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미국·가난한유럽…이둘을가른건 생 산 성
지난 2017년 11월 1일 일본에서는 4차 아베 내각이 출범했다. 통화공급 확대, 재정투입, 성장전략추진이라는아베노믹스의3개화살이화두가 되던 시점이었다. 이때아베내각은 일본 경제가 안고 있던 핵심문제중 하나인 저출산·고령화 현상에대응하기위한 전략으로 ‘생산성 혁명’과 ‘인재 만들기 혁명’ 두가지를 들고 나왔다. 이를 계기로일본 사회에서는 생산성논란이 확산됐다. 당시일본경제의상황을보면 2013년에서 2016년까지 4년 동안의잠재성장률수준이1%에불과했다.이기간에자본의성장 기여도는 0% 포인트에그쳤고노동은1% 포인트,총요소생산성은 0.8% 포인트에 머물렀다. 문제는 노동력부족이더심화될것으로보여일본으로서는성장률제고를위한 처방이생산성향상이었다는데 있다. 하지만 2016년기준으로일본의시간당노동생산성은 41.6달러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평균치인 47.0달러보다 11.5%나 낮았다. 생산성수준을끌어올리는게‘발등의불’로떨어졌다.
기술혁신·고숙련vs저숙련·저생산성
<부자 미국, 가난한 유럽>이라는 책이나올정도로 미국과 유럽은 ‘경제 성적표’의 차이가크다. 미국은세계에서가장잘나가는 ‘우등생’인 반면 유럽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는성장부진 블록이다. 미국과 유로지역은 1995년에만 해도 경제규모가 비슷했지만 이후 30여 년간 차이가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미국경제는 1995년의 두배정도수준으로커진데비해유로경제는 1.5배를 조금넘는정도에그쳤다. 이 같은 격차는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한국은행은 2010~2019년 중미국과유로지역의성장세차별화는 생산성과노동력차이등에따른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기간에미국의성장률이유로지역보다연평균 0.9% 포인트가높았는데이중절반이넘는 0.5% 포인트는생산성,그리고0.4%포인트는노동투입의차이로설명된다는 것이다. 결국생산성이미국과유로지역의성장격차를가져온주요인임을알수있다. 생산성측면에서미국은기술혁신과고숙련인재유치등으로우위를유지해왔다.반면에유로지역은첨단산업에대한정책적육성노력이상대적으로부진한데다연구개발투자도미흡하고이민인력이저숙련자위주여서낮은생산성에서벗어나지못하고있다.
IMD국가경쟁력,한국64개국중28위
지금까지얘기해온일본의 사례, 그리고 미국과 유로 지역의비교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바로 경제 성장의열쇠를 쥐고 있는 변수가 총요소생산성이라는 사실이다. 총요소생산성은노동생산성보다는범위가큰 개념이다.경제전반의총체적효율성을뜻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은 어떤 상태에있을까? 답은상당히부정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의 전신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초에내놓은 ‘총요소생산성현황과경쟁력비교’결과를보면, 미국의총요소생산성수준을 1로 봤을 때 한국은 0.614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미국을 포함해 독일, 프랑스, 영국,일본의평균치인 0.856에도 크게 뒤처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 산업전반의총요소생산성이 선진국 중위값
대비약 67%로 부진하다고 평가했다. 이처럼낮은 수준의 생산성은 국가경쟁력에도 좋지않은영향을미치고 있다.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3년 국가경쟁력순위에서우리나라는 64개국 가운데28위로 한해전보다 1단계가 떨어졌다. 국가경쟁력이약화된것은 정부 효율성순위가 2단계 내려간 탓이크지만 기업효율성 부문에서 생산성의 순위가하락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21년에 31위까지올라갔던 생산성순위는 지난해에는 41위로 10계단이나 내려앉았다. 총요소생산성을구성하는 노동생산성에도 ‘빨간 불’이 켜져있다. 노동연구원의분석을보면 2022년 기준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3.1달러로 OECD 회원국중 28위에 그쳤다. 독일(68.5달러)과 비교하면62.9% 수준으로격차가 37%가 넘는다.
한국경제의총요소생산성에문제가생긴데는 다양한 요인이작용하고 있다. 총요소생산성을 구성하는 요소별로 살펴보면, 경제자유도를 제외하고 사회적 자본, 규제환경, 혁신성,인적자본 네 가지가 G5 국가 평균 수준을 크게밑돌고 있다. 이중사회구성원에대한신뢰등 사회적연대를 촉진하는 유무형의자본을의미하는 사회적자본은 가장 낙제점을 받고있는부문이다.
