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찾아한국에갑니다”패션디자이너황원어의‘이유있는성공’

China (Korean) - - 사회 문화 - 글|장진원(張勁文) 사진|황원어제공

광저우(廣州)에서 서울로, 다시 광저우로…의상 디자이너 황원어(黃文鍔)의‘한국행(行)’은 배움과 성장을 위해 한국 의상의 발원지로 떠나는‘성지순례’일 뿐만아니라 마음속깊은곳을 들여다 보기위한 자아수행의 시간이었다. 중국에서 한류바람이불고한국스타일의의상이중국국내디자이너들의스타일에큰영향을미쳤을 때, 황원어가 마음에 새긴 것은 자신이 배워온 의상 디자인 기술이 아닌, 한국의 스승과 동료들이 보여주었던 진지함과세심함이었다.

지난 3월 24일부터 4월 1일까지 개최된‘2017년 중국 국제 패션위크’에서황원어는 자신이 디자인한‘미스 레이스(Miss Lace)’의 최신 의상과 함께 나타났고, 그의 의상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서 배워온 기술과 열정적인 태도, 그리고 스스로의 영감과 노력으로황원어는자신만의디자인세계를창조해냈다.

의상디자이너로서의시작

황원어는 광둥(廣東)성 차오저우(潮州)시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옷과깊은 인연을 가진 도시로, 중국 4대 명수(名繡, 자수로 이름난 곳) 중 하나이자,밍루이(名瑞)그룹·진차오(金潮)그룹 등유명 의류기업이 밀집해있는 곳이기도 하다. 방직업과 의류제조업은 차오저우시에발전의날개를 달아주었으며, 국제패션과유행에도민감한후각을갖게 해주었다.

가족들이 자수공장을 운영한 것도 황 원어가 의류에큰관심을 갖게된배경중하나다. 2004년 수험생이었던 그는 화난(華南)농업대학교 예술학원의상학과에지원했다.“화난농업대학교 의상학과는광둥성 전체 대학의 의상학과 중 수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나처럼의류업계에종사하기를 꿈꾸던 학생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무대중 하나다.”

많은 학생들은 대학생활이 여유롭다고 하지만, 황원어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수업이없을때는각종디자인대회에참가하면서 경험을 쌓았다.“끊임없이 노력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도전해야 했다.그렇게 해야만 더욱 알차게 살 수 있었 기 때문이다.”도전정신은 그로 하여금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난제들에 직면하게 했다. 그는“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원단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디자인 제판, 공예 처리 등등 많은 어려움에 부딪쳤다”고당시를 회고했다.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지만그에게는그러한어려움이대회참가의이유이자그러한과정에서만느낄수있는 매력이었다.“대회에 참가하면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책에서는 배울수없었던 지식들을 쌓을 수 있었다. 대학시절 나는 거의 매 학기마다 한 개 이상의대회에 참여했다.”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진 그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2007년 받은‘중화컵(中華杯) 국제 의상디자인대회(이하 중화컵)’에서 받은 동상이다.벌써 10년이 지났음에도 황원어는 당시의순간을생생하게기억하고 있다.

“‘중화컵’은 국제적인 디자인 대회이고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 당시 나는해외에서온참가자들의디자인방식을직접 볼 수 있었는데, 디자인이 과감하거나콘셉트가뚜렷한것등작품마다저마다의특징이 있었다. 실제제품으로만들어진다면새로운트렌드가될만한그런스타일이었다.”많은 국내외 경쟁자 사이에서도 황원어는 결코 뒤지지 않았다.“2007년 내작품은 상당히 시장 니즈에 부합했다. 실용적이면서도 포인트를 살린 디자인이었다.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옷의 통일감, 강한 실용성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실제심사위원들역시작품을바로판매해도될것같다고 평가했었다.”

도약을위해서울로가다

2007년‘중화컵’에서 동상을 수상한 뒤 황원어에게는 한국과 인연을 맺게될 기회가 찾아온다.‘형제컵(兄弟杯) 국제 청년 의상 디자이너 작품 대회’발기인인 리신(李欣)의 추천으로 에스모드 서울(ESMOD SEOUL)의 장혜린 당시 교장과 만나면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에스모드석사 연구생 장학금을 얻게된 것이다. 2009년 에스모드 서울 입학을 계기로 황원어는 한국에서의 공부와 일을 시작하게된다.

