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U Business Daily

건축가승효상이들려주­는‘터무니있는’제주이야기

시대증언하는땅이가진­무늬‘터무니’일제강점기아픈역사제­주유배생활김정희간결­한삶닮은텅빈공간에둥­그런창하나황무지개간­목장에‘미스터밀크’공장수직과수평의조화

- 기수정기자viole­t1701@

“일본인 작가시바료타로가쓴<탐라기행>을읽고 제주에대한이중적인생­각을고치게 됐다.제주의풍광이 이국적이라고, 그래서흔히신혼여행지­로혹은간혹가서놀다오­는곳으로막연히동의해­왔던잘못된생각을직시­하게됐다” 저서<오래된. 것들은. 다.아름답다> 중에서오랜만에제주를­찾은현대건축의거장승­효상(이로재대표)과만나제주이야기를들­었다.

그동안숱하게다녔던제­주여행이었음에도제주­의속살을제대로들여다­볼생각도하지않아서였­을까.

그동안생각해온제주는‘천혜의 자연’을 품은아름다운 섬, 사계절여행하기좋은곳­정도에머물러있었다. 승효상과의만남은큰울­림을안겼다. 비로소 깨달았다. 제주하면자연스레떠올­랐던느낌이,사실은얕은감상에불과­했다는것을.

◆피와눈물의역사를마주­하다

제주가품은이국적인문­화와온화한 기후, 다양한 볼거리·즐길 거리는 뭍 사람들의호기심을불러­일으키기에충분하다.

발길닿는곳마다 펼쳐지는아름다운자연­환경에 절로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제주는 그렇게우리나라제1관­광지로자리잡았다.

하지만 제주의이국적인풍광 뒤에는 깊게스며든피와눈물의­역사가가려져있다.승효상작가가 알뜨르 비행장을 제1 목적지로 삼은 것도제주가품은아픈역­사를 잊어서도, 버려서도안된다는것을­일깨워주기위함이었으­리라.

“제주는바다건너가는고­을이란뜻입니다.철저히 육지입장에서붙인 이름이죠.” 바다를 건너야닿을수있는,고립의섬이바로 제주다.

승효상은“제주는 우리에게성찰의기회를­주는 땅”이라고 이야기했다. 제주를아름답다고말하­는건이러한역사가고스­란히제주땅에스며들어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는것이다.

그도그럴것이제주도는­한국역사에서매우민감­한 지리적 요충지였다. 일본군이제주를 침략전쟁의교두보로 활용했다. 그렇게제주는전투기의­중간보급소가됐다.

알뜨르비행장이자리한­대정지역은특히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강제노역과각종 수탈, 반공이데올로기에의한 희생을강요받았다.

일제가제주주민 5000명을 매일동원해만들었다는 크고 작은 격납고는 100여 년이지난 지금도알뜨르비행장에­그흔적을고스란히드러­내고 있고, 한국전쟁직후무고하게­처형당한 제주주민132명유골­을한데수습한공동묘지‘백할아버지한무덤’ 등도 남아우리선조가 그들의과욕에의해얼마­나 무참히짓밟혔는지를 명백히보여주고있었다.

◆빈자의미학을실현한공­간에서다

“많은 여행객이알뜨르비행장­의신기한 모습을배경삼아연신사­진만찍고 떠나죠.일제강점기와 4·3사건 등아픈역사를외면한 채 말이죠.이넓은들판에방치된거­대한격납고 시설들, 그뒤에병풍처럼펼쳐진­산방산과 푸른바다는세상어디에­도없는이야기를담고 있어요. 이땅에깊이박힌속살과 자연을 제대로인식한다면거장­의 멋진 미술작품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게되는것아니겠어­요?”

승효상의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두 번째목적지인추사관으­로 향했다. 추사관은 제주에서8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를 기리며만든미술관으로,승효상이설계를맡았다.

1984년유물전시관­으로시작해2007년­김정희유배지가사적으­로승격하면서새로운건­물이필요해졌고,승효상에게건축의뢰가­들어갔다.

승효상은“추사관건축의뢰가들어­왔는데,규모가 500평 넘었다. 우리나라 건축의아름다움은작은­것들이옹기종기모여있­는것이라생각해왔는데, 500평 규모 건물을 지어달라고 하니퍽고민이됐다”고 회고했다.

고민을끝낸승효상은모­든 전시시설을 지하로 보내고 땅 위에는 ‘집 형태’만 남기기로 했고,그의기획의도에맞게건­물이완성됐다.

건물을본주민들은“웬감자창고하나가들어­섰다”고입을모았다.

하지만이이야기를들은­승효상은“추사의삶을온전히이해­한다면이렇게불리는 것은무척영광스러운일”이라고강조했다.

추사의성품처럼군더더­기없고 깔끔하게지어졌다. 텅빈공간에둥근창하나­만을 냈다. 창밖에는소나무두그루­가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마치 ‘세한도’를 완성한듯보이는풍광에“기획의도였는지”를 물었지만승효상은“전혀아니다”고못박았다.

전시관에서는 다양한 전시품을 통해 추사의굴곡진 삶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최고의볼거리는그의글­씨다. 위엄있는서체속에는그­의학문뿐 아니라 개인의 삶이녹아 있다. 또 일본의추사 연구가인후지쓰카 지카시가 영인한 세한도한점과유배시절­추사가외로움을달래기­위해지인들에게쓴편지­도감상할수있다.

추사의작품과탁본등을­둘러보고위층추모공간­인추사홀로향했다.

빈공간에임옥상화백이­만든추사의흉상만덩그­러니놓여 있었다. 극단적으로 절제된공간이퍽강렬했­다.

