밀려나는 원인이었고,한편으로는 경쟁력을 의심받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지역대학이없으면 지역사회가 공멸하는 오늘에이르러강제력이동원되는수단이필요하다. 그역할을국립대학법이맡을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더나아가 사립대학을 규율하고 관리하는 사립대학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이둘을 아우르는 대학법이제정되는 날이올 때, 한국의대학 체제는 정상화에이르리라고전망한다.
▷연세대사학과졸업▷독일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 학위 취득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 ▷2021년 5월부터한국대학 체제의개혁방안을 모색하는‘삼각지연구팀’에 참여해 <대학법체제정비>(2021)와 <고등교육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대학정책>(근간) 공저 ▷교수신문 기획연재 ‘대학법과 대학의미래’의책임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