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U Business Daily

“상고허가제도입,대법원서변론하면재판­의질올라갈것”

前대법관

- 장한지기자hanzy­0209@

“대법원에서변론을하지­않는것이제일아쉽습니­다.”

판사와 법원장 그리고 대법관, 법원행정처장까지 34년이란 인생의절반을 법원에서보낸박일환전 대법관(71·사법연수원 5기)이지난달1일아주경제­와인터뷰하면서한 말이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는 법. 그는 2007년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에게무죄를 판결하며압수수색 과정에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면 증거로채택할수없다는‘위법수집증거배제원칙’을적용한 첫 판례를 남기며 법조 역사에 한 획을그었다. 또 음원 사이트 ‘소리바다’의 저작권 침해책임을인정하며음­원파일의무단유통을못­하도록하는유의미한판­결을내렸다.

무거운 법복만큼이나 30여년간 공정과 중립의무게를 양쪽 어깨에 짊어진 것일까. “다시 태어나도 판사가 될 것이냐”고 묻자 특유의 소탈한웃음을보이며고­개를 저었다. 판사는고립되고 또 고립될 수밖에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실체적 진실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끊임없이질­문하고, 실체가 희미하면머릿속에드는­의문과 의심을 법정에서해소하는 것이판사의일상.박 전대법관은 “방송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웃음) 이제는 내가 선택해서하는 생활이되니까좀자유로­워졌다”고한다.

판결로 세상을 변화시킨 박 전 대법관은 ‘1호 대법관 출신 유튜버’로서인생 2막을 열었다.법원 실무나 판례, 법적쟁점 등을 소개하며 법관 생활로 축적된경험과 지식을 사회에환원하고싶은이­유에서다.그가운영하는유튜브채­널‘차산선생법률상식’은 악플이없어이른바 ‘청정구역’이라 불리며유명세를 타기시작해현재구독자 수 10만명을 넘기고 실버버튼까지획득했다. 자신을청정구역에사는­가재라고칭하는구독자­들에게상당한애정이있­는듯그는모든댓글들을­읽고‘좋아요’를 꾹누른다.

재경법원과 대법원,법원행정처까지두루거­친박전대법관은법원을­나와법원을바라보며느­낀재판제도의현실에대­해침묵하지않았다. 심각한사건적체현상을­마주한우리대법원은상­고대상이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은 바로기각하는심리불속­행제도를 도입했다. 박전대법관은“사실대법원에서변론을­하지않는것이제일아쉽­다”며 “상고허가제 등을 도입해 대법원에서일부중요한­사건들에대해변론을하­게되면재판의질도올라­가고국민들의재판받을 권리가충분히보장되지­않겠냐는 것이내 생각”이라고제언했다.다음은박전대법관과의­일문일답.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슬기로운 생활법률> 책도내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법관 사이에서어떤말이오가­는가.

“글쎄.(웃음) 잘모르지만좀신기하다­고 한다.어떻게콘텐츠를꾸준히­올릴수 있는지. 판사는자유분방하게 살기 어려운데, 지금은 변호사도하면서주어진­업무를 내가 선택해서하는생활을 하니까 좀 자유롭다. 법관 때는 보는 눈도있고의식을안할래­야안할수가 없다. 만나는사람도 제한되고. 특히 옛날에 방송사 같은 데는근처도안가는데그­런데서오라고하니까가­도되고 좋다.(웃음)”

-다시태어나도판사를할 것인가.

“어떤 아버지를 둘지에따라조금달라지­겠지만(웃음) 일단로스쿨에가고, 판사는요즘바로될수는­없으니까.또로펌가서7~8년하다가판사를할까,한다면조금회의적이다.왜냐하면요즘 너무 좋은 직업이 많지 않은가. 판사는 고립된다는게누가만나­자고하면대부분은재판­과관련해서부탁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그런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는 거다. 인간관계가 소원해질수밖에없다. 그런데그걸해결할 방법도사실마땅치않다.

옛날에는 판례연구회를 하면반은 판사고 반은 변호사였다. 2000년 이후로는이제모임이판­사들 위주로 모인다. 판례에 대한 공부를 하는데판사들끼리만 모여공부하니까 그게현실과100% 맞을 수가 없는 거다. 변호사들도 있어야하는데지금은거­의모든연구회가다판사­위주로돼 있다. 판사, 교수, 변호사가다같이모여연­구해야 하는데지금 그렇지못하니까 법학 생태계여러가지영역이­파괴돼버리기도하는 거다.”

-대법원 사건 적체가 심각하다는 말이 나온다. 대법관이그실태를제대­로알것 같은데,실제로어떤가.

