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한바국가삼림공원의‘녹색만리장성’

China (Korean) - - CONTENTS - 글|왕자인(王佳音)

세계 최대 규모의 한 인공산림농장에는 55년에 걸쳐 모든 나무들이 사람의 손을 통해 심어졌다. 810km2 면적에 이르는 싸이한바(塞罕壩) 국가삼림공원의 이야기이다. 공원은 허베이(河北)성최북부 청더(承德)시의 웨이창(圍場) 만주족·몽골족자치현 북부댐 위쪽에 위치해있다. 공원은 수도인 베이징(北京)에서는400km 남짓떨어져 있다.

‘싸이한바’라는 말은 몽골어와 중국어가 합쳐진 말로,‘아름답고 높은 고개’를 의미한다. 과거 이곳은 수초가 풍부하고 삼림이 우거지며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했다. 1681년 청나라 강희제는 여기에 목란(木蘭)사냥터를 만들고 샤오루(哨鹿·몽골어로‘목란’이라는 뜻)수렵지라불렀다. 싸이한바는 목란사냥터의 주요구역가운데 하나다.

청나라 말기, 국운이 쇠하자 나라 안팎으로우환이 빈발했다. 텅빈국고를메우기 위해 1860년대부터는 목란사냥터를개간하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벌채를 일삼았고, 여기에 산불까지 겹치는 바람에195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삼림은 완전히옛자취를잃어버리게 됐다.

그러나 3대에 걸친 사람들의 노력으 로 싸이한바 산림농장은 반세기 만에 수백km2에 이르는‘인공 삼림’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베이징과 톈진(天津)에 매년 1억3700만m3의 정화수를 공급하고 55만톤의 산소를 배출하는, 이 지역의 매우 중요한‘생태 보호벽’으로 기능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8월 28일 산림농장 조성에 앞장선 이들의감동적 위업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허베이 싸이한바 산림농장 건설자들은 55년 간 당의 부름에 따라‘황사가 해를 가리고 새들이 갈 곳을 잃은’사막 지역에서고군분투했다. 이들의 헌신적 노력의 결과, 황폐한 땅이 푸르른 삼림으로 변하는기적이 탄생했다. 이들은‘투명한 물과 푸른 산이 바로 금산(金山)이고 은산(銀山)’이라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역사적 사명과 위업을 달성하고, 녹색 발전의‘싸이한바 정신’을 우뚝 세웠다. 이들이 실천한감동적 업적은 생태문명 건설을 위한 하나의살아있는모범사례가될 것이다.”

사막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

“허베이성 북부의 사냥터는 과거 수초가 풍성하고 삼림이 우거지던 곳이 었다. 그러나 청나라 동치연간(同治年間·1862~1874년) 때부터 시작된 개간으로천년을 이어온 소나무가 잘렸고, 수십수백만km2에 달하는 푸른 산이 민둥산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이 주는교훈을깊이새겨야 한다”2016년 1월, 시주석은 성(省)·부(部)급 주요 지도자 간부의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5차전체회의‘정신 학습과 관철 특별연수반’에서이같은점을 역설했다.

대자연을 경시하고 법칙을 거스르면대자연의보복이밀물처럼 들이닥친다. 한때‘아름답고 높은 고개’였던 싸이한바는지난 100년 사이 황량하고 거친 황무지로변해 버렸다. 이 틈으로 시베리아의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쳐 네이멍구(內蒙古) 훈산다커(渾善達克)사막의 남하를 유인했고,이는곧바로수도베이징을 위협했다.

훈산다커사막은베이징과가장가까운 직선 거리가 180km에 불과하다. 이곳의 평균 해발은 1000m로 베이징의 평균해발 40m 보다 훨씬 높다. 때문에 바람을타고 대규모 황사가 베이징으로 유입되기가 쉽다.“베이징에서 가장가까운훈산다커 사막의 확장을 막지 않으면 지붕 위에올라서서뜰을향해황사를흩뿌리는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학자도 있었다.

