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도의땅에서오히려­빛난아르메니아대성당

JoongAng Ilbo - - 오피니언 - 이희수의

한양대특훈교수중동학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란의 이스파한은 ‘네스페 자한(Nesf-e Jahan)’으로 불린다. ‘세상의절반’이란 뜻이다. 17세기 이스파한은사파비제국(1501~1736)의수도로서모든면에서­세계최고였다.인구100만에163­개의 모스크, 48곳의 학교, 대상들을위한 1800여 개의여관, 273곳에 공중목욕탕을가졌다. 그때조성된폴로경기장­과이맘광장은지금도크­렘린과천안문광장에버­금가는큰규모를자랑한­다. 사파비는인도의무굴과­오스만이라는대제국들­과당당히경쟁하면서동­서실크로드교역으로번­영을누렸다.문화적으로는소수종파­인이슬람교 시아파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잃어버린­페르시아문화를회복하­고자했다.오늘날이란이시아파가­된배경이다.

번영의원천은종교적관­용과유대인과 아르메니아인 같은 이교도 인재들의적극적인 등용이었다. 유대인은멜라라불리는­공동체에서종교적자율­과행정적자치를누리면­서엘리트관료로출세했­다.한편아르메니아인들은­오랜실크로드교역경험­과국제비즈니스네트워­크로제국의상업적부를­창출하는역할을맡았다.당연히그들의문화적자­치와종교생활도철저히­보장되었다.

당시 아르메니아 상인들은 국제시장의큰손으로유­럽상인들의사각지대인­중앙아시아나소아시아­까지사업영역을 넓혔다. 당시로선첨단비즈니스­기법이던신용담보나환­어음거래를활성화하기­도했다. 비엔나전투이후터키커­피의체계적공급과거래­를통해유럽카페문화를 견인했던 주역들도아르메니아상­인들이었다.그렇지만 전략적 요충지이자 비옥한 젖줄인아르메니아 영토를 두고 오스만 제국과끊임없는전쟁에­휘말린샤압바스1세(1587~1629)는 수십만명의아르메니아­인들을격전지에서멀리­떨어진수도이스파한의­졸파지역으로이주시켰­다.이때세워진아르메니아­공동체의구심체가바로­1606년에건립된반­크대성당이다.이슬람의땅에서400­년이나아르메니아사도­교회의영성과역사적부­침을온몸으로증언하고­있는셈이다.반크대성당은이슬람교­모스크를개조한돔형건­물이다.꼭대기에자그마한십자­가가꽂혀있고근엄한종­탑이연이어배치되었다.성당내부는모스크구도­에파란색과황금색을혼­합한전형적인페르시아­스타일로 장식하였다. 벽면에는르네상스풍으­로천지창조와최후의만­찬그리고성그레고리의­순교장면등을화려한프­레스코화로묘사해놓았­다.아르메니아사도교회는­301년로마에앞서세­계최초로기독교를국교­화했다고주창하면서정­통기독교로서의자부심­이강하다.이들은성화인이콘을중­시해이콘과직접입맞춤­을하고손으로쓰다듬고­그손을가슴에모아십자­가를그린다.가슴에긋는십자가가가­톨릭과는조금 다르다. 머리, 가슴,오른쪽어깨, 왼쪽어깨순이다. 다른기독교와는달리모­두가서서예배에참석한­다.악기를동원하지않고성­가를합창한다.오히려더은혜로워보인­다.

교회정원에마련된아르­메니아박물관에는기독­교전파나아르메니아인­박해사에관한소중한기­억들이그득하다.특히눈길을끈것은다이­아몬드펜으로성경구절­을새겨넣은머리카락과­세계에서가장작은14­쪽의성경책이다.현미경이아니면볼수없­는희귀품들로아르메니­아인들의섬세한손재주­를말해주고 있다. 아르메니아는실크로드­교통의남북축이교차하­는요지에있어예부터강­대국들의틈에서숱한이­산의비극을겪어왔다.하지만이런역경이세계­곳곳을넘나들며국제상­인으로서진취적기질을­쌓는밑바탕이되기도했­다.

지금도이스파한을중심­으로이란에는수십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13개의교회를중심으­로공동체를이루고낯선­이슬람의땅에서살아간­다.일반이란인들보다훨씬­높은경제적삶을 누리고 2명의 대표를 국회에 보내면서자신들의언어­와문화에대한강한자부­심과신앙심을잃지않고 있다.이웃터키가1차세계대­전의와중에서150만 명의아르메니아대학살­을야기했던것과는달리­이슬람시아파의심장부­이란에서아르메니아정­신의숨결이살아숨쉰다­는것은또다른공존의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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