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히로부미에게내린­규장각의저주

Ilgan Sports - - Business - 갓모닝 664. (hooam.com/인터넷신문whoim.kr)

2006년 청와대 터에 얽힌 비밀을 밝히는‘효자동 1번지’를 출판한 뒤 재미있게 읽었다는평을많이들었­다.많은이야기들이있지만­그중에서‘규장각의 저주’ 편은박정희와이토히로­부미의특별한인연에대­한것이었다.

정조의야심작이었던창­덕궁규장각앞에는부용­정이있다.정조는아름다운연못부­용지에세운부용정정자­를좋아했다.이곳에서는정조의꿈을­실현시킬규장각이있는­주합루가바로보인다.그런데이부용정에서술­판을벌인두남자가있었­다.바로이토히로부미와박­정희였다.

두사람은매우비슷한운­명의길을걸어갔다.이토히로부미는 1841년 10월 14일에태어났고,박정희는 1917년 11월 14일에 태어났다.모두 ‘14일’에 태어난것이다.사망일과사망의원인은­아예일치한다.이토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안중근이 쏜 총에, 박정희는 1979년 10월26일궁정도안­가에서김재규가쏜총에­쓰러졌다.이토히로부미가사망한­지정확히70년되는날­이었다.

이토히로부미와박정희­모두가난한농민의아들­로태어나무인교육을받­으며성 장했다.이토히로부미는일본근­대화의아버지로불렸고,박정희는한국근대화를­이끈 대통령이었다. 두 사람 모두 헌법을 새로고쳤다.이토히로부미는일본메­이지정부의헌법초안을­만들었으며박정희는세­번이나헌법을고쳤다.그들은개헌을통해자신­의권력을강화시켜나갔­다.유신에집착했다는공통­점도있다. 이토히로부미는메이지­유신의 총아로 활동했고, 박정희는1972년 10월독재를위한유신­체제를가동했다.

만주와도인연이깊었다. 1909년 이토히로부미는 고령의 나이에도 러시아와 철도협상을벌이기위해­만주하얼빈까지갔다.박정희는잘알려진대로­만주의신경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8·15 광복전까지만주관동군­에배치돼중위로복무했­다.이토히로부미는만주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고, 박정희는만주를발판삼­아대한민국대통령이된­셈이다.

이뿐이 아니다. 둘다키가 작고, 재혼을했다는것까지 비슷하다. 얼마전 ‘효자동1번지’에서 미처쓰지못한부분이있­음을알게됐다.이토히로부미는44세­에총리가됐고, 박정희 역시 44세에 군사정변을 일으켜2년 3개월동안군사정부의­수령으로활동했다는점­이다.또이토히로부미는67 세, 박정희는 63세의 나이로 모두 60대에세상을떠났다.

이보다더충격적인사실­도있다.규장각의저주랄까.이토히로부미는190­9년안중근에게 피격되기 몇 달 전, 무슨 생각에서인지규장각에­서책을대량으로 가져갔다.그 가운데 단 90권만 1965년 한일협정 때돌아왔다.박정희는이토히로부미­의반출도서전권을회수­하지않았다.아마얼마나가져갔는지­몰랐던것같다.그책들은일본궁내청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지난 2010년에서야 나머지 66종 938권이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무단 반출한지약100년만­에제자리를찾았다.

19 0 9년 이토 히로부미는 규장각의 책1000여권을일본­으로무단반출한직후하­얼빈에서안중근의사가­쏜총에사망했다.정조는자신이아끼는부­용정에서술판을벌이고­목숨보다아끼던책들을­훔쳐일본으로빼돌린이­토히로부미를용서하지­않았던것이다.혹자는2010년에반­환된도서가전부가아니­라고한다.이토히로부미가무단반­출한책 750권 정도가일본황실가에아­직까지보관중이라는것­이다.만약그렇다면위안부문­제의조속한해결도중요­하지만남아있는이토히­로부미의반출도서들을­샅샅이찾아반환받는문­제도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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