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U Business Daily

“윤봉길의사상해의거는­광복결정적계기”

- 전성민기자ball@

#광복절특별인터뷰尹의­사후손윤주명맥만유지­하던임시정부다시소생­시켜폭탄에다리잃은시­게미쓰‘패전의상징’ 54년간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에헌신백부­의흔적깃든선천에비석­세우고파

잊어서는안되는역사가 있고,잊어서는안되는이름이 있다. 김구·안중근·이봉창·유관순·윤봉길 의사등 한국의독립을 위해자신의모든 것을 바친순국선열이그들이­다. 하지만흘러가는세월은­기억을 조금씩희미하게 한다. 매헌 윤봉길의사기념관이서­울서초구에있다는것을­아는사람이얼마나될까?잊지않으려면알아야한­다. 제75주년광복절을앞­두고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에50여년을 바친윤주 부회장(73)을 만났다.

-제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있다. 감회가남다를것 같다.

“이승만 전대통령은 한인애국단 활동을 기록한‘도왜실기(屠倭實記)’ 국역판(1946) 서문에서‘한국해방의단서가 된 카이로 회담에서장제스 중화민국총통이솔선해­서한국의자주독립을주­창해연합국의동의를얻­은것은그원인이윤의사­의장거에있었음을잊어­서는안 된다’고 밝혔다. 윤의사의‘상해 의거’는 우리나라 광복의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좌우노선싸움으로분열­돼겨우명맥만유지하던­임시정부를 다시 소생시켰다. 의거에크게감동한당시­장총통이임시정부에대­한 지원을 시작했고한중군사동맹­도체결됐다.”

-윤 의사 의거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시게미쓰마모루외무대­신이 1945년 9월 2일일본도쿄만에정박­해있던미군함미주리호­갑판에서일본천황을대­신해항복문서에서명을 했다.

“당시기록영상을보면‘시게미쓰가 10여년 전에중국 상하이에서한국의애국­자에게폭탄을 맞고중상을입어의족을­달고 나왔다’는 설명이나온다.의족을 착용해지팡이를 짚은 모습은 패전의상징처럼보였다.일본의항복현장에윤의­사의혼이깃들어있었다­고 생각한다.”

-큰아버지인 윤봉길 의사에 대해 자세히 알게된건언제인가?

“아버지는 안방 장롱 속에흰 보자기에싸인 무엇인가를 늘 감춰두셨다. 가끔 그것을 꺼내보시곤했는데그때­마다보물처럼,신주단지처럼소중히다­루셨다. 충남에있는 예산초 5학년에 다닐 때였다.친구들과 집에서놀다가 흰보자기가 떠올랐다. 장롱을 뒤져 풀어보았다. 그 속에는 피묻은 손수건·가죽지갑·중국지폐·동전·회중시계·안경집등이있었다. 친구들에게자랑한 후 장롱 속에다시넣어놨다. 엉성하게매어진 보자기를 보신아버지께눈물이쏙­빠지도록혼났다.그날저녁아버지께윤의­사에대한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밤늦게까지윤의사에대­해자세히설명해주셨다.”

-대학생이던 1966년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에 가입했다고 들었다. 54년 동안 기념사업을하며기억에­남는일이많을것 같다.

“윤 의사는 1932년 12월 19일에일본이시카와­현가나자와에서순국했­다.아버지와함께1992­년 4월에60주년기념사­업으로‘매헌윤봉길의사순국기­념비’를 건립했던 게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는순국기념비는 반드시우리나라 돌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서울망우리한양석재공­업소에서용두와 거북이그리고 바닥돌을 제작해부산항에서일본­으로 보냈다. 1993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윤의사가순국­한곳을답사했다.그때기념사업에대한새­로운각오를 다졌다.”

-루쉰(魯迅)공원 안에 있는 윤 의사 기념 유적인 ‘매헌(梅軒)’과 매헌생애사적비 및 의거현장표지석을건립­할때어려움은없었나?

“기념정자를지을때중국­쪽에서는 ‘매정(梅亭)’이라고부르길원했지만­논의끝에 2009년 ‘매헌’으로변경했다. 1995년부터진행한­매헌생애사적비건립도 쉽지않았지만 결국 화강암 자연석으로 크게세웠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양신화 선생께서많은도움을 주셨다.”

-1932년 5월 1일일본아사히신문에­실린‘상해 의거’ 직후 사진이 윤 의사가 맞다는 것도밝혀냈다.

“1999년 사진속인물이윤 의사가 아니라는 의혹이제기 됐고, 2008년 8월 국가보훈처에서윤의사­가맞다고공식발표할때­까지10년이 걸렸다. 의혹 제기에대한 정정보도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도일부학생들­이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와서‘가짜 사진이다’라고 말하는것을들으면가슴­이너무아프다. 윤 의사 연행사진은 ‘상해 의거’를 실증하는것으로역사적­가치가매우높은 사료다.문화재청은하루빨리이­사진을보물로재지정해­야 한다.매우중요한 문제다.”

-54년간 기념사업을 하시면서 윤 의사의 정신에대해서도많이생­각했을것 같다.

“윤 의사는 1927년 저술한 ‘농민독본’을 통해‘천가지만가지낡고물들­고더럽고못생긴것을무­찔러 버리고, 새롭고순수하고깨끗하­고아름다운것으로만들­어우리들세상이잘살도­록 하자’고 말했다. ‘세계를 움직이려거든 내몸을 먼저 움직여라’의준말인‘세움내움’에그뜻이잘 담겨있다.”

-의거 80주년 때는 매헌전집을 발행하는 의미있는 작업을 하셨다. 90주년이 되는 2022년전에이루고­싶은계획이있나?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이 1988년 12월에 건립됐다. 이후윤봉길 숭모비·매헌교·윤봉길동상이만들어졌­고,인근에매헌초도 생겼다. ‘양재시민의 숲’을역사성이담긴‘윤봉길 공원’으로 개명했으면하는바람을­갖고있다.중국의거현장·일본 순국지·만주등 백부의흔적이남아있는­곳은 거의다가봤다. 윤 의사가 1930년 일본경찰에체포돼평안­북도선천경찰서에서달­포간구금됐다풀러났다­는것을편지를통해알수­있었다.백부의흔적이남아있을­지도모르는선천일대에­가작은비석하나라도세­워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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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길기자 dbeorlf123@] 서울서초구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아주경제와­인터뷰중인윤주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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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초구소재윤봉길­동상앞에선윤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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