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반부패총괄까지…‘시진핑의남자’자오러지
중국공산당전인대상무위원장시주석과동향…부친끼린혁명동지산시성서기시절삼성과인연도
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뜨겁게 포옹한 중국 공산당 서열 3위 자오러지(趙樂際, 67)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우리나라로 치면 중국의 국회의장 격이다. 시진핑중국 국가주석의복심으로 잘 알려진 그는 북한과 중국 양국이 코로나19팬데믹을종식하고교류를 재개한이후북한을찾은최고위급중국측인사다.
자오러지는 시진핑집권기간인사와반부패사정작업을 도맡는 등시주석이가장신뢰하는인물로손꼽힌다.
덕분에 2022년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시진핑의 책사’왕후닝과 함께중국최고지도부인정치국상무위원에유임돼중국공산당서열3위인전인대상무위원장으로올라섰다.
시진핑집권1기때자오러지는당중앙조직부장으로당정주요부처와중앙국유기업등4000여명의공산당핵심간부인사를담당했다.후진타오와장쩌민전국가주석의세력기반이었던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과상하이방관료를밀어내고시주석측근세력인이른바‘시자쥔(習家軍)’을요직에등용하는데중요한역할을했다.
시진핑집권2기때는중국최연소상무위원으로공산당서열6위인중앙기율검사위원회서기로발탁돼‘부패와의전쟁’선봉장에나섰다.중앙기율위는관료들의비위행위를적발하는감찰기구지만경우에따라서정적을제거하는역할도수행하는 만큼, 시주석의절대신뢰를받는인물이앉는 위치다.자오러지의전임자는시주석과호형호제하는사이로알려진왕치산현국가부주석이었다.
자오러지는 칭하이성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의고향은 산시성 시안으로, 시
진핑주석과동향이다.
두 집안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만큼 시 주석과 자오러지가 어렸을 때부터알고지냈을가능성도 높다. 홍콩매체에따르면자오러지의부친인자오시민은 시주석의부친인시중쉰전부총리와 함께 1930년대 중국 공산당 혁명시기같은부대에서생활하며혁명동지로손발을맞췄다고한다.
특히시주석이 2007년 10월 제17차당대회에서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에입성해차기후계자로사실상 낙점됐을당시, 산시성 서기로 재임하던 그는 시주석일가를 잘 챙겼다. 자오러지는 시안 근교 푸핑에위치한 시중쉰묘와 생가를 대대적으로 확장, 마오쩌둥 기념당에필적하는시중쉰기념관을조성했다. 시주석이 15세 때부터 7년간 ’지식청년‘ 생활을한옌안시황토토굴마을량자허에는 대규모예산을 투입해성역화에앞장서는등충성심을보였다.
산시성 서기 재임 시절 실적도 화려했다. 2007년 경제규모전국 20위에불과했던 산시성을 2011년에는 전국 6위로, 경제발전 속도는 중국 내 1위를 차지할만큼급성장시킨것이다.
한국과의인연도 있다. 당시시안 삼성전자반도체공장설립도추진하면서우리나라 삼성전자와 활발한 교류를가졌던 것. 김중종 삼성전자 사장,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과 만남을 가졌으며, 이런 인연으로 삼성중국 반도체생산단지건설기공식에도 참석했다.이에앞서 2007년 주시안 한국 총영사관개관식에도참석했다.
자오러지는 1957년생으로 시주석보다 4살 아래다. 칭하이성시닝에서태어난 그는 베이징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칭하이성 정부 근무를 시작으로 30년 가까이칭하이성 정부에 몸담았다. 특히 2000년 칭하이성 성장으로발탁돼당시중국 ‘최연소 성장’ 타이틀을따낸데이어 2003년에는 ‘최연소 당서기’에 발탁되며 칭하이성 1인자로 올라서는 등 초고속 승진 가도를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