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U Business Daily

‘동맹열차탑승’바른결정이나내릴곳은­우리가정해야

-

윤석열 대통령이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정상회의에나토파트너­국가자격으로 참석한다. 한국대통령이이회의에­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다. 취임후첫해외순방이고, 대면(對面)다자외교무대데뷔이기­도 하다. 나토파트너국은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등나토 훈련에참여하거나 정보교환 등을통해협력관계를 맺은나라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동맹국과 파트너국가 간 회의세션에참석하는한­편여러정상들과양자회­담도할 것”이라면서“가치와 규범을토대로 한 국제질서를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우리의역할을­확대할중요한계기될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와 글을 정리하던 중 김기수 전 세종연구소 국제정치연구실장이 쓴 <21세기 대한민국 대외전략-낭만적 평화란 없다>(2012년)란 책자에 눈길이 갔다. 출간된 지도 꽤 됐고, 100쪽이 채안 되는 분량이지만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북방정책 관점에서 짚어볼 단초가 됐기때문이다.이있어야한다고생각했­다”는 것이다.

메테르니히는 독일통일의주역 비스마르크(1815∽1898)와 함께 구미(歐美) 외교사에서전설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이념적으로는 보수 반동이었지만나폴레옹­전쟁이끝난후세력균형­에기초한유럽협조 체제(Concert of Europe)를 구축함으로써유럽에1­00년 평화시대를연 주인공이다. 저자는북방정책이메테­르니히의전략과어느정­도유사하다고암시한다.

북방정책에대해당시북­한이느꼈던압박감은실­로 컸다. 1980년대후반과 1990년대 초반 자고나면동유럽공산권­국가들이우수수무너지­던때였다. 당시필자는 통일부 출입 기자였다. 김일성주석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됐을때안도의숨을­쉬었다고 한다. 일설에의하면김일성은“(기본합의서로) 천군만마를얻은 것 같다”는 말도 했다고 들었다. 당시김주석은 “남북 관계는누가누구에게먹­히는관계가 되어서는안 된다”(1991년 1월 북한 신년사)고 했는데이는흡수 통일에대한 북의우려를 처음표명한 것이었다.

미국 측 전문가들도일제히 반겼다. 에번스 리비어전국무부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윤 대통령이 NATO 정상회의에참석하기로 함으로써북한에강력한 신호를 보냈다”면서“한국은 윤 대통령취임후불과 몇주만에국제사회에대­한영향력과파급력이최­상위수준으로올라섰다”고평가했다.

패트릭크로닌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석좌교수는 “북한이 핵무기를개발해 한·미 동맹에대해우위에서려­고 시도한다면한국이매우­강력한 파트너들과 함께 국제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보면서 그러한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6월 11일 미국의소리 방송·VOA)

한·나토 양자 관계차원에서긍정적인 발전이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있다. 김정섭은 “나토가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등핵심가치를­공유하는서방 선진국들의안보공동체­라는관점에서우리의안­보 개념과 한국군의안보역량을현­대화하는거시적차원에­서협력에실익이있을 것”으로 보았다.(김정섭, <외교상상력–지나간백년다가올 미래>, MID)

물론다른시각도 있다. “대미편중으로 미·중 사이에서선택을강요받­는상황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한 당사자로서분단의구조­적현실앞에서동맹열차­탑승은불가피할 뿐아니라 최선의선택일 수 있다. 백번양보해도 한·미 관계가 이완돼 “한·미 연합훈련을컴퓨터게임­으로 축소·전락시켰다”는 말을 들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없는일이다.

 ?? ?? 윤석열대통령
윤석열대통령

Newspapers in Korean

Newspapers from Korea, Republ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