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승효상이들려주는‘터무니있는’제주이야기
시대증언하는땅이가진무늬‘터무니’일제강점기아픈역사제주유배생활김정희간결한삶닮은텅빈공간에둥그런창하나황무지개간목장에‘미스터밀크’공장수직과수평의조화
“일본인 작가시바료타로가쓴<탐라기행>을읽고 제주에대한이중적인생각을고치게 됐다.제주의풍광이 이국적이라고, 그래서흔히신혼여행지로혹은간혹가서놀다오는곳으로막연히동의해왔던잘못된생각을직시하게됐다” 저서<오래된. 것들은. 다.아름답다> 중에서오랜만에제주를찾은현대건축의거장승효상(이로재대표)과만나제주이야기를들었다.
그동안숱하게다녔던제주여행이었음에도제주의속살을제대로들여다볼생각도하지않아서였을까.
그동안생각해온제주는‘천혜의 자연’을 품은아름다운 섬, 사계절여행하기좋은곳정도에머물러있었다. 승효상과의만남은큰울림을안겼다. 비로소 깨달았다. 제주하면자연스레떠올랐던느낌이,사실은얕은감상에불과했다는것을.
◆피와눈물의역사를마주하다
제주가품은이국적인문화와온화한 기후, 다양한 볼거리·즐길 거리는 뭍 사람들의호기심을불러일으키기에충분하다.
발길닿는곳마다 펼쳐지는아름다운자연환경에 절로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제주는 그렇게우리나라제1관광지로자리잡았다.
하지만 제주의이국적인풍광 뒤에는 깊게스며든피와눈물의역사가가려져있다.승효상작가가 알뜨르 비행장을 제1 목적지로 삼은 것도제주가품은아픈역사를 잊어서도, 버려서도안된다는것을일깨워주기위함이었으리라.
“제주는바다건너가는고을이란뜻입니다.철저히 육지입장에서붙인 이름이죠.” 바다를 건너야닿을수있는,고립의섬이바로 제주다.
승효상은“제주는 우리에게성찰의기회를주는 땅”이라고 이야기했다. 제주를아름답다고말하는건이러한역사가고스란히제주땅에스며들어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는것이다.
그도그럴것이제주도는한국역사에서매우민감한 지리적 요충지였다. 일본군이제주를 침략전쟁의교두보로 활용했다. 그렇게제주는전투기의중간보급소가됐다.
알뜨르비행장이자리한대정지역은특히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강제노역과각종 수탈, 반공이데올로기에의한 희생을강요받았다.
일제가제주주민 5000명을 매일동원해만들었다는 크고 작은 격납고는 100여 년이지난 지금도알뜨르비행장에그흔적을고스란히드러내고 있고, 한국전쟁직후무고하게처형당한 제주주민132명유골을한데수습한공동묘지‘백할아버지한무덤’ 등도 남아우리선조가 그들의과욕에의해얼마나 무참히짓밟혔는지를 명백히보여주고있었다.
◆빈자의미학을실현한공간에서다
“많은 여행객이알뜨르비행장의신기한 모습을배경삼아연신사진만찍고 떠나죠.일제강점기와 4·3사건 등아픈역사를외면한 채 말이죠.이넓은들판에방치된거대한격납고 시설들, 그뒤에병풍처럼펼쳐진산방산과 푸른바다는세상어디에도없는이야기를담고 있어요. 이땅에깊이박힌속살과 자연을 제대로인식한다면거장의 멋진 미술작품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게되는것아니겠어요?”
승효상의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두 번째목적지인추사관으로 향했다. 추사관은 제주에서8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를 기리며만든미술관으로,승효상이설계를맡았다.
1984년유물전시관으로시작해2007년김정희유배지가사적으로승격하면서새로운건물이필요해졌고,승효상에게건축의뢰가들어갔다.
승효상은“추사관건축의뢰가들어왔는데,규모가 500평 넘었다. 우리나라 건축의아름다움은작은것들이옹기종기모여있는것이라생각해왔는데, 500평 규모 건물을 지어달라고 하니퍽고민이됐다”고 회고했다.
고민을끝낸승효상은모든 전시시설을 지하로 보내고 땅 위에는 ‘집 형태’만 남기기로 했고,그의기획의도에맞게건물이완성됐다.
건물을본주민들은“웬감자창고하나가들어섰다”고입을모았다.
하지만이이야기를들은승효상은“추사의삶을온전히이해한다면이렇게불리는 것은무척영광스러운일”이라고강조했다.
추사의성품처럼군더더기없고 깔끔하게지어졌다. 텅빈공간에둥근창하나만을 냈다. 창밖에는소나무두그루가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마치 ‘세한도’를 완성한듯보이는풍광에“기획의도였는지”를 물었지만승효상은“전혀아니다”고못박았다.
