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땅을지키려는목소리들

고속철역중국대륙법적용논란홍콩인들새해첫날부터가두시위 뿌리는9년전차이위안수호운동中의존탈피식량자급운동발전 발전·개발만을지상목표로삼던홍콩인들의가치관을바꾼사건

AJU China - - Opinion - 장정아국립인천대중국·화교문화연구소장인류학박사

새해를 여는 첫날 홍콩에서는 ‘일지양검(一地兩檢)’ 실시에 항의하는 시위행진이 있었다. 일지양검은중국광저우와홍콩을잇는고속철도의종착역인 홍콩 웨스트카우룽역에서 ‘효율을 높이기위해’ 중국대륙과 홍콩 출입경을 함께 진행하려는계획이다.

역내의 일부 구역에 대해 중국정부가 임대료를내고 중국 보안요원이 상주하며, 이 구역과 열차내부에서는중국법이 적용된다.

홍콩인들의 가장 큰 우려는 홍콩 땅 내에서 중국대륙법이집행되는선례가생겨난다는점이다.

홍콩정부는입출경절차를동시에진행해야효율이극대화되고 대륙과의연결 강화가홍콩발전에도움이된다고설명하지만법적해석에대해여전히논란이 많다.

그런데사실논란은웨스트카우룽역의일부구역 임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논란의 뿌리는약 10년 전 홍콩 땅 침범에 대한 두려움을 촉발시킨큰사건으로이어져 있다.

당시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홍콩 북부 신제(新界)지역 일부를 철거한다는 계획이 처음 발표됐을때만 해도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름도 잘 모르던 한 마을에서 홍콩역사의 분수령이라고까지 할만한 사건이 생겨났다. 140여 가구가 살던 차이위안(菜園)촌 철거계획이 2009년 발표되자, 촌민들은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요구는 더 많은 보상이 아니라 그대로농사지으며살고싶다는 것이었다. 특히신제지역 재개발이 대륙인을 위해서라는 강경 반대파의 주장이 널리 퍼지며 전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됐다.

신제 개발과 고속철도 건립이 모두 홍콩 땅을‘팔아넘기는’ 것이라는 주장은 폭발력을 가졌고젊은이들은 점점 모여들었다. 반대파 내에서도 이런주장은너무단순하고선정적이라는비판이있었지만, 이미 거센 흐름이 돼 버린 정서적 분노 속에서비판은묻혀버렸다.

사람들은함께모여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이것은 우리 땅이다”라는 영화 속 대사에 감정을 이입하며눈물을흘렸다.

‘오늘은 차이위안촌을 빼앗기지만 내일은 우리모두의 집터를 빼앗길 것’이라는 슬로건 속에서,지켜야 할 것은 차이위안촌을 넘어 홍콩 땅 전체가 됐다. ‘우리 땅’이라는 구호가 갖는 흡인력은 강력했다.

젊은이들은순찰대를만들어마을을지키고불도저를 막아서다가 잡혀갔다. 고속철도 예산 심의 는계속 저지됐고, 2010년 마지막심의때는 1만여명이입법회를포위하며언론의주목을받았다.

하지만결국예산심의는 통과됐고, 차이위안촌은 지켜내지 못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촌민들은 집단이주해 농사짓고 살겠다는 제안을 즉각제기했다. 시간이 길어지며 포기한 주민이 많았지만, 47가구는끝까지남아긴싸움을 했다.

최초로촌민들이집단이주해공동체를새로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고 정부와의 충돌, 기소와시위가계속됐다.

그러나 홍콩 역사상 전례 없던 이 싸움은 매일새로운기록을 써나갔다. 철거가진행되는논밭위에서 ‘폐허예술제’를 열었고, 다시 농사지으며 살아갈 땅을 함께 물색했다. 또한 새로 만들 마을의합작생산 운영방식을 토론하고 모든 것을 주민의손으로 만들어나갔다. 10여년이 걸려 마침내새로운마을이만들어졌다.

차이위안촌 사건의 가장 큰 의미는 홍콩에 농촌이있다는것을사실상처음으로시민들이깨닫게 했다는 데 있었다. 삶이 완전히 바뀌는 젊은이들도 등장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이 중신제에 들어가 정착해 살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생겨나기시작한 것이다. 그들은신제에서농사를 지으며 홍콩에 농촌이 왜 필요한지, 농사를 짓고 사는 삶이 홍콩에서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됐다.홍콩인이먹을쌀과채소를홍콩에서생산하자는 운동은 큰 의미를 가진다. 과거 홍콩은 식량자급률이높았지만,여러이유로점점낮아져현재는 쌀도 거의 전부 수입하고 채소자급률은 2%도안 된다.

자급률을 다시 높이자는 것은 단순히 자기 땅의 농산물이 몸에 좋기 때문이 아니다. 중국대륙에대한의존도를낮추는물질적기반을만들자는것이다. 이는끊임없는개발을통해중국대륙에점점 통합되는 것 외에 홍콩이 살 길은 없다는 정부의주장에대해대안을찾으려는움직임이다.

2010년 예산통과저지행동중사흘에걸친 ‘26보 1배’ 고행이 있었다. 고속철도의 홍콩 구간이26㎞임을 상징하는 26보마다 한번씩무릎을꿇고절하는 것이다. 20~30대 젊은이가 주축이 된 이고행을기록한다큐멘터리자막은이렇게말한다.

“아이들이여, 너희의 아이들은 다시는 무릎을꿇게 하지 말기를 빈다.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그무언가를구걸하며무릎을꿇어야하는일이다시는 없기를.”

이 비장함은 긍정적 측면만 가진 것은 아니다. ‘홍콩 땅을 중국에 빼앗길 수 없다’는 외침은 선정적이기도 했다. 마을을지키자며모여든이들의감정이입과 분노 속에는 대륙인에 대한 강한 배척도깔려있었다는점에서이것은위험한비장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위안촌 사건이 홍콩 역사에서 분수령이 된 것은, 홍콩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가치, 빠른 발전과 효율성의 추구를 지상목표로 삼던 가치를 대체하는 가치를 만들어낸 데있다.

그것은 세상을뒤바꾸겠다는강렬한구호가아니지만, 가치관을 바꾸고물질적기반을만들어낸점에서커다란폭발력을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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