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허가제도입,대법원서변론하면재판의질올라갈것”
前대법관
“대법원에서변론을하지않는것이제일아쉽습니다.”
판사와 법원장 그리고 대법관, 법원행정처장까지 34년이란 인생의절반을 법원에서보낸박일환전 대법관(71·사법연수원 5기)이지난달1일아주경제와인터뷰하면서한 말이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는 법. 그는 2007년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에게무죄를 판결하며압수수색 과정에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면 증거로채택할수없다는‘위법수집증거배제원칙’을적용한 첫 판례를 남기며 법조 역사에 한 획을그었다. 또 음원 사이트 ‘소리바다’의 저작권 침해책임을인정하며음원파일의무단유통을못하도록하는유의미한판결을내렸다.
무거운 법복만큼이나 30여년간 공정과 중립의무게를 양쪽 어깨에 짊어진 것일까. “다시 태어나도 판사가 될 것이냐”고 묻자 특유의 소탈한웃음을보이며고개를 저었다. 판사는고립되고 또 고립될 수밖에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실체적 진실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끊임없이질문하고, 실체가 희미하면머릿속에드는의문과 의심을 법정에서해소하는 것이판사의일상.박 전대법관은 “방송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웃음) 이제는 내가 선택해서하는 생활이되니까좀자유로워졌다”고한다.
판결로 세상을 변화시킨 박 전 대법관은 ‘1호 대법관 출신 유튜버’로서인생 2막을 열었다.법원 실무나 판례, 법적쟁점 등을 소개하며 법관 생활로 축적된경험과 지식을 사회에환원하고싶은이유에서다.그가운영하는유튜브채널‘차산선생법률상식’은 악플이없어이른바 ‘청정구역’이라 불리며유명세를 타기시작해현재구독자 수 10만명을 넘기고 실버버튼까지획득했다. 자신을청정구역에사는가재라고칭하는구독자들에게상당한애정이있는듯그는모든댓글들을읽고‘좋아요’를 꾹누른다.
재경법원과 대법원,법원행정처까지두루거친박전대법관은법원을나와법원을바라보며느낀재판제도의현실에대해침묵하지않았다. 심각한사건적체현상을마주한우리대법원은상고대상이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은 바로기각하는심리불속행제도를 도입했다. 박전대법관은“사실대법원에서변론을하지않는것이제일아쉽다”며 “상고허가제 등을 도입해 대법원에서일부중요한사건들에대해변론을하게되면재판의질도올라가고국민들의재판받을 권리가충분히보장되지않겠냐는 것이내 생각”이라고제언했다.다음은박전대법관과의일문일답.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슬기로운 생활법률> 책도내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법관 사이에서어떤말이오가는가.
“글쎄.(웃음) 잘모르지만좀신기하다고 한다.어떻게콘텐츠를꾸준히올릴수 있는지. 판사는자유분방하게 살기 어려운데, 지금은 변호사도하면서주어진업무를 내가 선택해서하는생활을 하니까 좀 자유롭다. 법관 때는 보는 눈도있고의식을안할래야안할수가 없다. 만나는사람도 제한되고. 특히 옛날에 방송사 같은 데는근처도안가는데그런데서오라고하니까가도되고 좋다.(웃음)”
-다시태어나도판사를할 것인가.
“어떤 아버지를 둘지에따라조금달라지겠지만(웃음) 일단로스쿨에가고, 판사는요즘바로될수는없으니까.또로펌가서7~8년하다가판사를할까,한다면조금회의적이다.왜냐하면요즘 너무 좋은 직업이 많지 않은가. 판사는 고립된다는게누가만나자고하면대부분은재판과관련해서부탁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그런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는 거다. 인간관계가 소원해질수밖에없다. 그런데그걸해결할 방법도사실마땅치않다.
옛날에는 판례연구회를 하면반은 판사고 반은 변호사였다. 2000년 이후로는이제모임이판사들 위주로 모인다. 판례에 대한 공부를 하는데판사들끼리만 모여공부하니까 그게현실과100% 맞을 수가 없는 거다. 변호사들도 있어야하는데지금은거의모든연구회가다판사위주로돼 있다. 판사, 교수, 변호사가다같이모여연구해야 하는데지금 그렇지못하니까 법학 생태계여러가지영역이파괴돼버리기도하는 거다.”
-대법원 사건 적체가 심각하다는 말이 나온다. 대법관이그실태를제대로알것 같은데,실제로어떤가.