사회연대촉진하는사회자본낙제점
2023 레가툼번영지수발표내용을보면한국의사회적자본지수는 167개국 중 107위로하위권을 기록했다. 사회적갈등의골이깊어지면서신뢰기반이취약해진데따른 것이다.실제로한국사회내의갈등은위험수위에놓여있다.갈등수준이OECD 국가중셋째로높다. 기업의발목을 잡는 규제도 생산성을 좀먹고 있다. IMF는 총요소생산성이 저조한 것은과도한 상품시장 규제때문이라며한국의규제수준은 OECD 회원국 중 여섯째로 강하다고 지적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한국의규제총괄지수는 1.71로 OECD 평균치 1.40을 크게웃돌고있다. 특히진입장벽이매우높은특징을보이고 있다. 이와함께혁신성과지수와인재경쟁력지수가 G5 국가를 하회하고있는것도 총요소생산성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산성에 비상이 걸린 이유를 거시경제적측면에서보면 투자 부진, 주력산업의성장세미흡,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 부문으로의고용집중, 중소기업의낮은 경쟁력, 지지부진한 기업구조조정,인구고령화등을들수있다.
여기에서중요한점은총요소생산성이성장의열쇠를쥐고있는것은한국경제도예외가아니라는 점이다. 특히향후한국경제의진로를 생산성이 좌우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한은은 ‘한국경제 80년(1970~2050)및 미래성장전략’ 보고서에서 2010년대 이후의총요소생산성의기여도 축소가 성장률 하락의주된요인이라며향후 30년의 경제성장은 생산성기여도에의해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산성이높거나 중간 수준인 시나리오를 전제해도 성장률은 2020년대의 2%대에서 2040년대에는 0.1~0.2% 선으로 하강 곡선을 그릴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생산성이낮은시나리오 아래서는 2040년대 성장률이 마이너스 0.1%로 뒷걸음질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장기적으로플러스성장률을유지할것이냐의여부가 생산성에달려있는 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한은의이같은 회색빛전망에보조를같이하고 있다. KDI는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2010년대의 0.7%에서 OECD 상위25~50% 수준인 1.0%로 올라설 경우 2050년 성장률이0.5% 내외로 전망되지만,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성장률이0%로 하락해한국경제가 ‘제로 성장’의 늪에빠질것이라고우려를나타냈다.
이처럼 생산성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핵심변수로떠올라 있다. 그런데도이를중시하고 생산성개선에 ‘올인’하는 정책적노력과 사회적공감대를 감지하기어려운 게솔직한 현실이다. 정부의 경제정책 청사진을 봐도생산성에관한 관심은다른현안에밀려있다.기업과가계등경제주체들에게도생산성의중요성에대한 공감대는 거의형성되지않은 모습이다. 이래서는안 된다. 한국경제의어려움을 풀어갈 과제가 생산성이라는 해답이주어져있는데도이에대한 ‘큰 그림’이제시되지않은채적절한 대책이추진되지않고있는현실은마이너스 성장으로가는길을 재촉할뿐이다. 물론 총요소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복잡다단하다. 생산성부진을 가져온 요인인 혁신성과 인적자본, 규제, 사회적자본에그답이있는데여기에는경제적변수뿐만아니라신뢰라는비경제적요소도포함돼있기때문이다.
미래결정지을핵심변수지만‘뒷전’
‘하지만 한국경제가 ‘잃어버린 미래’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제기된숙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총요소생산성을개선하는 것은 사회와 경제전반을 혁신하는일이다. 그러기에 정부와 기업, 정치권, 그리고개별 경제주체들이각자의몫을 다해야 한다.먼저정부는생산성향상을위한‘그랜드 플랜’을 내놓고 신성장 동력확보와 고부가가치산업으로의전환, 인적자본 확충, 규제개혁, 중소기업과 서비스 부문의경쟁력 강화, 공정한 신뢰사회구축 등에 주력해야 한다. 한 마디로거시경제 운용을 생산성 중심으로 전환해야한다. 기업도 산업현장에서생산 효율을 올려노동생산성을개선하고연구개발의성과를극대화해야 한다. 정치권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 상호 적대시하는 갈등 구조를 해소하고협치의 ‘텃밭’을 일궈냄으로써신뢰등 사회적자본을구축하는일에동참해야 한다. 개별경제주체들도 불신대신 신뢰, 갈등대신화합의씨앗을뿌려사회문화를 일신(一新)해내야 한다. 신뢰가 형성되면 성장률이높아지고 행복과복지에기여한다는게지배적인분석이다.
지금까지한국 경제는 자본과 노동의양적투입을늘린성장에기대왔다. 더이상이런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총요소생산성을 올리는질적성장이시대적과제로 주어졌다. 이는 경제는물론사회전반을 환골탈태(換骨奪胎)시키는구조적변화를요구하고 있다. 힘을합해잘 대응해낼 것인가의여부에따라한국 경제의미래궤도가정해질것이다.
미국,기술혁신·고숙련인재유치로생산성우위1995년이후미국2배성장…유로는1.5배성장
성장키는‘총요소생산성’…한국은미국의60%평균밑도는사회자본과규제환경등과제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