갈수록 악화되는 생태계는 인간에게분명한 경고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에 농업부는 1962년 싸이한바 기계산림농장을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55년 전가을, 각지에서 온 369명의 산림농장 창업자들은 부푼 마음을 안고 싸이베이(塞北)고원으로 향했다. 평균 연령이 24세에도못 미치는 이 젊은 청년들은 싸이한바 산림농장 건설의 역사적 서막을 열어젖혔다. 마침 목란사냥터가 자유 개간을 선언한지꼭 100년째 되는 해였다.

억겁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안정적생태계는 대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푸른산과맑은물이파괴되고흐려지는것은잠깐 사이지만, 이를원상태로복구하고 회복시키는 일은 몹시 길고도 힘든 과정이었다.

처음 왔을 때 싸이한바는 악천후와황사, 식량 부족 등 환경이 매우 열악한외딴 지역이었다. 극단적인 저온 현상으로 기온은 영하 43.4도까지 내려갔고, 연평균 적설기간은 7개월에 달했다. 청년들은 먼저 구릉을 평평하게 만들고 거처를마련했다. 생산활동이 먼저이고 생활은그 다음이었다. 검은귀리 국수를 만들어먹고, 눈을 녹인 물을 마셨으며, 움막에기거하면서 토굴에서 잠을 잤다. 모진 바람과 차가운 눈을 견뎌가며 황무지에 한그루씩나무를 심었다.

이들은 현지에 적합하지 않은 소련제조림기계와 모종삽을 개량했고, 차양(遮陽) 육묘법에서 벗어나 고원 지역 최초로 전광(全光) 육묘에 성공했다. 1962년과1963년 두차례의실패를거쳐 1964년 봄에 개최된‘마디컹(馬蹄坑) 조림(造林)대전’에서 90%가 넘는 활착률을 기록해 의지와 자신감을 다져 갔다. 조림사업은 이때부터 탄력을 받기 시작했고, 한 해에많을 때는 5km2까지 조림에 성공한 적도있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기까지

지난 55년 간 수많은 계절이 지나면서 싸이한바는 이제 수백km2 규모의 숲으로 거듭났다. 여기에는 첫 나무를 심을때부터 수억 그루의 나무를 길러내기까지대대손손 이어져 온 사람들의 보살핌이있었다. 싸이한바 땅에는 이들의 빛나는청춘이오롯이배어 있다.

1962년 가을, 21세의 청년 자오전위(趙振宇)는 허베이성 청더농업전문학교를졸업하고 동기들과 해방군에서 제조한 무개차에 올라탔다. 털털대는 차를 타고 꼬박 하루를 달린 끝에 새로 조성된 싸이한바 기계산림농장에 도착했다. 이곳에는18개 지역에서 온, 자오 씨와 같은 대졸자 127명이 있었다. 평균 연령은 24세가채 안 됐다.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이던 싸이한바에서 청년들은‘사업을 일궈보자’는 굳은 의지로 기존 농장 두 곳에서 일하던 200여 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산림농장사업에 뛰어들었다.

싸이한바는 추운 날씨로 유명하다.입동이 지나면 쌀알 같은 눈을 품은 강풍이 쌩쌩 몰아쳐 발걸음조차 내딛기 어렵 다. 초기에는 가옥도 몇 곳 없어 청년과노동자들은 마구간을 비집고 들어가거나나무, 땔감 등으로 대충 오두막을 지어머물곤 했다. 식량도 부족하여 검은 귀리로만든 면과 산나물로 허기를 채웠다. 그중에서 소금물에 담가 먹는 황두(黃豆)는 별미중의 별미였다.

“당시는 국가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우리도 생산이 먼저고 생활이 그 다음이었지요”자오 씨가 말했다. 처음 몇 년은 조림작업이 순탄치 않았다. 외지에서온 어린 모종은 싸이한바의 거센 바람과추위를 견디지 못해 식재를 해도 활착률이 8%가 안 됐다. 조림자들은 현지산 모종으로 바꾸고 계속해서 육묘법을 개량했다. 그 중에서 뿌리가 발달하고 튼튼한낙엽송 묘목은 현지 환경에 잘 적응했다. 1964년 봄, 수많은 비바람과 햇빛을 견뎌낸 조림자들은 드디어 첫 성공의 기쁨을 맛보았다. 이들이 심은 34만4000m2의낙엽송 가운데 90% 이상이 활착했다. 그뒤로는 조림작업이 보다 계획적이고 안정화되며 산천 곳곳에 점점 푸른 빛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1962년 이래 산불‘제로’의 비결

