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가살아난다…일본도살아날까?
지금으로부터33년 전인 1989년 일본소니가미국컬럼비아영화사를 34억달러에인수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이미국 문화산업을 대표하는기업을품어버린 것이다. 이일이미국은물론세계를놀라게한것은당시욱일승천의기세로 뻗어가던일본 경제가 마침내미국 정신을 상징하는기업까지점령해버린 사건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미국에선“일본이 미국의혼까지사들이냐”는한탄이쏟아졌다.일본도쿄땅을팔면미국전역을살수있다는이야기가나올 때였다.일본은과연미국을능가하는세계제1의경제강국이될수있을것인지를놓고논쟁이벌어지기도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거기까지가 일본 경제의절정이자 소니의절정기였다. 이후 일본은 이른바 버블경제가 폭발하면서잃어버린 10년, 20년, 30년 등 끝없는 침체의시대로 빠져들게 된다. 일본 경제와 함께절정기를구가하던소니가이번에는 묘하게도일본경제몰락의상징적존재가 되고말았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던전자왕국 소니는 한국의삼성과 LG의 공세에맥없이무너지면서쇠락의길을 걷게된 것이다. 매출과 주가 하락, 적자의늪에허덕였다. 2003년 4월 25일부터이틀사이에주가가 27%폭락하는‘소니 쇼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때소니의몰락을두고많은이들은 “디지털시대변화에제대로적응하지못했다”는한마디로요약하려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지난달 10일 소니가발표한작년한해실적은소니의부활을 더는 의심할 수 없게 만들었다(일본 정부와 기업들의회계연도는매년4월1일부터이듬해3월 31일까지다). 소니의영업이익은 1조2023억엔(약 11조5000억원), 매출은 9조9215억엔(약 93조원)으로 둘다사상최고치였다.일본기업의영업이익이1조엔을 넘은것은도요타에이어소니가두 번째였다. 소니가 도요타와 함께일본을 대표하는 양대기업의 자리를되찾은것이다.
소니의부활을보면서일본경제회생의희망을이야기하는사람들도나온다.아무리한나라를대표하는기업일지라도한기업의흥망성쇠를국가의그것과 연결짓는 것은 성급한일일 것이다. 그러나 소니의화려한 부활이일시적현상이아니라수십년에걸친말그대로살과뼈를깎는환골탈태의결과임을안다면거기서일본경제의회생가능성을찾는것도그렇게무리한일만은아닐것이다.사실상 지주회사 체제가 됐다. 전자사업부문은 더이상 소니의핵심이아니게 됐고, 그저6개사업회사가운데하나로 내려앉았다. 게다가전자사업부문은덩치에비해이익을 못낸다는눈총도받아야 했다. 2020년 소니그룹 전체영업이익에서전자는 13.4%에 불과했지만 게임은 35.7%를 차지했다. 음악, 반도체,금융분야도매출에서는전자보다적었지만영업이익은전자를앞질렀다.
사정이이러니이제소니를 더는 전자회사라고 부를 수없게된 것이다.특히 게임, 음악, 영화 사업의성장이두드러졌다. 컬럼비아영화사를인수해설립한 소니픽처스가 작년말 출시한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은 글로벌시장에서무려17억 달러(약 2조1300억원)의 기록적인흥행실적을 냈다.소니그룹은자율주행전기자동차분야에도도전장을 냈다. 미래자동차는단순한이동수단이아니라이동중휴식과즐거움을얻는공간으로변신할것이니엔터테인먼트를 주업종으로 삼게된소니가이를 외면할수는없을것이다.
소니의사업재편은주식시장에서도높은평가를 받는다. 2021년 3월 말시가총액은 14조3688억엔으로 1년 사이에두배가까이 늘었다. 시가총액순위도일본내4위에서도요타에이어2위로 올라섰다. 지난 3월국제신용평가사인무디스는소니그룹신용등급을 ‘Baa1’에서 ‘A3’로 한단계올렸다.소니신용등급이A3로 복귀한것은약 10년 만이다.구조조정끝에이제성장안정화단계로접어들었음을인정해준것이다.
