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폐허에서‘금융강국의길’을찾아본다
2022년 상반기세계금융시장은 검은 백조, 회색코뿔소, 방 안의코끼리등 경제학자가 경계하는 동물로가득하다. 통화 긴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제로코로나 정책, 원자재가격과물가 급등, 자산가격급락, 스태그플레이션,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그야말로 세계금융시장은 바글바글한 동물 잔치다. 동물 비명에‘다른 대안이 없어(TINA)’ ’나만 기회를 놓치면안돼(FOMO)‘라는 저가 매수 투기심리가 꺾이며, 나스닥은 2022년 연초 이후 27% 이상 하락해완전히베어마켓으로진입했다.그런데5월초암울한동물농장에검은백조한마리가더날아들었다. 바로테라라는이름의스테이블코인이붕괴한 사건이다.
사기인가? 금융기술의 실패인가?
암호화폐(또는 가상자산)시장은시가총액이 2021년말 2.4조 달러에도달하며 2020년 이후 1800%에 달하는폭발적상승세를기록했다.암호화폐는 2008년 비트코인탄생이후변동성과불법거래로악명이높아제도권진입이어려웠으나지난해테슬라의기업 투자,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 상장, 가상자산 펀드 등장, 연기금 투자 개시등으로 준금융 시스템 편입에 대한 정부의관심이높아졌다. 암호화폐의성장 배경에는 바로스테이블코인이있었다.
스테이블 코인은 교환가치를 고정해암호화폐의가치변동성을제거한 코인이다. 이를통해블록체인을활용한 가상세계의 금융망에서 거래 속도와 비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탈중앙적특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상자산 투자자가 변동성이큰 암호화폐 투자에서 거래 수단의가격 변동성을 제거할 목적으로이용하며기존암호화폐생태계에부족했던 화폐의거래적 동기, 예비적 동기를 충족한다. 한편 2021년 말 암호화폐 시가총액 상위 10개 중 3개가스테이블 코인이었고, 7위인스테이블코인이바로테라였다.
그런데테라가 5월 13일 전후단며칠만에완벽하게무너졌다. 붕괴직전까지착오 없이1달러 가치를 유지하던테라는 5월 21일 5.7센트를 기록했고테라시가총액은 5월 9일 186억 달러에서 5월 21일 약 6억 달러로주저앉았다. 한편테라는루나라는암호화폐와 재정거래(arbitrage)를 통해1달러가치를유지하는독특한가치안정화구조를가진알고리듬스테이블 코인이다. 테라사태로루나코인의시가총액은 4월 4일 최고 410억달러에서 5월 21일 약 8억 달러로 쪼그라들었고 안타깝게많은피해자가 발생했다.관심이집중하자최근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부활시킨 서울남부지검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제1호 사건으로 테라를 지명한 것으로알려졌다.
그러나 암호화폐를 둘러싼 세계금융 변화 속에테라의몰락은단순하게물리적피해를넘어좀더중요한경제적의미를찾을수 있다.암호화폐는본질에서국가와민간의 시뇨리지(seigniorage) 다툼이다. 시뇨리지는명목화폐를발행하는국가의이익을 말한다. 국가는종이에불과한 지폐에법률로 가치를 부여하고 국민에게교환을강제한다.화폐발행의담보는국민이낼미래세금이다. 법적근거가없다면명목지폐야말로완벽한돌려막기폰지사기의원형에가깝다. 1971년 미국이달러의금태환을포기한이후사실주요국화폐가치는정부가법으로만들어낸허상에불과하다.한편국가를지배하는정치권력은권력유지를위해과다한지폐발행동기를 가진다. 이때문에인플레이션이지속하며화폐가치는불안정하고경제취약국또는경제적약자는항상 금융위기공포에 시달린다. 암호화폐는 명목화폐의부조리에서벗어나화폐주조·유통 권한을민간자율적의사결정에분산하자는정치적운동이다. 그러나테라의몰락은암호화폐생태계의신뢰를 붕괴하며정부가감독과통제를강화할빌미를주고말았다.
또한현실세계가 메타버스로디지털전환을진행하면서 CBDC와 함께민간 암호화폐는 메타버스 세계의중요한금융수단으로자리매김할 것이다. 뉴욕과런던금융시장 사례에서보듯이기축통화를 선점하는 것은해당국가에막대한부가가치를 약속한다. 같은원리로메타버스 시대 기축통화인 스테이블 코인의 주도권을선점하는것은대단히중요하다.이런이유로단 2년만에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한국 젊은이가 개발한 스테이블 코인, 테라가 세계 시장을 석권한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천재들이 다투는 수학과 물리학, 공학의세계인 미래금융산업에서한국인의가능성을 목격했기때문이다.
메타버스시대기축통화스테이블코인
골드만 삭스는 5월 16일 ’알고리듬 스테이블 코인의 경제학’이라는 보고서에서 테러의 붕괴 원인으로 SDR, 달러등주요화폐와의고정환율체계를지적했다. 과거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한 국가는고정환율유지에막대한비용이들었고환차익을노리는투기세력이멕시코페소 위기, 동아시아 외환위기등을초래했는데, 테라가 이러한 상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5월 8일 원인을 알 수 없는 공격으로 테라의 1달러 환율이 붕괴했으나 시스템에 의해환율이회복하지않자 140억 달러의테라가 유치돼있던 자체 저축은행 시스템(앵커 프로토콜)에서 테라 대량 인출이발생하며환율은 연쇄 하락했다. 시스템붕괴공포로 루나 가격도 폭락했다. 1998년 천재금융과학자들이만들었으나 러시아 모라토리엄선언으로 파산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처럼 테라는 급작스러운 외생변수 변동이라는 꼬리위험을 견디지못했다. 지난 수년간 6개의 알고리듬 스테이블 코인이이러한 외부 공격을 견디지못하고 결국 화폐나 타 암호화폐로가치를담보하는스테이블코인으로전환했다.
마녀사냥프레임보다실패연구를
라임, 옵티머스등사모펀드사태와는달리스테이블코인, 테라는설계와운영프로토콜을비트코인처럼백서를통해상세하고투명하게공개하고있다. 게다가테라는 블록체인 시스템 참여자들이 커뮤니티에서 주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민주적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테라가 보여준 단기간의성공은 경쟁자를양산했을 것이고 재산상 피해를 본 사람의많은 지적과 원망도쏟아지고 있다. 테라 경영진에게범죄혐의가있다면당연히명백히규명하고 보상이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테라의실패를무지한가운데무턱대고마녀사냥프레임을 씌워처벌하는 사태로마무리하는것보다한국젊은금융공학자들이테라가쌓아올린금융기술력을재평가하고 분석하며, 실수를 보완하는 기회가 주어져한국이금융강국으로성장하는초석으로활용하기를바란다.
▷고려대경제학석사▷하나금융투자상무▷금융투자분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