에스모드는‘의상 디자이너들의 하버드 대학’으로 불리는 명문 학교다. 에스모드 서울에서 공부하며 국내외에서 명성을떨치던 여러 교수님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서도 그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에스모드 서울의 박윤정 이사장이었다.“연세가 많으셨지만 옷을 입는 스타일, 품위는 최고였다. 내가 가장 놀란 사실은 박윤정 이사장께서 1980년대 한국에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선보이신 분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전체에서센세이션이일어났다고 한다. 그분의이야기를듣고무엇이든과감하게시도해야한다는것을 깨달았다.”

2009년은 한류 인기가 상당하던 때였다. <미남이시네요> 같은 한국 드라마에서부터‘소녀시대’,‘슈퍼주니어’등 한국아이돌그룹이 큰 사랑을 받았고, 그와 동시에 한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한국 스타일의 옷이 대량으로 중국에 유입되면서많은젊은이들의호응을 이끌어냈다. 황원어는 이 같은 변화에 주목했다.“2009년당시 중국 시장은 한국 옷에 열광했다. 그런 현상에 호기심을 가졌던 나는 한국 옷의 정수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황원어는공부하는틈틈이한국옷의집산지인동대문 시장을 찾았고, 한국 옷의 특징을연구하는데많은공을 들였다.

황원어가 보기에는 중국인 체형을 고려했을때중국공장에서도얼마든지비슷한 옷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옷 이그토록 사랑을 받을수있던 이유는독특한 디자인과 제작방식 때문이었다.“한국옷은디자인에서부터입는사람의체형에 대해 세심하게 고민한다. 원단에 있어서도한국브랜드는편하면서도오래입을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즉, 입었을 때편안한것뿐만아니라세탁에도강해야하는것이다. 쉽게 늘어나지 않고 쉽게 변형되지도 않는 원단이어야 한다. 좋은 디자인에좋은소재까지더해지니편하면서도멋이날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동안 황원어는 한국 의상 디자인 표준의 엄격함을 배웠고,무엇보다 한국 디자이너들의 진지한 태도와 책임감을 체득할 수 있었다.“에스모드 서울에서 공부하면서 교수님들의 투철한 직업 의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mm만 오차가 생겨도 재단부터 재봉까지다시 해야만 했다. 새벽 2, 3시까지 과제를하고서다음날 7시면 일어나수업을들으러 갔었다.”교수님들의 엄격한 지도 덕분에 황원어는 최고 수준의 옷본 제작 및재봉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관련 과목성적 또한 입학 당시 B에서 A+까지 올랐다. “힘들기는 했지만 당시의 경험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2009년 12월. 황원어는 한국 패션의 류전문업체 보끄레머천다이징의 의류브랜드 온앤온(on&on)에 입사했고,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2010년 4월에는 보끄레 산하의또다른 브랜드 더블유 닷(W.DoubleuDOT) 상하이분사로자리를옮겨정식디자이너로서의삶을 시작했다. 보끄레에서일하면서황원어는 한국 의류기업의 세밀함을 온몸으로 배웠다.

“상하이 분사에서 자켓을제작하던때의 일이다. 홍콩에서 가져온 원단을 사용해야 했는데, 거래처 직원이 중국어를 못해서 마침 광둥 출신이었던 내가 거래처와 연락을 담당하게 됐다. 원단이 홍콩에도착하는 시기부터 관세, 원단 컬러, 수량까지 모든 것을 확인하고 최종 마무리까지 책임져야 했다.”계약 전반을 책임지면서황원어는더블유닷의엄격한경영이념을 알게 됐다.“중국 국내기업이었으면 계약서몇 장이면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더블유닷에서는빼곡하고세세하게각종수치들을 적어야 했다. 원단 종류가 몇가지인지, 원단 별 수량은 얼마나 되는지, 옷한 벌에 들어가는 양은 얼마나 되는지 모두 기록해야 했다. 심지어 여러 가지 컬러가 사용되는 옷에는 어떤 재질의, 어떤컬러의 실을 사용해야 하는지, 어떤 바느질

방식을 사용할 것인지, 한땀 간격을 어느정도로 할 지까지 기록해야 했다. 뿐만아니라 지퍼의 브랜드, 모델명, 컬러 등에대해서도 자세히 적어야 했고, 디자인 한개마다 3개 이상의 옷본을 떠서 완벽성을높여야 했다.”황원어는 존경스러움이 묻어나는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그렇게 철저한 일 처리 방식은 분명 내 사업에, 심지어내생활습관에까지영향을 주었다.”