“제가 1년에 사건 7000~8000건 처리했었는데, 10년 뒤에 보니까 2만 건으로 늘었다.(웃음)미국도 옛날에 적체가 많아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상고허가제를 도입했다. 사건하나하나맞다틀리다재판하면아무리우수한 사람이라도 하루에 10건 처리못 한다. 그렇다 해서대법관 수를 늘리면 또 문제가 되는 것이 ‘판례 모순’이 발생한다. 선고 이유를 쓰는데대법관별로이유가안맞는 거다.똑같은쟁점인데판사마다 뉘앙스도 다르고 심지어유무죄를반대로 쓰는 등 의견을 통일할 수가 없다. 사람마다견해가다다른데같은사건에대해쟁점도많고판단도여러개있으면맞다틀리다논쟁이대법원에서또생기는거다.
그래서대부분 항소심에맡기고 법률 충돌이생기는경우만골라서대법원에서통일시켜주는수밖에없지않으냐는부분이국민적합의가이뤄져야 한다. 대법원에서모든 사건에대해선고이유를다쓰면곤란하다고해서심리불속행제도가 도입됐다. 그런데이제 심리불속행이이뤄지니까 변호인이나 재판 당사자들이나 선고 이유를충분히듣지못하니까불만이많아지는거다. 그런데법원은 적체된사건처리하느라고 골머리 아프고, 4~5년째 지연되는 사건들이또 쌓이고악순환인거다.”
-하급심에서올라오는사건들이하루에도수십건 되는데, 대법관입장에서파기환송되는사건들은보통어떤경우들인가.
“그건 해봐야지안다. 전체가 100건이라고 하면 ‘이건 심리불속행해도 되겠다’ 하는 사건들은 50건 정도다. 그건금방 골라낸다. 그런데남은 50건 중에서는법리적으로애매한 것들이있다. ‘하급심 판결이 맞다’ 하는 건 80~90% 빨리빨리 골라내고 남은 사건에 집중을 해야 한다.그것이대법관의기술이다.(웃음) 그비율을너무낮춰잡으면나중에고생하게되는 거다. 처리안한사건들이산더미처럼쌓이면‘아이고 이거큰일났구나’하는 거다.”
-그래서상고허가제를도입해야한다는말들이법원안팎에서나오고있는것이아닌가.
“일반 판사는당사자든당사자 대리인이든 법정에서만나서대화를하면서물어볼수가 있다.이것은어떻게 되나, 나는이렇게생각하는데어떠냐, 내가 잘못 생각할 수도있고또 그들이잘
못말할 수도있고 그러면판단을고칠수 있다.재판하면서틀린건 수정, 수정하면서서서히진상이드러나는 것이다. 100% 정확하게드러나지않을 수도있겠지만 최선을 다해서결론을 내게되는데,대법원은서면만 써낸다.
약간 그런 게 있다. 대법관은 서로 간에확인해가며재판하는것과좀달라서두려움이많다.대법원에서도 사실은 변론을 해야 한다. 법에는변론을 할 수 있다고 돼있는데시간이많이걸리니까 어렵다고 한다. 재직 시절 전원합의체뿐만아니라 소부에서도 변론을 하자고 해서한두건 시범 삼아 해봤는데 하니까 반응은 좋았다.그런데하도 시간이많이걸리니까 못 하겠다고해서지금은 거의안 할 거다. 그래서그게제일좀 아쉽다.”
대법관1인당年2만건처리,사건지연·적체악순환… “증원은대안아냐” 34년간대법·법원행정처등두루거쳐…‘대법관출신유튜버1호’인생2막10만명구독‘차산선생법률상식’실버버튼…다시태어나도판사?“글쎄요”
-미국이나 독일 등 대부분 선진국에서 상고허가제를활용하고있지않은가.
“미국은 대법원에서변론한다고 하면변호사도 굉장히영예로 생각한다. ‘대법원에서 변론할변호사다’ 아무나 할 수없는 구조다. 대법원 재판을 할 수 있는 변호사는 정해져 있다. 독일도1심, 2심, 3심변호사를 나눠 놨다. 다른 나라는‘어느 법원 소속 변호사’ 이렇게 표현한다. 예를들어 ‘서울중앙지법 변호사’ 하면 그 사람은 중앙지법사건만하는 거다. 그러면브로커나전관예우같은문제가발생하지않게된다.만약우리나라에서그렇게하면당장아우성일거다.
우리나라도 상고허가제 등을 도입해서 하급심에서많이추려내고 남은 사건을 가지고 대법원에서변론을 하면재판 질이올라가고 국민의재판 받을 권리도 보장되면서또 대법원에대한신뢰도올라가지않겠나,지금생각이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