추사관을나오기전,동그란창문아래걸린‘판전(板殿)’ 액자를바라보며그는이­렇게이야기했다. “훌륭한문체를남겨온추­사는말년에본인이처음­쓴글씨체로돌아갔어요.인생이라는아름다운여­행을끝내고다시소년으­로돌아간거죠.”

전시관 옆에는 추사가 기거하던 집과 유배생활모습을복원한 추사적거지(秋史適居地)가 있었다.

한평남짓한비좁은모거­리(별채)에머물며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비롯한 많은 서화를그렸으며, 제주 유생들에게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등많은업적을­남겼으리라.

◆백파진프로젝트를완성­하다

투어의마지막 목적지는 승효상이가장 최근제주에 설계한 ‘미스터밀크’ 공장이었다. 성이시돌목장에서생산­하는우유를받아치즈등­유제품을만드는공장이­바로미스터밀크다.

성이시돌목장은 1954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선­교사였던 맥그린치(P. J. Mcglinchey) 신부가황무지를 개간해만든 곳이다. 아일랜드 출신인맥그린치 신부는 제주도민을 돕기 위해 목장을짓고우유와육류­를생산했다.

군용 막사처럼생긴 테시폰(Cteshphon)은 이란바그다드근처지역­에서처음시작한건축양­식이다.우리나라에서는제주도­에서만찾아볼수있다. 특히이곳건축물은원형­그대로잘보존돼있다.건축관련서적에도소개­될정도다.

성이시돌목장과이를둘­러싼배경이퍽이국적이­어서인증사진을찍기위­해많은이가찾는다.

승효상은 성이시돌목장측의뢰를­받아공장을 설계했다. 승효상이건축한 미스터밀크 공장은 목장 밖에 있다. 승효상은 “성이시돌목장 처음으로외부업체와협­업해짓는것인만큼작업­이의미있었다”고 전했다.

승효상은프로젝트명을‘백파진’으로 정했다.승효상이 건축 프로젝트명을 ‘백파진’이라고이름붙인이유는­백파가‘하얀 언덕’이라는뜻이있기때문이­다.

금오름을 배경으로 하얀 파도를 내려다보는 성채다. 건물 역시 이름처럼 새하얀 색을 띤다. 공장은 오는 6월 말께부터운영될 예정이다.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요거트와 아이스크림,치즈 등 제작 과정을 관람하고, 유제품 만들기체험도할수 있다.

건축기행을 마치며그가 ‘건축’에 대해정의했다. “건축은 시대를 증언하고 장소를 증언합니다. 건축화작업이중요한이­유이지요.땅이가진무늬, 그것을터무니라고 해요. 우리시대의무늬를붙여­서새로운 터무니를 만들어후대에물려주는­것이우리임무입니다.

터무니있는작업을해야­하는 거죠. 터무니없는이상한건물­을지어서사람을환각상­태에빠뜨리는건나쁜 건축입니다.땅이야기를잘듣고이해­해야좋은건축물이완성­됩니다.”

◆수직과수평의조화를찾­다

승효상이설계에참여한­제주건축물중롯데리조­트제주 아트빌라스도 있다. 고급 숙박시설인아트빌라스­는올해개관10주년을 맞았다.

도미니크 페로, 겐고구마등세계적으로­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건축 거장 5인이 빌라 설계에참여했다.

당시승효상 작가는아트빌라스 총괄 기획자로 활약했다. 건축가들이자신만의건­축 세계관을담아각양각색­의빌라공간을 만들어냈지만,이모든것이제주의경관­을해치지않고자연스레­녹아들었다. 승효상이설계한 숙소는수직과수평의조­화가매력적인공간이었­다.

롯데리조트는투숙객들­을대상으로매주일요일 5시간 원데이프로그램 ‘승효상 기획건축투어’를운영중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승효상의제자인건축가 양현준이도슨트를맡아­진행한다.

아트빌라스 단지 내 건축물에 대한 설명 후밖으로 나가 본격적인 건축기행을 시작한다. 승효상 건축가의작품인추사관­을 시작으로알뜨르비행장­을 거쳐안도다다오의건축­물이있는본태박물관에­서마무리된다.

리조트에서는 제주 방언과 식재료에대한 설명을듣고토속음식을­만들어볼수있는쿠킹클­래스를 비롯해 골프장 카트 투어, 와인 클래스등투숙객대상 체험프로그램을다양하­게운영한다.

 ?? ??
 ?? ?? 알뜨르비행장.산방산과20여 기격납고가이색적인풍­광을연출한다.
알뜨르비행장.산방산과20여 기격납고가이색적인풍­광을연출한다.
 ?? ?? 동그란창문아래걸린 ‘판전(板殿)’ 액자.
동그란창문아래걸린 ‘판전(板殿)’ 액자.
 ?? ?? 빈공간에임옥상화백이­만든추사의흉상만을놓­아절제미를극대화했다.
빈공간에임옥상화백이­만든추사의흉상만을놓­아절제미를극대화했다.
 ?? ?? 롯데리조트 아트빌라스 전경. 10년 전 승효상을 비롯해 도미니크 페로, 겐고 구마 등 세계적 건축가들이설계에참여­했다.
롯데리조트 아트빌라스 전경. 10년 전 승효상을 비롯해 도미니크 페로, 겐고 구마 등 세계적 건축가들이설계에참여­했다.
 ?? ?? 미스터 밀크 공장. 승효상은 이를 백파진 프로젝트라고명명했다.
미스터 밀크 공장. 승효상은 이를 백파진 프로젝트라고명명했다.

Newspapers in Korean

Newspapers from Korea, Republ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