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꽃핀우정,조선인벗에대한오조건의시
글|쑹원징( 宋文靜, 안후이〈安徽〉대학교외국어교육부조교 )
변방지역은 국제적인 우정이싹트는 곳이다. 청나라 초기의 유명한 시인인 오조건(吳兆騫)도 영고탑(寧古塔·현재의 헤이룽장성 닝안현)에서 조선인 벗과 진실한우정을 쌓았다.
순치 14년(AD 1657년) 오조건은 남위과장(南闈科場) 사건에연루되어 북동지역 변방인 영고탑에서 23년 동안 귀양 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시사집(詩詞集)인 <추가집(秋笳集)>과 <귀래초당척독(歸來草堂尺牍)>을 썼다. 그의 시에는 비분강개하는지식인의고뇌가많이묘사되어있어그는‘변새시인(邊塞詩人)’이라고 불린다.
청나라초기영고탑의일부지역은조선과 접해 있어 양국 주민들의 왕래와 무역이활발했고사이좋게 지냈다. 오조건은조선주민과의접촉이비교적잦았기때문에 조선의 풍습과 인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상당했다. 천하에 이름이 알려졌던그는영고탑에서현지장군들에게예우를 받았고 정무와 외교 활동에 참여할기회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강희 17년(AD 1678년) 전쟁 관련 일로 영고탑을 찾은 조선 절도사 이운용에게 오조건은 <고려왕경부(高麗王京賦)>를 주었고,이운용은이를조선으로가지고돌아가널리알려오조건의이름은타국에서도유명해졌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 작품은 남아있지 않다.
오조건은귀양기간동안많은작품을썼지만 대부분 소실됐다. 조선인 벗에 대한 작품 중 현존하는 것은 <추가집>에 있는 <동림생야숙정공방시래자함경(同林生夜宿淨公房時林來自咸鏡)> <송김역사지조선(送金譯使之朝鮮)> <송인지평원(送人之 平遠)> 등이다. <동림생야숙정공방시래자함경>은 다음과 같다.팔월상청새초고, 상방십리접평무(八月霜清塞草枯, 上方十里接平蕪. )객래해우담현도, 승본강동기적오(客來海右譚玄菟, 僧本江東記赤烏.)유인노가추적원, 소조난약설봉고(幽咽蘆茄秋碛遠, 蕭條蘭若雪峰孤.)야심월초문청범, 불신천애유전도(夜深月初聞清梵, 不信天涯有戰圖. )이 칠언율시는 시인이 정공(淨公)을만나러 갔다가임씨성을가진조선청년을 만나 선방에서 함께 머물렀던 풍경을묘사한 것이다. 정공은 시인이 정금(淨今)스님을 높여 부른 말이다. 시인과 정공은조선청년을따뜻하게맞이했고예로써서로를 대했다. 시인은 조선 청년과 같이묵었을 뿐 아니라 달밤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는 시인과 정공이 이이름 모를조선 청년을 어떻게 친밀하게 대했는지를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지만 행간을 살펴보면유명한시인과명망있는정공의조선 청년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엿볼 수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송김역사지조선>는 오조건과 조선인 벗 사이의 우정을 보 다 직접적으로 묘사했다. 전편에서 나타난 시인과 임 씨 청년의우연한 만남과는 달리, 시인과김 통역관은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서로 아끼는 벗이었다. 이 시에서 시인은 김 통역관의 문화적소양과 재능을 칭찬했고, 지리적으로 조선과 중국이 가깝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 양국 변경지역주민의 우호적인 왕래와 거래,조선인 관복에 중국 한나라 때의 풍습이남아 다는 것을 서술해 양국간 우의의 역사가 깊은 것을 찬양했다. 미련(尾聯)에서시인은조선인벗의칭찬에겸손하게화답하고 이어서 조선인 벗이 자신의 시문을조선으로가져가번역해전파한것에대해깊은감사의뜻을 전했다.
이 시를 읽으면 시인과 조선인 벗의소박하고 진실된 우정이 종이 위에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두사람은 좌천됐다거나 통역관 신분이라는 것때문에서로를무시하지않았고오히려첫대면에서오랜친구처럼느끼고서로의인품과재능을높이 평가했다.
<송인지평원> 또한 눈여겨 볼 만하다.이 시는 조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오조건의 이해와 애정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누가 부상(扶桑·해가 뜨는 동쪽 바닷가에 있다는 상상의 나무)이 세상 밖에 있다고 하는가(誰道扶桑天地外)’라는 시구를통해중국과조선양국이동고동락하는밀접한관계라는것을 강조했다.
변방에서 그들은진심을 말했다. 오조건은 청나라 초기 조선에 주목하고 애정을 가졌던 많지않은 인물 중 한 사람이었고 그의 작품은 양국 국민의 우호적 왕래의진실한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