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486≲586…불사조가되겠다는‘86’정치인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후보가선거캠프사무실을정리하면서SNS에글을남겼다. “오늘 선거캠프 사무실 정리하는 일을 도왔습니다.캠프빌딩이름이 휘닉스(phoenix, 불사조)입니다.”
‘불사조’(不死鳥)는 영원히죽지않는다는 전설의새로알려져있다. 그새는죽음과부활을반복하는신령스러움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니송 전 후보가불사조 얘기를 꺼낸 것은, 지금은 죽지만 다시 살아나겠다는의지를드러낸것으로받아들이면틀리지않을것 같다. 그러면서도 송 전후보는 당 안팎에서제기되는 선거패배책임론에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않았다. 지금 송 전 후보는 책임론을 인정하고 용퇴할 의사가없음을읽을수있었다.
이미 6.1 지방선거와중에민주당에서는86 용퇴론을둘러싼 심각한갈등이있었다. 박지현공동비대위원장이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당을 팬덤정당이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며 ‘86세대의 용퇴’ 등을요구하고 나서면서였다. 하지만 당사자들의반응은 냉담했다.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은 “이게 지도부인가”라며책상을 ‘쾅’ 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박홍근원내대표는 “그것 자체가 내부에분란이있을수있지않겠나”라고 일축했다. 우상호의원은 “특정세대전체를통으로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정합성도 떨어지고 좀 불합리한얘기”라고부정적인의견을밝혔다.
박지현 위원장이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이돌출적이었던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당안에있는실권세력을 향해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애당초 불편할 수밖에없는 일이다. 하지만 민심의눈 높이에서이미 86 용퇴론은 상식에가까울정도로공감대가 형성되어있는문제이다. 그런 사안에 대해 26세의 정치 신인이 입을열고, 이제는 60세가 된 86 당사자들이책상을치며화내는 광경은 마치한편의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과연 86 정치인들은 선거에서연패를 당하면서도 책상을치고불사조를 말하면서까지,물러나서는안될존재들인가.
86 정치인들이정치를본격적으로시작한것은 2000년대 초였다. 당시야당을 이끌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노장청(老壯靑)의 조화를 통한 집권전략 차원에서 ‘젊은 피’ 수혈에 적극 나섰다. 송 전 후보 이외에도 윤호중전비대위원장,박홍근원내대표등민주당의지도부급인물들모두이무렵에정치에뛰어든 경우들이다. 4선의 이인영·우상호·김태년, 3선의 홍익표·서영교 의원등도 학생운동 출신의 민주당 중진 의원들이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초선 당선자 중 학생운동이나민주화운동 운동 경력이있는 당선자는 68명 중 15명(22.1%)에 달하는것으로나타났다.
이들은정치를시작할때 ‘386’이라고 불리웠다. 당시이들의나이가 30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던호칭이세월이지나면서 486, 586으로 불리더니,이제는그냥 ‘86’이라고 불리운다. 어느덧이들의나이도 60대에 들어서기시작했기때문이다.
이십수년 전, 30대 나이의86들이 정치를 시작할때만 해도 이들의 시대적 소명은 분명했다. 민주화운동에앞장섰던 세력이다시 정치개혁의 선도세력이된다는 것이그런 소명이었다. 하지만 막상 86들이 과연개혁의기수가 되어왔던가에대해서는평가가엇갈릴수밖에없다.그들이야당을했던시절에도정치개혁보다는, 권력의우산아래에서자기기득권확보에매달렸다는시선을받은것이사실이다.더구나자신들이정권을잡고 그 중심세력이된이후부터는 민주주의를 후진시
키는 중심세력이되었다는 비판까지받게 되었다. 민주당에게선거3연패를 안겨준민심이반을초래한입법폭주와 내로남불의주인공들이바로 86 그룹 정치인들이었다는사실은매우그로테스크한역사적장면이다. 그시절 민주화 투쟁에앞장섰던 정치인들이막상 권력이되고나니민주주의쯤은훼손시켜도된다는태연한모습을우리는지난몇년 간, 그리고 대선이끝난이후에도 지켜봐왔다. 이런 마당에아직도 86들이 굳이불사조까지되어끈질기게정치를 해야 할이유가 무엇인지모르겠다.
송영길 전 후보가 말한 피닉스는 이집트 신화의 불사조인베누에서유래한다.아라비아에살았던이새는500년마다 이집트에있는 사원으로 날아가 제단에자기를 불태웠다. 사람들이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사조는 화염을 뚫고 솟아올랐다. 불사조는 불에타죽은 자신의 재에서 부활하여 50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송영길전후보말고도불사조를내세웠던정치인들은 많았다. 과거정당을 옮겨다니며당선과 낙선을 반복했던이인제전의원도 ‘피닉제’라는 별칭까지사용하며자신이불사조임을 내세웠다. 공직선거법위반으로지난해에의원직을상실한이상직전의원도자신은불사조라며“어떻게살아나는지보여주겠다”고 말했다고한다.
그런데 걸핏하면 불사조임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이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신화 속에 나오는 불사조는자기희생적인 존재였고, 그 부활은 죽음에대한 삶의승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우리정치인들의경우는자기희생이아닌자기기득권을 지키려는불사조들이니, 신화 속의 불사조와는 그 의미가 정반대이다.그리고사람들이이제는죽을때라고했는데도굳이다시 살아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삶의승리와는 아무인연이없는집착과욕심일 뿐이다. 그러니불사조가되겠다는 86 정치인들의다짐은 단지기득권을 내려놓지못하겠다는 고백에불과한 것이다. 송 전후보가 ‘휘닉스’ 얘기를 꺼냈다 한들, 어디그만을향해서하는얘기겠는가. 86 정치인들모두에대한얘기이다.이제는86들이정치를 계속해야만 할 시대적소명이무엇인지알기어렵다. 그에대해당사자들도 더이상 설명해줄 수 있는것이없어보인다. 86들에게남아있는마지막소명이있다면아마도자신들의퇴장이아닐까.
한때는젊은피소리들어…이젠자기희생·반성없이자리지키는철밥통으로시끄러웠던‘용퇴론’에도아랑곳않는그들에게남은정치적소명은무엇인가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경희대 사이버대학교NGO학과외래교수▷한림대사회학과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