전시관에서는 다양한 전시품을 통해 추사의굴곡진 삶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최고의볼거리는그의글씨다. 위엄있는서체속에는그의학문뿐 아니라 개인의 삶이녹아 있다. 또 일본의추사 연구가인후지쓰카 지카시가 영인한 세한도한점과유배시절추사가외로움을달래기위해지인들에게쓴편지도감상할수있다.
추사의작품과탁본등을둘러보고위층추모공간인추사홀로향했다.
빈공간에임옥상화백이만든추사의흉상만덩그러니놓여 있었다. 극단적으로 절제된공간이퍽강렬했다.
추사관을나오기전,동그란창문아래걸린‘판전(板殿)’ 액자를바라보며그는이렇게이야기했다. “훌륭한문체를남겨온추사는말년에본인이처음쓴글씨체로돌아갔어요.인생이라는아름다운여행을끝내고다시소년으로돌아간거죠.”
전시관 옆에는 추사가 기거하던 집과 유배생활모습을복원한 추사적거지(秋史適居地)가 있었다.
한평남짓한비좁은모거리(별채)에머물며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비롯한 많은 서화를그렸으며, 제주 유생들에게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등많은업적을남겼으리라.
◆백파진프로젝트를완성하다
투어의마지막 목적지는 승효상이가장 최근제주에 설계한 ‘미스터밀크’ 공장이었다. 성이시돌목장에서생산하는우유를받아치즈등유제품을만드는공장이바로미스터밀크다.
성이시돌목장은 1954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선교사였던 맥그린치(P. J. Mcglinchey) 신부가황무지를 개간해만든 곳이다. 아일랜드 출신인맥그린치 신부는 제주도민을 돕기 위해 목장을짓고우유와육류를생산했다.
군용 막사처럼생긴 테시폰(Cteshphon)은 이란바그다드근처지역에서처음시작한건축양식이다.우리나라에서는제주도에서만찾아볼수있다. 특히이곳건축물은원형그대로잘보존돼있다.건축관련서적에도소개될정도다.
성이시돌목장과이를둘러싼배경이퍽이국적이어서인증사진을찍기위해많은이가찾는다.
승효상은 성이시돌목장측의뢰를받아공장을 설계했다. 승효상이건축한 미스터밀크 공장은 목장 밖에 있다. 승효상은 “성이시돌목장 처음으로외부업체와협업해짓는것인만큼작업이의미있었다”고 전했다.
승효상은프로젝트명을‘백파진’으로 정했다.승효상이 건축 프로젝트명을 ‘백파진’이라고이름붙인이유는백파가‘하얀 언덕’이라는뜻이있기때문이다.
금오름을 배경으로 하얀 파도를 내려다보는 성채다. 건물 역시 이름처럼 새하얀 색을 띤다. 공장은 오는 6월 말께부터운영될 예정이다.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요거트와 아이스크림,치즈 등 제작 과정을 관람하고, 유제품 만들기체험도할수 있다.
건축기행을 마치며그가 ‘건축’에 대해정의했다. “건축은 시대를 증언하고 장소를 증언합니다. 건축화작업이중요한이유이지요.땅이가진무늬, 그것을터무니라고 해요. 우리시대의무늬를붙여서새로운 터무니를 만들어후대에물려주는것이우리임무입니다.
터무니있는작업을해야하는 거죠. 터무니없는이상한건물을지어서사람을환각상태에빠뜨리는건나쁜 건축입니다.땅이야기를잘듣고이해해야좋은건축물이완성됩니다.”
◆수직과수평의조화를찾다
승효상이설계에참여한제주건축물중롯데리조트제주 아트빌라스도 있다. 고급 숙박시설인아트빌라스는올해개관10주년을 맞았다.
도미니크 페로, 겐고구마등세계적으로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건축 거장 5인이 빌라 설계에참여했다.
당시승효상 작가는아트빌라스 총괄 기획자로 활약했다. 건축가들이자신만의건축 세계관을담아각양각색의빌라공간을 만들어냈지만,이모든것이제주의경관을해치지않고자연스레녹아들었다. 승효상이설계한 숙소는수직과수평의조화가매력적인공간이었다.
롯데리조트는투숙객들을대상으로매주일요일 5시간 원데이프로그램 ‘승효상 기획건축투어’를운영중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승효상의제자인건축가 양현준이도슨트를맡아진행한다.
아트빌라스 단지 내 건축물에 대한 설명 후밖으로 나가 본격적인 건축기행을 시작한다. 승효상 건축가의작품인추사관을 시작으로알뜨르비행장을 거쳐안도다다오의건축물이있는본태박물관에서마무리된다.
리조트에서는 제주 방언과 식재료에대한 설명을듣고토속음식을만들어볼수있는쿠킹클래스를 비롯해 골프장 카트 투어, 와인 클래스등투숙객대상 체험프로그램을다양하게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