싸이한바 기계산림농장에는 산불 관제실이 있다. 방화대원인 위레이(于雷)씨앞의 사무용 탁자에는 4대의 컴퓨터가 놓여 있다. 방화CCTV, 적외선 산불감지 레이더, 벼락으로 인한 산불 모니터링시스템 등이다. 탁자 앞쪽에는 스크린벽이 있어 산림농장 곳곳에 설치된 24개의 고화

질 CCTV가 찍은 화면을 돌려볼 수 있다.이곳에는 7명의 방화대원이 24시간 돌아가며 당직을 선다.“1년 내내 사람이 붙어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싸이한바의 숲은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 불이 한번붙기시작하면끔찍한결과가초래됩니다.”위 씨의 말이다.

방화원과 마찬가지로 산림농장의 산 림보호원과 감시원도 각자의 근무지를 지키고 있다. 산림보호원은 매일 산에 올라인근마을주민이나외지여행객들이혹담뱃불을들고숲에들어가지는않는지순찰한다. 감시원들은 산림농장 중에서도 비교적높은곳에있는 9개의 전망탑에올라작업을 수행한다.

싸이한바 산림농장의 동북부 해발 2000m 높이에 있는‘왕하이루(望海樓)’전망탑은산림농장전체를통틀어가장높은 곳에 있는 탑이다. 류쥔(劉軍)과 치수옌(齊淑艷) 부부는 11년 동안이곳에서살아왔다. 매년 봄과 가을 각 3개월의 불조심 기간 때는 두 사람이 돌아가며 근무를한다. 낮에는 15분마다 망원경으로 살핀후 기록을 하고 본부에 전화보고를 한다.해가 지고 나면 1시간에 한 번씩 살핀다.이제까지부부가기록한노트를모두쌓으면키를훌쩍 넘긴다.

왕하이루에서는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관광객이 많은 여름철을 제외하고두사람이 새로운 사람을 만날수있는기회는 많지 않다. 특히 겨울에 눈이 많이내려산길이막히면부부가함께의지하며버티는수밖에 없다.

오랫동안숲을가꾼사람들의꿈은결코 헛되지 않았다. 1962년 이래 싸이한바에선 산불이 발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봄부터 가을까지 작은 나무들을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한 뼘 정도는 자란 듯하지요. 그런데산림경영구역사람들한테물어보면 나무가 벌써 한 자나 자랐다고 하더라고요.”류 씨는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피우며이렇게 말했다.

친환경 해충 방제에 역점

관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산불 말고도 또 하나가 있다. 바로 해충이다.‘연기 없는 산불’이나 마찬가지인 해충 가운데 낙엽송 나뭇잎을 갉아먹는 자나방이 33km2 규모의 싸이한바 삼림에침입했다. 산림농장 삼림병충해퇴치검역소의 궈즈펑(國誌鋒) 소장과 그의 동료들은 20일 넘게 매일 산에 올라 해충퇴치작업을 벌였다. 매일 새벽 4시부터 밤 9시까지 고군분투한 끝에 겨우 해충을 잡을수 있었다.

요즘에는 싸이한바의 곤충 종류가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곤충이 나타날 때마다검역소는이를가져다자세히연구해야한다. 숲에 들어가 관찰을 하기도 하고,실험실로가져와검사를하거나직접길러

보기도 한다.“어떤 곤충이위협이되는지알아야 관리법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것이궈소장의 설명이다.

궈 소장은 17년 간 검역소에서 근무하며해충퇴치이론과기술의발전을지켜보았다. 해충이 대규모로 숲에 들이닥칠때면때때로비행기를이용해농약을뿌리는 방법을 쓰곤 한다. 지금까지 대형 비행기를 이용한 적은 6년 동안 한 차례에 불과했다. 또과거 12년 동안커다란재난이발생한적도 없었다.