레이스와의인연,새로운디자인들

2011년 오래도록 떠나있던 광저우로 돌아온 그는 트렌디 인터네셔널 그룹(Trendy International Group)의 파이브 플러스(five-plus)에서 5년간 일하다가2016년 중국 로컬 여성의류업체인 미스 레이스로자리를옮긴다.미스레이스는레이스를 테마로 한 브랜드로, 한국 의상과는 다른스타일을 추구한다. 황원어는그러나미스레이스를선택한것에후회하지않으며,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것아니냐는 걱정도 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디자인을 한 가지 스타일에 국한하고 싶지않을 뿐, 한국에서 배우고 실습했던 경험은 그에게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을 주고있다.

“핏 디자인에 있어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에스모드 서울에서 공부할 때나 한국 의류업체에서 실습할 때나 항상옷의 핏을 살리는 데 더 집중하곤 했다.”디자인과관련한 1차 자료를얻기위해온앤온에서의 실습기간 동안 황원어는 샘플실과 공장 견학을 자청했고, 이러한 노력은 그가 인체에 맞는 원단을 고르고 선택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미스레이스에서일하고있는지금도황원어는디자인과원단의합리적운용을강조한다. 그는 또 효과 이미지 상의 선한 줄이화룡점정이 될 수도 있고 전체를 망치는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레이스디자인은 더더욱 그렇다. 레이스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인체의곡선을 드러내야 한다. 액세서리를 달 최적의 위치를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다행인 것은 미스 레이스에선 레이스 디자인을 연구할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적당한 디자인을만들고거기에여러가지를더해본뒤옷의완성도를 높인다.”

디자인과 원단의 합리적 운용을 강조함과 동시에 황원어는 새로운 디자인을 과감하게 시도함으로써 레이스 사용의 한계를깨뜨렸다.기존에는레이스디자인이다소 단순했던 것이 사실이다. 왕실 귀족 옷에나 사용되던 고급 원단에서 점점 웨딩드레스나 예복 장식용 원단으로 쓰이다가 일반패션에까지활용된것은최근의일이다.때문에 레이스가 주는 이미지는 성숙함에고정되어 있었다. 황원어는 그러나 그러한선입견을 깨고 싶었다.“지금은 바링허우(八零後, 1980년대 출생자)·주링허우(九零後, 1990년대 출생자)의 시대다. 25-35 세들이주요세대다.우리옷은심플하면서도젊은패션을 추구한다.”올해의 중국국제 패션위크 기간, 미스 레이스 역시 베이징 798의 B12 전시부스에서최신디자인을선보였다. 전통미와 현대적 아름다움을 결합함과 동시에 심플한 디자인으로, 레이스자체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동시에 우아하면서도 개성을 잃지 않았다.“미스 레이스의 옷은 예술과 시장의 경계에 있다. 특징이뚜렷하지만실용도도높다.”

우수한 디자이너의 조건은 무엇일까?뛰어난 디자인 실력뿐만 아니라 창의력과영감 또한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조건은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내 아이디어는 성격과 취미에서 나오는 것 같다.”외향적 성격의 그는 더 넓은 세계에서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기를바라고, 여행과 사진촬영을 좋아한 덕에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이러한 습관과 취미는 그의 삶과 일에많은 놀라움을 만들어준다.“한번은 교외로 나갔다가 잘 보이지 않는 골목길을 지나가게 됐다. 좁은 골목길 한쪽은 고층건물들이 즐비해있고, 다른 한쪽에는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낡은 건물들이 있었다.그런데그낡은 건물의 벽면가득예쁜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상반된 이미지가 내 머리 속에서 충돌을 일으키며나에게 대단한 충격을 주었다. 그때 나는‘변경예술’이라는 주제를 떠올렸다. 수정작업을 거친 뒤 디자인을 통해 미스 레이스의 2017년 SS시즌 의상에 반영했다.”

미스레이스를해외에 선보이고, 해외에서 패션쇼를 열고 싶다는 게 황원어의바람이다.“분명히 쉽지 않을 것이다. 브랜드 포지션을 생각하면 제품 품질을 더욱 끌어올려야 하고, 원단을 생각하면 세계최고품질의레이스생산업체와협력을맺어야 한다. 우수한디자이너와기술자들이 모여야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다.”그런 그가 인생 최초의 해외 패션쇼 개최지로 서울을 선정했다.“나를 가르쳐주신 은사님들께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드리고 싶었다.”

패션디자이너황원어

에스모드서울(ESMOD SEOUL) 졸업당시의졸업작품

황원어가 디자인한 미스 레이스 (Miss Lace) 의상은‘변경예술’을테마로한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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