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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조경가정영선이­땅에쓴‘한편의시’

국립현대미술관‘정영선: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전시

- 전성민기자ball@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수있고깊은울림을줄­수있습니다.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듯,우리가섬세히손질하고­쓰다듬고가꾸는정원들­이모든이들에게영감의­원천이되고 치유와 회복의순간이되길 바랍니다.”

1941년생으로 한국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작업은 시를 닮았다. 자연과 더불어사는 삶을 추구하는 그의조경은‘꾸미지않은듯한 꾸밈’이특징이다.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것을 위하여’가 식목일인지난 5일 서울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개막했다.

정영선이지금도 땅에쓰고 있는 ‘한편의 시’를 만날 수 있다. 그의 삶과 작업을 되짚어 보며, 1970년대 대학원생시절부터 현재 진행형인 프로젝트까지반세기동­안 펼쳐온 조경활동을 총망라하는 전시다. 60여개크고작은프로­젝트에대한조경가의아­카이브대부분이최초로 공개되며 파스텔, 연필, 수채화 그림, 청사진, 설계도면, 모형, 사진,영상 등 각종 기록자료 500여 점을 한자리에서조망한다.꾸미지않은듯한꾸밈의­미학반세기에걸친대표­작500여점우리고유­지형살리는데노력

정영선은반세기동안자­신만의길을묵묵히걸어­왔다. 1961년 집안의반대를무릅쓰고­서울대농과대학에입학­한그는 1973년 서울대환경대학원이생­기자1회 신입생으로 등록했다. 뒤이어 1980년국내에서여­성으로는최초로국토개­발기술사자격까지취득­했다.

1987년 조경설계업체서안을 설립했고, 지금까지약 40년 동안조경가로활발하게­활동해왔다. 2023년에는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조경가에게 수여하는최고의영예상­인제프리젤리코상을국­내최초로수상했다.

정영선은 지난 4일 전시를 앞두고 열린 간담회에서“조경은 그저건축 뒤에있는 분야로만 알려져 왔다”며 “선배인제가 조경을 주제로 전시해야 후학에길이 마련되고, 우리분야도 더알려지겠다고생각해­기꺼이전시에응하게됐­다”고 말했다.

박목월시인과의특별한­인연도밝혔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시도좋아했는데,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웠던 박 선생님은 오늘의 저를 만들어주신 분이다.그만큼아껴주셨다.새로운시집이나오면 제가 다니는 학교로 보내주셨다”며“작품이 잘 안 풀릴 때는 박 선생님의시를읽는다”고 설명했다.

전시제목‘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는 정영선이좋아하는 신경림의시에서착안했­다. 정영선에게조경은미생­물부터우주까지생동하­는모든것을재료 삼는 종합과학예술이다. 정영선은50여 년의조경인생동안 우리땅의이야기에귀를­기울이고고유자생종의­생물다양성을보전하기­위해노력해왔다.

전시는 정영선의 작품 세계를 국가주도의 공공 프로젝트와 민간 기업이의뢰한 정원과 리조트, 역사 쓰기의방법론으로서기­념비적조경과 식물을연구하고 보존하는 수목원과 식물원 등작업의주제와성격에­따라재구성했다.연대기적 서사를 지양한 이러한 접근방식은 경제 부흥과 민주화 과정이 동시적으로발현된한국­현대사의특징과도맥을­같이한다.

전시는크게7개로 나눴다. ‘패러다임의 전환, 지속가능한 역사 쓰기’에서는‘장소 만들기’의 현장이된조경의사례를 살펴본다. 한국 최초의근대공원인‘탑골공원’ 개선사업(2002)과 ‘비움의미’를 강조한 ‘광화문광장’ 재정비(2009),일제강점기철길중 유일하게조선인의자체­자본으로건설된경춘선­을공원화한 ‘경춘선숲길’ (2015~2017) 등을소개한다. 조경이공간의정체성을­형성하는데역할을한프­로젝트들이다.

‘세계화 시대, 한국의도시 경관’에서는 주요 국제 행사 개최와 더불어 한국을 찾는 세계인에게 선진화된 도시경관의인상을 주기 위해 동원된 사업을 다룬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아시아공원’(1986), ‘올림픽선수촌아파트’ (1988), ‘대전엑스포’(1993) 등한국의경제, 문화, 기술적 도약의 기회였던 대형국가주도프로젝트­도소개됐다.

정영선은“우리나라에조경이라는­분야가 들어오게 된 계기가 특이하다”며“엑스포와 같이외국에한국을 알리는행사를할때국가­가나서면서조경이라는­분야가커지게됐다”고 설명했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여가생활’은 경제 성장이 동반한 생활양식의 변화로수요가생긴가족­단위여가활동의장소들­을소개한다.

정영선은 예술, 교육, 체육, 관광등각

문화기관과 레저시설의 기능과 목적에충실하면서도우­리고유의지형과땅의맥­락을살리는데많은노력­을기울였다.

종합문화 예술단지 ‘예술의전당’ (1988)의 조경 구상도와 모형 사진, 스포츠 중심의휴양 리조트 ‘휘닉스파크’ (1995)의 식재계획도와 피칭자료 등이공개됐으며,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인문학레지­던시 ‘두내원’(2025 예정)도소개된다.

정영선은 1990년대 후반에들어서면서 호암미술관 희원을 시작으로 전통정원의 아름다움과 한국 자생종 식물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경기도와 중국 광저우 사이의교류정원으로조­성된광동성월수공원의‘해동경기원’(2005)도 만날수있다.

‘하천 풍경과 생태의 회복’은 강이흐르는 곳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습지를보호하고 도심 속 물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작업을 다룬다. ‘여의도샛강생태공원’(1997·2007), ‘선유도공원’(2001), ‘파주출판단지’(2012·2014)를 통해습지

를 복원하고 하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그의노력을엿볼수­있다.

서울관의야외종친부마­당과 전시마당에는이번전시­를위한새로운정원이조­성됐다. 석산인인왕산의아름다­움을미술관 내·외부에 재현했다. 한국 고유의자생식물을볼수­있다.

한편, 배우 한예리가 오디오가이드에목소리­를 재능 기부했다. 그는 “반세기에 걸친 작가의 대표작이 우리 모두의일상 속에서아름답게숨 쉬고 있어놀랐다”고 전했다.

김성희국립현대미술관­장은“이번 전시는한국을대표하는­조경가 정영선이평생일군 작품세계중 엄선한 60여 개의작업과서울관에특­화된2개의신작정원을 선보이는 특별한 전시”라며, “그의조경작품에서나타­나는 ‘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이 있기까지의 각고의 분투와 설득, 구현 과정의이야기를 통해정영선의조경철학­을깊이있게만나는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9월 22일까지.

건축뒤에가려졌던조경­분야후학길터주려전시­마음먹어

 ?? [연합뉴스] ?? 정영선조경가가지난 4일 오전서울종로구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개인전 ‘정영선: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간담회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영선조경가가지난 4일 오전서울종로구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개인전 ‘정영선: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간담회를하고 있다.
 ?? [사진=국립현대미술관] ?? 전시‘정영선: 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전시‘정영선: 이땅에숨쉬는모든것을­위하여’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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