궈 소장은“예전에는 해충을박멸하는것이 목표였지만, 지금은해충이있더라도숲이 피해를 입지 않는 쪽으로 잘 관리하는 쪽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사실어떤해충은소량존재하는것만으로도다른 해충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우리는생태계의 이런 자기통제력을 최대한 이용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해충퇴치 이론의 발전과 함께 병충해퇴치 수단도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궈소장은“물리적 방법과 천적을 최대한 이용해 해충을 억제하고 있다. 해충퇴치약도잔류물이적고독성이낮은생체모방약(Biomimetic Medicine)으로 바꿨다. 비용은증가했지만환경에끼치는해악은줄었다”고 소개했다.

더 나은 생태계를 위해

싸이한바 기계산림농장 조사계획설계원의 지푸리(紀福利) 부원장과 옌리쥔 (閆立軍) 엔지니어는 컴퓨터 앞에 앉아ArcGIS 지리정보시스템이 처리한 산림농장 위성사진을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설계원에는총 17명이 근무하고 있다.이들은 매년 봄과 가을 외부로 나가 자료를 수집한 뒤,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로자료를 처리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다음해의조림과산림경영계획을 세운다.

1990년대 지 부원장과 옌 씨가 싸이한바에막도착했을때는작업조건이매우열악했었다. 마차를 타고 산림경영구역으로 이동했고, 한번 구역으로 들어가면 내리 6개월을 머물렀다.“그때는 하루 종일1~2필지의 정보밖에 수집하지 못했어요.게다가 전부 수작업으로 계산을 했지요.”지 부원장의 말이다. 그는“임업은 사람을속이는 작업이 아니에요. 하려면 확실히해야죠”라고 강조했다.

산림농장의 경영철학도 최근 들어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지 부원장은“과거에는산림농장의방향을임목축적량의증대등 주로 경제적 효과에 맞췄지만, 지금은숲의 생태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최대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싸이한바의 삼림은 매년 1억3700만m3의 수질을 정화하고 74만7000톤에 이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다. 또 200만명의 사람들이 한 해 동안호흡할 수 있는 산소도 내뿜고 있다. 중국임업과학원은 싸이한바의 삼림이 매년120억 위안(약 2조620억원) 이상의 생 태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으로 평가했다.

초기에는 자연조건이 열악하고 식재가 낙엽송 등 단일 수종 위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병충해가 쉽사리 만연했다.지금은 기후가 뚜렷하게 개선되고 서리가 내리지 않는 기간도 짧아졌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도 줄어들고 강수량도많아져 레드파인, 가문비나무 등 다른수종도 숲에 활착할 수 있게 됐다. 옌씨는 앞으로 교목지대, 관목지대, 초원등 다채로운 산림층이 생겨나면 삼림의생태 안정성이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늘날 싸이한바는 숲의 바다이자 강의 원류이고, 꽃의 세계이자 새들의 낙원이다. 여름이 되면 최고의 피서지로 변하고 사진작가들이 그리워 다시 찾는 곳이되었다.

위성 구름사진으로 750km2에 이르는 짙푸른 인공 방호림(防護林)을 보면,날개를 활짝 펼친 솔개가 네이멍구 고원 훈산다커 사막의 남쪽 끝을 수비하고있는 듯한 모습이다. 드넓은 숲의 물결은 허베이성의 청더, 장자커우(張家口)의 무성한 삼림과 이어져‘녹색 만리장성’을 이룬다.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의 약칭)와 화베이(華北) 지역의 황사를 막는 두터운 장벽이자 수원지를 지키는 호위병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싸이한바는 허베이성과 네이멍구자치구가 만나는 지점, 훈산다커 사막의 남쪽끝에위치해있다. 1962년부터3대에걸친이들의많은노력을통해현재는750km2 에이르는세계최대의인공숲으로거듭났다.사진/돤웨이(段崴)

현재의싸이한바는초목이무성하며숲이우거지며꽃이만발한곳이다.사진/왕윈충(王蘊聰)

초기조성자들은거처가마땅치않아움막에기거하기도했다. 사진/싸이한바기계산림농장제공

윗세대삼림조성자들은눈과바람을무릅쓰고산에올라힘겹게조림작업을했다.사진/싸이한바기계산림농장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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