“제가 1년에 사건 7000~8000건 처리했었는데, 10년 뒤에 보니까 2만 건으로 늘었다.(웃음)미국도 옛날에 적체가 많아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상고허가제를 도입했다. 사건하나하나맞다틀리­다재판하면아무리우수­한 사람이라도 하루에 10건 처리못 한다. 그렇다 해서대법관 수를 늘리면 또 문제가 되는 것이 ‘판례 모순’이 발생한다. 선고 이유를 쓰는데대법관별로이유­가안맞는 거다.똑같은쟁점인데판사마­다 뉘앙스도 다르고 심지어유무죄를반대로 쓰는 등 의견을 통일할 수가 없다. 사람마다견해가다다른­데같은사건에대해쟁점­도많고판단도여러개있­으면맞다틀리다논쟁이­대법원에서또생기는거­다.

그래서대부분 항소심에맡기고 법률 충돌이생기는경우만골­라서대법원에서통일시­켜주는수밖에없지않으­냐는부분이국민적합의­가이뤄져야 한다. 대법원에서모든 사건에대해선고이유를­다쓰면곤란하다고해서­심리불속행제도가 도입됐다. 그런데이제 심리불속행이이뤄지니­까 변호인이나 재판 당사자들이나 선고 이유를충분히듣지못하­니까불만이많아지는거­다. 그런데법원은 적체된사건처리하느라­고 골머리 아프고, 4~5년째 지연되는 사건들이또 쌓이고악순환인거다.”

-하급심에서올라오는사­건들이하루에도수십건 되는데, 대법관입장에서파기환­송되는사건들은보통어­떤경우들인가.

“그건 해봐야지안다. 전체가 100건이라고 하면 ‘이건 심리불속행해도 되겠다’ 하는 사건들은 50건 정도다. 그건금방 골라낸다. 그런데남은 50건 중에서는법리적으로애­매한 것들이있다. ‘하급심 판결이 맞다’ 하는 건 80~90% 빨리빨리 골라내고 남은 사건에 집중을 해야 한다.그것이대법관의기술이­다.(웃음) 그비율을너무낮춰잡으­면나중에고생하게되는 거다. 처리안한사건들이산더­미처럼쌓이면‘아이고 이거큰일났구나’하는 거다.”

-그래서상고허가제를도­입해야한다는말들이법­원안팎에서나오고있는­것이아닌가.

“일반 판사는당사자든당사자 대리인이든 법정에서만나서대화를­하면서물어볼수가 있다.이것은어떻게 되나, 나는이렇게생각하는데­어떠냐, 내가 잘못 생각할 수도있고또 그들이잘

못말할 수도있고 그러면판단을고칠수 있다.재판하면서틀린건 수정, 수정하면서서서히진상­이드러나는 것이다. 100% 정확하게드러나지않을 수도있겠지만 최선을 다해서결론을 내게되는데,대법원은서면만 써낸다.

약간 그런 게 있다. 대법관은 서로 간에확인해가며재판하­는것과좀달라서두려움­이많다.대법원에서도 사실은 변론을 해야 한다. 법에는변론을 할 수 있다고 돼있는데시간이많이걸­리니까 어렵다고 한다. 재직 시절 전원합의체뿐만아니라 소부에서도 변론을 하자고 해서한두건 시범 삼아 해봤는데 하니까 반응은 좋았다.그런데하도 시간이많이걸리니까 못 하겠다고해서지금은 거의안 할 거다. 그래서그게제일좀 아쉽다.”

대법관1인당年2만건­처리,사건지연·적체악순환… “증원은대안아냐” 34년간대법·법원행정처등두루거쳐…‘대법관출신유튜버1호’인생2막10만명구독‘차산선생법률상식’실버버튼…다시태어나도판사?“글쎄요”

-미국이나 독일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 상고허가제를활용하고­있지않은가.

“미국은 대법원에서변론한다고 하면변호사도 굉장히영예로 생각한다. ‘대법원에서 변론할변호사다’ 아무나 할 수없는 구조다. 대법원 재판을 할 수 있는 변호사는 정해져 있다. 독일도1심, 2심, 3심변호사를 나눠 놨다. 다른 나라는‘어느 법원 소속 변호사’ 이렇게 표현한다. 예를들어 ‘서울중앙지법 변호사’ 하면 그 사람은 중앙지법사건만하는 거다. 그러면브로커나전관예­우같은문제가발생하지­않게된다.만약우리나라에서그렇­게하면당장아우성일거­다.

우리나라도 상고허가제 등을 도입해서 하급심에서많이추려내­고 남은 사건을 가지고 대법원에서변론을 하면재판 질이올라가고 국민의재판 받을 권리도 보장되면서또 대법원에대한신뢰도올­라가지않겠나,지금생각이그렇다.”

 ?? [유대길 기자 dbeorlf123@] ?? 박일환전대법관(법무법인바른고문변호­사)이지난4월 1일서울삼성동법무법­인바른사무실에서본지­와인터뷰하고있다.
[유대길 기자 dbeorlf123@] 박일환전대법관(법무법인바른고문변호­사)이지난4월 1일서울삼성동법무법­인바른사무실에서본지­와인터뷰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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