소니부활의주역으로 일본 언론의주목을 받는 사람은 현재소니그룹CEO(최고경영자)인 요시다 겐이치로 회장이다. 그러나 침몰하던소니를구해내부활의토대를만든사람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소니를이끌었던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전 회장(현 소니시니어어드바이저)이라고 할 수있다.
히라이는 2012년 소니역사상 최연소(52세) CEO에 취임했다. 당시소니는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소니대표 상품인 컬러TV는 8년 연속 적자였다. ‘소니 바이오’라는 브랜드로유명했던 PC 부문도적자로돌아섰고,소니의최후보루로여겨지던게임기부문도‘플레이스테이션3’실패로골칫거리가되어있었다.소니의생사가불투명한상황이었다.
히라이는 PC 사업을 매각했다. TV 부문에서는 프리미엄라인만을 남겨두고 모두 정리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컴퓨터가 아닌 게임기로 보고 고급사양을 지양하고 가격경쟁력을 갖추게 했다. 생존을 위해그가 선택한 길은 제조업인 전자사업비중을 낮추는 대신 서비스업중심의엔터테인먼트기업으로변신하는 것이었다. 히라이의과감한구조조정에사내반발이엄청났고, 퇴사한 선배들까지찾아와 항의했지만 그는 뜻을 꺾지 않았다. 현재의나락에도불구하고과거의성공에취해있던소니는변화에강력히저항했다. 무엇보다 기술 하나만은 자신들이세계최고라는 자부심에가득차있던엔지니어들의아집은철옹성이었다.
히라이회장은소니의평사원으로입사해CEO까지올랐지만주류인전자 부문이아니라 비주류인 게임과 음악 부문에서주로 성장했다. 그러니전자부문의저항은더욱 거셌다. 히라이는은행원이었던아버지를따라어린시절부터미국과캐나다등지에서생활했다. 그에게는 “겉모습만 일본인이지사실은 미국인과 다름없다”는 평도 따랐다. 그게그의 힘이었다. 종신고용과연공서열을중시하는일본기업문화에익숙했다면소니를구조조정의수술대에올려놓기어려웠을것이다.
히라이취임5년 만인 2017년 소니는영업수익 7349억엔을 올렸다. 전년보다 2.5배나 늘어난 것이다. 소니의회생은 일본 경제계와 언론의환호를받았다. 길고깊은침체의늪에빠진일본경제에한줄기희망의빛이되기에충분했다.
그러나 히라이는 이듬해인 2018년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취임 6년만에, 58세 나이에, 그것도 한창 주목받는 시점에 2선으로 물러난 것이다.그가후임으로지명한사람이현CEO인요시다 겐이치로다.요시다는재정전문가로서히라이의소니구조조정을뒷받침해온인물이다.
소니부활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일본 출판계를 달구고 있다. 나름대로비결을 분석한 책들도 쏟아진다. 부활의주인공 히라이회장이직접쓴 책도 작년 7월 ‘소니 재생-변혁을 이뤄낸 이단의 리더십’이라는 제목을 달고나왔다. ‘이단(異端)의리더십’은히라이의경영을상징하는말이다.
첫 페이지첫문장에서그는 ‘어떻게 소니를 부활시켰나’라는 물음에이렇게답한다.
“사업의 선택과 집중, 상품 전략 개선, 비용구조 개혁등 다양한 분석이나오지만핵심은그게아니다.자신감을상실해실력을발휘하지못하게된사원들의마음 저깊은 곳에숨겨져있는 정열의마그마를 다시끓어오르게해팀으로서힘을최대한끌어낸것이비결이다.”
일본경제가아무리비틀거려도일본은지금최고의취업률을기록할만큼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업이살아있고그 기업들이생존과 부활을위한사투를벌이고있기때문이다.고령화와저출산으로경제체질은여전히어둡지만 세계최고의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일본 기업들이몸부림치고있는한일본경제의앞날이어둡지만은않다는것을소니가웅변하고있는것은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