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U Business Daily

‘중국예술전통’ 180분동안스크린에­녹여내다

中연극·미술·문학·사상이어받아1975­년중화권최초칸최고기­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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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협녀(俠女)’는 후진취안(胡錦銓) 감독이1971년에 만든 작품이다. 후진취안은 20세기 후반중국 무협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처음엔 홍콩쇼브러더스와주로­작업을 했다. 데뷔작 ‘옥당춘(玉堂春)’과 ‘대지아녀(大地兒女)’, ‘대취협(大醉俠, 한국제목은방랑의 결투)’ 등을 찍었다.

그러나 쇼브러더스는 빠른 리듬의 상업영화를원했고, 후진취안은충분한시간­을가지고한장면이라도 정성들여 찍은 예술 작품과도 같은 영화를남기려고 했다.

갈등 끝에 후진취안은 대만으로 건너간다. ‘협녀’는 대만에서 찍은 첫 영화다. 그래서 대만 자본과홍콩의제작방식­이결합한영화라고들한­다.

그런 만큼 예술적 추구가 듬뿍 담겨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한 감독의 집념은 180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으로도 드러난다. 원래는 네시간이 넘었는데 그나마 편집 과정에서 줄어들은것으로전해졌­다.

‘협녀’는 중국의예술전통을스크­린에서이어받은영화라­고볼수 있다. 중국의연극 전통, 미술전통, 문학 전통, 사상 전통을 스크린에 투사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중국 전통을 현대적 영화 속에 녹여낼것인가를고민한 영화다.

이 영화는 중국의 ‘평극(評劇)’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평극’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경극보다는 더소박하고서민적인연­극이다.

중국에서는 19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연극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다. 전체 제작 편수의 약30~40%를 차지할 정도다. 연극 무대를 직접 촬영하거나야외세트장­등에서연기를하는배우­를촬영하기도 했다. ‘협녀’는 많은 부분 연극영화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저자거리 세트장이나 주인공 구성자이(顾省斋·스쥔 분)의 집을 중심으로 한 세트장들이 그렇다. 물론 ‘협녀’가 연극영화를표방한것은 아니다. 그러나당시홍콩에서유­행하던연극영화의 분위기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협녀’는당대홍콩연극영화의­수준에서한걸음더나아­간방식으로만들어졌다.

중국 산수화의 전통을 이어받기도 하다. 예컨대거의 모든장면에서 연기를 피운다. 이른바 ‘드라이아이스’ 효과다. 이는 서양 회화가물감으로캔버스­전체를채우는것과달리­여백을비워두는동양산­수화의수법을스크린위­에서고안해낸것이다.

동양 회화는 빈 공간이 하늘이 되고 공간이 된다. 프레임 안에서 인물 구도를 잡을 때 인물들이정면에 위치하지 않고 측면에 배치되거나, 바위 같은특정사물이화면의­절반을차지하는장면등­도중국산수화의전통을­이어받은증거들이다.

또한중국소설의전통과­도맥을 같이한다. 영화는 청나라 말기 소설 ‘요재지이(聊齋志異)’에 실린협녀편을 개작한 것이다. 여기에 명나라 때 이야기인 ‘명사고(明史稿)’의 이야기를 함께 섞었다. ‘요재지이’에는신기하고재미있는­이야기가적잖다.

협녀 이야기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중국설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많다. 특히 무능력한 남성을 도와주기 위해 구원자인 ‘선녀’가 등장한다. 미 스테리한 정체성을 가진 여성이 등장하고, 그녀가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인습적인 남녀의성 역할이 전도된다. ‘협녀’에서도 남자는 힘없는서생으로,여자는무공에능한협사­로그려진다.

‘협녀’는 중국의 ‘협의 사상’도 이어받았다. ‘무협’에서 ‘무’는 싸움의 기술이고 ‘협’은 의리의 정신이다. 무는 협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다. 협은 자유로운 정신이다. 가족과 친구를 막론하고 자신과 의리를지키는사람을위­해무슨일이든하는 정신이다.

‘협녀’는 당시 무협영화의 전통을 이어 받은 홍콩영화와 대만영화의 새로운 진전이었다. 중국의예술 전통을 창조적으로 이어받았던 것이다. 1975 년칸영화제는 ‘협녀’에게 최고기술상을줬다.

중화권 영화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홍콩과대만 영화계는 흥분했고 후진취안은 새로운 힘을얻게 됐다.

한국 관객도 국내 영화제를 통해 ‘협녀’를 다시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2015년 칸 영화제 수상 40주년을 기념해 대만국가영화센터(國家電影中心)가 디지털화한 버전을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볼 수 있었다. 지난날 그다지흥행하지 못했던 영화가 세기를 넘어 다시 찾아오자 한국의 무협 마니아들도 열렬한 관심으로 호응했다. <한국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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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협녀’의 유명한대나무숲전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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